정부 ‘무기계약직 전환’ 방침에도 결국 해고 “정규직 해주기 싫어 자르는 것”
이진욱(35)씨는 부산 사상구 보건소 방문간호 물리치료사다. 방문간호사는 독거노인, 장애인, 기초생활수급권자 등 의료 취약 계층 가정을 방문해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씨는 하루8~10가구를 방문해 재활운동을 돕는 등의 일을 해왔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7년간 일했다. 돌봄을 받는 가구는 월 2400원만 내면 된다.
“지금 다들 짐 싸고 있어요.” 2014년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이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씁쓸하게 말했다. 함께 일한 다른 방문간호인력(간호사·운동처방사·영양사·치위생사)도 마찬가지라 했다. 보건소를 떠나는 것이다. 2007년 방문간호사업이 생긴 이후 짧게는 3년 길게는 8년간 일한 이들이다. 그간 이들은 매년 재계약 방식으로 일 해왔다.
매년 반복된 계약해지와 재계약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정부는 2013년 방문간호사를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으로 분류했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 2년을 일했다면 2015년 1월 1일부터는 무기계약직으로 고용하라는 것이다. 방문간호사는 전국 4600명에 이른다. 노동조합은 이 중 2000여명이 무기계약직 대상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 방문건강관리를 설명하는 홈페이지 캡쳐 | ||
무기계약직은 계약직이지만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고용형태이다. 고용안전성은 정규직과 유사한 셈이다. 하지만 임금이나 복지 수준은 계약직과 비슷하다. 계약직과 정규직의 중간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공부문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해 2015년까지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부산 16개구는 이들을 무기계약직이 아닌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구청장 협의회를 통한 결정이었다. 이는 사용자 마음대로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최대 5년짜리 일자리다. 또 ‘공무원’ 이라는 단어가 붙지만 공무원 연금 가입은 안 된다. 공무원 노조에도 가입할 수 없다. 이씨는 이를 거부했다.
부산시 16개구는 ‘고용 전환 형태에 따른 장단점 비교’ 라는 표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경우 △해당사업 종료 후 타사업 전환시 인력해고가 안 된다는 점 △무기계약직 전환 후 타 업무 분담 기피 등 업무 태만 우려된다는 점 △무기계약직 노동조합 가입이 우려된다는 점 등을 단점과 인력운용 문제점으로 꼽았다. 쉽게 쓰고 쉽게 해고하기 위한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만의 일이 아니다. 충남 예산군과 청양군은 기간제 방문간호사 151명 전원을 12월 31일자로 계약해지했다. 이들 역시 무기계약직 대상자인 2년 이상 근무자들이다. 방문간호사 등이 속한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은 알려지지 않은 다른 지자체 상황 역시 비슷할 것이라 보고있다. 그리고 이들 중 대부분은 2015년에 또 재계약을 체결해 일할 것이다.
▲ 순회진료중인 영월군 보건소 간호사. @연합뉴스 | ||
지자체의 이런 ‘꼼수’는 정부 지침도 거스른다. 정부는 지난 29일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에 대해 “비정규직 고용 규모를 제한”하고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해 정규직 전환 지속 추진”을 밝혔다. 또 방문간호사 계약해지가 논란이 되자 고용노동부는 지난 16일 광역자치단체들에 공문을 보내 “무기계약직 전환을 적극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정부에 따르면 인건비 문제도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9일 광역자치단체들에 보낸 공문에서 “해당 사업의 원활한 추진에 영향이 없는 범위에서 무기계약직 인건비를 ‘지역사회 통합건강증진사업’ 예산에서 편성할 수 있으며 사업 추진을 위해 고용된 인력의 무기계약직 전환에 따른 기준인건비 초과분에 대해서는 불이익이 없다”고 밝혔다.
방문간호사들은 지난 29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일을 못 해서 자르는 것도 아니고 인건비가 부족해서 자르는 것도 아니고 오직 우리를 자르는 이유는 정규직을 해주지 않기 위함”이라며 “이는 우리들에게 계속 하루살이 같은 비정규직의 삶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반발하고 나섰다. 새정치 을지로위원회는 이와 관련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새누리당 소속 기초자치단체장들이 있는 지역에서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을지로위은 공개서한에서 “이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새누리당이 해당 지자체장들과 긴급하게 협의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결국 이진욱씨는 31일 짐을 정리해 보건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첫 직장이었던 보건소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7년을 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희의 해고(계약만료)는 노동 현안에 국한되는 게 아니에요. 국가가 이야기하는 사회안전망, 최소한의 복지와도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병원에도 갈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권, 생존권을 지자체가 내던지는 셈이에요”라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 hanee@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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