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이 복지국가 역할을 대신한다면
30년 전부터 서방 국가 정부들은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중 한 가지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개인의 자선행위를 부추기면서 자원봉사와 자선 단체에 위임하는 것이었다. 캐나다와 프랑스, 영국은 이 방법을 따랐으며 미국은 보다 진전된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차후 의회에서 다수당이 된 미국 우파는 이 모델을 그들 정당의 주요 정책 중의 하나로 내세울 것 같다.
브누와 브레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경제 위기에 정부가 두 손을 들다
금융 위기가 시작되기 직전 디트로이트 시는 시의 서남부 빈곤층 거주 지역에 거대한 공동체 센터를 건립했다. 일단 2008년 건축이 완공되었지만 건물은 황량하게 내버려진 채로 있다. 불경기로 접어들자 시 정부가 사회 복지 프로그램 분야의 모든 예산을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여러 개의 자동차 공장을 이전시켜 버린 포드사의 경영진은 이 자동차 도시에 닥친 불행에 약간의 심적 가책이라도 느꼈던지 이 센터에 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기부로 인해서 그나마 센터는 개원할 수 있었고 식료품 봉지를 나눠주거나 청소년을 위한 여가활동을 조직할 수 있게 되었다. 몇 개월 후, 이 도시는 파산을 선언해야만 했다. 시 직원들의 은퇴 연금을 삭제하는 것만은 피하기 위해서 시청은 시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을 경매에 붙이기로 결정했다. 이 그림들 중에는 렘브란트, 앙리 마티스,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포드 재단인 나이트 앤 크리스거(Knight&Kresge)가 몇몇 부자 시민들과 연합으로 3억 3천만 달러를 끌어 모으는 데 성공해서 시청 소속 공무원들의 은퇴 연금을 존속시켰다. 소중한 회화들이 경매에 의해서 팔리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2013년 10월. 이번에는 연방이 공공이익이라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개인 갑부들의 자비심에 의존해야만 했다. 국가 부채 상한선을 상향 설정하는 것에 대해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합의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워싱턴은 보름 동안이나 소위 ‘긴급을 요하지 않는’ 모든 공공 서비스를 중단해야만 했다. 보건부가 관리하는 30여 개의 탁아소를 계속 가동시키기 위해서 텍사스의 한 억만장자 커플이 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돈으로 수천 명의 어린아이가 안전하고 친숙한 환경에서 계속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주 기분 좋은 소식입니다”라고 <애틀랜틱>지의 엘레노어 바컨 기자가 축하했다.(1)
늘어나는 백만장자, 늘어나는 자선 행위
사회복지 사업에 대부호들이 참여하는 것은 미국에서는 생소한 일은 아니다. 지난 세기 초에는 백만장자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870년에는 100여 명에 불과했던 백만장자의 수가 1892년에는 4천 명, 1916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4만 명에 육박할 만큼 증가함에 따라서 박애주의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자신들이 관대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시민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들이 누리는 호사로움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부자들은 고결한 명분이 있는 곳에 투자했다. 볼티모어의 존스 홉킨스나 이타카의 에즈라 코널처럼 도서관이나 병원, 대학을 세웠다. 혹은 석유왕 존 디 록펠러나 철광왕 앤드류 카네기의 이미지를 본 따 재단을 창설했다. 전통적인 자선은 지역적이고 종교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불행을 한시적으로 경감하거나 문맹 퇴치 교육을 베풀거나 하는 식으로 필요할 때마다 이루어졌던 반면, 이 재단들은 ‘인간의 행복’, 혹은 ‘인간성의 진보’를 목표로 내걸었다.
당시에는 개인의 돈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작동될 수 있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화당 출신의 테어도어 루스벨트는 “대학에 기부하는 수단을 사용해 몇몇 교육기관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이익에 동조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식적인’ 부를 대변하는 사람들”을 고발했다.(2) 노동자는 노동자대로 산업계의 거물들은 예술이나 건강, 과학 분야에서는 관대하고 이타적이라 해도 그들의 공장에서는 인색하고 거칠다고 불신했다. 미국노동연맹(AFL) 위원장 사무엘 곰퍼스는 “세계가 록펠러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그가 사람들이 자기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돕게 될 교육과 연구센터를 지원할 때”라고 노조의 입장을 빈정거리면서 표현한 바 있다.(3) 1890년대 초,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철강 공장의 공격적인 직장 폐쇄조치가 빈번해졌을 때 많은 노동자들이 카네기의 돈으로 세운 건물들에 입장하기를 거부했다. 전체 46개의 시 중 20개 시가 도서관을 지어 기증하겠다는 이 산업가의 제안한 거절했다.(4)
오늘날, 어느 자치 단체가 백만장자의 기부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페이스북 설립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뉴어크의 공립학교들에 1억 달러의 수표를 제공했다. 뉴어크 시의 시장은 공화당 소속 주지사인 크리스 크리스티가 취한 예산 삭감 조치로 야기된 부족분을 부분적으로 메우기 위해 잽싸게 낚아챘다. 이처럼 공공 부문 예산의 축소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박애주의를 필수불가결하게 만든다.(5) 동시에 증여는 더 이상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부분적으로는 전 국가적 차원의 재분배 효과를 낳는 세금을 피하려는 최적화 전략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 그리고 다른 40여 명의 억만 장자들이 자신들의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더 이상 포식적인 부가 가져올 전통적인 영향력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기부 약속 캠페인의 선도자인 두 거인들을 백악관에 초청했다.
미디어의 대대적인 플래시를 받았지만 부자들과 기업들의 후한 기부행위는 박애주의를 빙산이라고 한다면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에 불과하다. 사실상 미국에는 소위 ‘대중적 박애주의’ 문화가 있다. 매년 다양한 계층에 속하는 1천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기부에 동참한다. 일요일, 교회에서, 학교 행사에서 상점이나 관공서에서 때로는 전화선을 통해 미국인들은 기부행위에 동참해 줄 것을 상시적으로 요청 받는다. 2013년 10가구 중 9가구가 기부행위에 동참해서 그 해 걷어 들인 기부총액 3,350억 달러의 72%를 제공했다. 이는 국내총생산의 2%에 달하는 금액이다. 박애주의 재단이 15%, 기업이 5%를 제공했다. 물론 기업들은 이 자선 비용을 마케팅 비용에 포함시킬 수 있으며 이는 기업이 다루는 대상에 대한 확장적인 시각과 사회적 재산의 남용이라는 제한적인 개념이 존재함을 증명한다.
수금된 금액의 3분의 1은 교구와 자선 종교단체에 주어진다. 나머지는 지역 공동체 조직, 전국단위의 협회, 대학, 학교, 병원, 심지어는 싱크탱크나 인도주의 목적의 협회에 분배된다.(6) 이 단체들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교육, 사회 복지, 문화, 보건과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여 공적 효용성을 갖는다고 인정받아왔다. 이 단체들은 소위 제3부분에 속하기 때문에 그 유명한 501(C)(3)라는 범주로 분리되어 면세혜택을 받는 기부를 받는다. 달리 말하자면 증여의 형태를 띤 공금을 받는 것이다.
국가가 사회 복지 문제를 자선단체에 떠맡기다?
미국에서의 기부 문화의 성행은 우선 먼저 강한 종교적 영향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주민의 80%가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40%는 주기적으로 교회에 나간다. 다른 신앙처럼 기독교도 자선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기독교는 상부상조와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투자를 중시한다.(7) 19세기부터 기독교 자선주의는 국가에 대해서 불신을 가져왔다. 이는 가난한 자들을 돕는 데 국가를 경쟁자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신교, 구교 공히 그 사회에 관한 복음에서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사인(私人)이나 친지들의 창의성에서 나오는 지역 단체의 우선권을 옹호하고 있다. 사회적 기독교주의의 근거라 할 수 있는 교황 피우스11세의 회칙인 콰드라게시모 안노에서 피우스는 “그러므로 사인들이 자주적 결정에 의해서 자신들의 재산을 가지고 이행할 수 있는 기여행위를 이를 공동체에 귀속시키기 위해서 사인들로부터 이를 빼앗아갈 수 없다. 열등한 신분에 속하는 집단들을 보다 넓고 보다 상위의 공동체를 편입시키기 위해서 이들이 스스로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빼앗는 것은 공정하지도 못하며 사회 질서에도 심각한 손상을 초래할 것이다”고 확인해준다.(8)
그러므로 미국에서는 국가가 일반의 이익을 수호하는 유일한 수탁자로 간주되지도 않으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민주당은 국가와 구호 기관이 고결한 방식으로 서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교회와 자선단체가 따로 독립된 공공 프로그램보다 실질적으로 더 많은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2012년 8월 민주당의 마지막 전당대회에서 말한 적이 있다. 공화당은 반대로 공권력과 사적인 자선행위를 상호 대척점으로 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통념에 충실한 보수주의자들은 공화당은 국가를 비효율적인 관료주의의 괴물로 보고 이것이 오히려 구호에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오히려 가난한 자들에 가깝게 있어 그만큼 책임을 더 쉽게 담당할 수 있는 지역 단체들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공동체에서 우리가 하는 것은 서로 서로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우 특별하다는 점이며 국가가 이를 대신하지 못합니다”라고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폴 라이언이 2012년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지난해 11월 14일 아이오아에서 상원에 당선된 공화당의 떠오르는 샛별 조니 에른스트는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충족시킬 줄 아는 국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해 굳이 국가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9) 미국의 관대한 기부문화가 지리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보면 이 전통은 종교와 자선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뒤섞여 나타난 것으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가장 후한 편에 속하는 17개의 주(유타, 미시시피, 앨라배마, 테네시,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등)가 비교적 더 종교적이다. 이 주는 지난 대선에서 모두 윌러드 밋 롬니를 선택했다. 반대로 하위에 속하는 7개 주(코네티컷, 메사추세츠, 로드 아일런드, 뉴저지, 버몬트, 메인, 뉴 햄퓨셔)는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사회 복지의 부담을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지역 공동체에 이전하려는 계획은 최근에 나타난 경향이 아니다. 1929년 3월부터 취임연설에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공공의 행복을 위해서 미국인들이 서로 협력하는 능력”을 치하했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공공 건강, 여가, 교육과 가정을 개선하기 위해 연방 정부와 수많은 에이전시, 전국 혹은 지방, 개인적 혹은 공공 에이전시들 간의 협조체제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그해 10월 시작된 대공황은 후버가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길 계기가 되었다. 증가하는 실업에 대항해서 후버는 기부금을 모금할 시민 위원회와 지역자치단체위원회를 창설할 것을 부추겼다. 모금된 돈은 구호단체로 전해져서 실업상태에 있는 국민들의 저녁을 준비하고 석탄을 배급하고 의료 활동을 베풀게 되었다. 결국 개인적 차원의 자선만이 늘어나는 구호 수요를 간신히 지탱할 수 있었는데 경제 위기가 계속 진행되어 가면서 시민들의 기부금도 차츰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역사가 올리비어 준츠의 표현에 따르자면, (국가에게는) ‘제로비용의 통치’ 계획은 프랭클린 디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폐기되어 뉴딜 정책으로 선회했다.
후버 이후로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들이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부추겼으며 이 같은 경향은 최근 30여 년 동안 국가 부채를 줄인다는 맥락 속에서 더 강화되기에 이르렀다. 1981년부터 로널드 레이건은 계약이라는 형태로 수많은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비영리 단체에 위임한다. 그의 재임기간 동안 비영리 단체의 수는 40% 증가한다.(10) 그 다음 조지 부시 대통령의 시대가 되었고 그는 1988년 취임 연설에서 자기 당의 의원들 앞에서 미국의 시민 사회와 “전국에 걸쳐 별처럼 산재해 있는 천 개의 등대와 같은 공동체 조직”을 칭찬했다. 일단 취임하자 그는 제3부분과의 하청 계약을 되풀이했고 그 자신을 ‘등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협회나 시민으로 자처하면서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다. 빌 클린턴과 아들 조지 부시의 시대가 되었다. 전자는 사회 복지 제도를 개혁해 부통령 앨 고어의 표현을 빌자면 “시민사회와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고자 했으며 후자는 여전히 “자비로운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면서 미국인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기부하도록 설득을 계속했다.
그러므로 제3부분을 장려하려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여기에 부여하고자 하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제3부분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의 결과만은 아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회복지 의무로부터 벗어나려는 정부의 계속된 노력이 만들어낸 전략적 산물의 결과이기도 하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보호를 덜 받는 비보호 노동자를 양산하고 공동체의 자선 기구들은 수백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에 의존하는데 이들의 무임금 노동은 국가 경제상으로는 연간 수백억 달러 이상의 수치를 의미한다.(11) 오늘날 미국은 사회 분야에서 활동하는 종교적 혹은 비종교적인, 수백만 개에 달하는 비영리 단체의 (계약에 의해서는) 최대의 고객이며 (보조금의 형태로는) 최대의 후원자이다. 개인 단위의 기부가 그 자체로 이들 예산의 10~15%를 차지한다. 부분적으로는 세금 감면의 형태로 지자체가 이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이로써 미국 국가 전체 세수입상으로는 2011년 53억 7천만 달러에 달하는 세수 손실을 의미한다.
비영리 자선 단체도 반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사회연대는 때로는 부작용을 산출하기도 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우드사이드에서 1998년과 2003년 사이에 캘리포니아의 한 부유한 촌락에 있는 유일한 초등학교는 학부모, 인근 주민, 졸업생들로부터 천만 달러의 기부를 받았다. 이 기부로 이 학교의 500명의 아동들이 음악, 미술과 IT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레븐스우드 구역 학교들은 아무것도 거둬들이지 못했다. 평균 소득이 우드사이드 주변보다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이 가구들은 아동들에게 바이올린 수업을 제공할 수 없었다. 문제는 고등 교육 기관에서도 발생한다. 2013년, 1% 엘리트층에 속하는 상위층 대학(스탠포드, 하버드, 콜롬비아, 예일 등)들만이 17%의 기부금을 독식했다.(13) 종교 단체에도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부자 동네의 교구는 덜 긴급한 사회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이웃 가난한 교구보다 더 많은 기부금을 모은다.(14) 국가가 제시한 면세제도가 기부내역에 있어서도 불평등을 야기하는 것이다.
반대로 기금을 수거하는 전문회사들에게는 행복이 따로 없다. 거대 재단들은 미국인들의 관대한 기부를 촉진하기 위해서 이 회사들에 하청을 준다. 이 회사들은 어마어마한 전화 상담원과 가정방문원 군단을 대동하고 전체 수집된 기부 액수의 상당부분을 모아 이들의 호의에 답한다. 2007년에서 2010년 사이, 예컨대 인포시젼이라는 회사는 미국 심장학회(American Heart Association), 미국 당뇨학회(American Diabete Association), 암 협회(Cancer Society) 등을 비롯해 30여 개에 달하는 자선 단체들을 위해 일했다. 이 기간 동안 모금된 4억 2,400만 5천 달러 중 2억 2,060만 달러, 즉 52%가 이들 주머니로 들어갔다. 상담원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접근한 사람들에게 이 수치를 밝히지 않는다. 이들은 관련된 단체의 후원이나 법을 위반할 위험성을 감안한다면 기부금의 70% 정도가 금지된 명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15)
이런 전문회사에 하청으로 모금을 의뢰할 만한 상태가 되지 않는 군소 지역 단체인 경우, 직원들이 모금 일을 대신하기 때문에 업무의 대부분 시간을 여기에 투자한다. 그들은 사용자들을 찾아가 호소한다. 경품 행사나 빙고 게임을 주최하고 자선 디너를 조직하기도 한다. 중고 물품 판매행사를 열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보조금 요청 서류나 기부의사 표시 서류를 검토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언제나 국가가 사회복지정책을 수행하는 데 국가의 낭비와 무능력을 불평하는 자선 활동 장려자들은 제3부분의 균열을 고발해 과도한 구조비용, 직원들의 불충분한 업무 처리 능력 같은 문제를 언급한다. 아무도 자선 단체에 사기업적인 경영 마인드를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업가인 찰스 브론프만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의 이사장인데 “지속 가능하고 심층적인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자선도 규율과 전략, 결과를 중시하는 태도 등을 중시하는 기업처럼 관리되어야 한다. 당신들의 지원에 의존하는 자선 조직은 회사가 주주들 앞에서 회계 감사를 받듯이 당신들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했다.(16) 요컨대 후원자들이 주주처럼 행동할 때, 도움을 받는 수혜자들이 서비스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수 년 전부터는 제3부분 전문 자문회사들이 출현했다. 기부자들의 결정을 돕기 위해 브리지스팬 그룹, 록펠러 자선 고문, 자선 이니셔티브, 채리티 내비터스, 가이드스타, 주모 스쿠르턴트 등과 같은 회사들이 대단체부터 군소 단체까지, 정확한 역할에 따라서, 분류하고 기록하며 자원 봉사자들과 사회복지 업무 노동자들을 서비스의 공급자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 누구도 평가자들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자선 분야는 상당히 거대한 밥상이다. 민주적인 통제에서도 벗어나 있다. 전 교육부 장관이었던 다이안 래비치의 표현을 빌리면 “선출 되지 않는 교육감”이라는 별명이 따르는 게이츠는 게이츠 재단과 게이츠 트러스트라는 재단의 회장인데 가용 수단이 650억 달러에 달한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이 기금을 인도주의적 활동이나, 자신의 모교, 혹은 고향 단체, 혹은 의료 연구에 기부할 수 있다. 그 아무것도 그가 공동의 이익이나 분배의 원칙 같은 것에 대해 고민하도록 하지 않는다. 만일 이 두 개의 재단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한다면 이 작은 국가는 그래도 국내총생산에 있어서 세계에서 70번째를 차지한다. 미얀마나 우루과이, 불가리아보다 앞선다. 그러나 그가 회장이 되는 것에는 굳이 선출을 받을 필요가 없다.
글·브누와 브레빌 Benoît Brevill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이진홍
(1) Eleanor Barkhorn, ‘Head start will stay open in shutdown, thanks to hedge-fund money’, The Atlantic, Boston, 7 octobre 2013
(2) Olivier Zunz, <La Philanthropie en Amérique. Argent privé, affaires d’Etat>, Fayard, Paris, 2012에서 인용
(3) Peter Dobkin Hall, <Inventing the Nonprofit Sector> and Other Essays on Philanthropy, Voluntarism and Nonprofit Organizations,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Baltimore, 1992에서 인용
(4) Paul Krause, <The Battle for Homestead, 1880~1892: Politics, Culture and Steel>, Pittsburgh University Press, 1992
(5) Frédéric Lordon, ‘Invasion de la charité privée’, <Le Monde diplomatique>, avril 2006
(6) ‘The annual report on philanthropy for the year 2013’, Giving USA, 2014
(7)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공동체(community)라는 용어는 프랑스에서처럼(communauté) 윤리적, 종교적인 내포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다만 공동의 목표와 필요에 의해서 공간적 사회적으로 결성된 총체를 의미한다.
(8) 피우스 11세, Encyclique Quadragesimo Anno(15 mai 1931), Spes, Paris, 1936
(9) Elias Isquith, ‘Iowa’s Tea Party disaster : Joni Ernst’s shocking ideas about the welfare state’, 17 octobre 2014, www.salon.com
(10) ‘The nonprofit world : a statistical portrait’, Chronicle of Philanthropy, Washington, D.C., janvier 1990
(11) Cf. ‘Volunteering in the United States 2013’, Bureau of Labor Statistics, 25 février 2014
(12) Robert Reich, ‘What are foundations for?’, Boston Review, 1er mars 2013
(13) ‘Colleges and universities raise $33,80 billion in 2013’, Council for Aid to Education, New York, 12 février 2014
(14) J. Clif Christopher, Rich Church, Poor Church. Keys to Effective Financial Ministry, Abington Press, 2012
(15) Alex Nabaum, ‘Duping the donor’, Bloomberg Markets, New York, octobre 2012
(16) ‘Should philanthropies operate like businesses?’,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28 novembre 2011
자선, 콜뤼쉬에서 데이비드 카메론까지
30년 전부터 서구 국가들은 자원봉사, 자선기부와 비영리단체 이 세 가지 요소를 다양하게 사용해 몇몇 사회 복지 서비스 의무로부터 벗어났다. 캐나다와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그 예를 보여준다.
공적 적자에 관한 문제는 1980년부터 서구 토론장의 주메뉴 중의 하나였는데 국가들은 국민들에게 재앙적인 타격을 가하지 않고 사회 복지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실험적인 해결책을 시도해왔다. 미국처럼 캐나다도 ‘시민사회’와 공동체 내 상호부조의 손을 들어 주었다. 1990년 대 초, 이 나라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의 6%를 오르내렸으며 부채 비율은 지방정부까지 포함하면 90%에 육박했다. 국가신용평가가 1992년 트리플 에이 수준 이하로 하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캐나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관대한 표현에 의하면 ‘제3세계의 명예회원’이 되는 데 지체하지 않았다.(1)
1993년 장 크레티엔 자유주의 정부는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가혹한 긴축 정책을 실행해 공무원의 숫자가 20% 줄었고 사회복지 서비스의 많은 분야가 폐지되었다. 연방 차원이든, 지방자치정부 차원이든 모든 계층이 타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예산이 필요한 사용처는 계속 증가하기만 했다. 지방 공동체 기구들을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퀘벡 주에서는 1992년에서 1996년 사이 보건부와 사회 복지부가 관리하는 계획의 총 예산이 두 배로 증가했다. 공무원의 숫자가 감소한 반면 임금 수준과 보호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지자체 노동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주의 노동고용부 장관인 루이즈 아렐은 “퀘벡 주와 캐나다의 여타 지방정부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국가에서는 국가가 서비스와 보조금을 나누어주는 방법에 있어서 방향 전환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 방법으로 그녀가 제시한 것은 “국가가 그 중요성을 지방정부에 차곡차곡 이월한다”는 것이었다.(2)
이 발상이 영국 수상 데이비드 카메론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인가? 그는 2010년 이른바 ‘빅 소사이어티’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타임>지에서 “기업가 정신을 해방시키는 멋진 시도”라는 칭찬을 받은 런던의 이 정책 역시 자원봉사와 지방정부의 활동을 조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국 단위로 이루어지는 서비스는 16~17세 정도의 젊은이들이 평균 50스털링을 받고 3주 동안 자신이 선택한 단체에 참가해 일할 수 있게 한다. 국가 복권이 많은 액수를 후원하는 ‘빅 소사이어티 네트워크’라는 것이 “젊은이들이 좋은 일에 참여하려고 자기가 거주하는 동네에 옹기종기 모이는 것을 돕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개발하고 관리하고 추진한다.”(3)
예컨대 포인트 제도라는 것은, 가장 헌신적으로 일하는 자원봉사자나 공동체 노동자들에게 포인트를 부여하는데 이것으로 상점이나 식당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4) 이것 말고도 사회성 연계 채권이라는 것도 있다. 가장 상징적인 예를 피터스버로우 교도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15개의 ‘후원자’들이 공동체 단체를 통해 5백만 파운드를 이 교도소를 출소한 재소자들이 다시 사회에 적응하는 데 투자했다. 만일 2016년까지 출소한 재소자들의 재범률이 7.5%를 초과하지 않으면 국가가 원 투자금에 이자와. 이는 재범률을 낮추어서 공공 경제를 부흥시킨 공적은 인정해서 성과금을 덧붙여 환불해 줄 것이다.(5)
자선행위도 하고 동시에 이익도 남기는 것이 프랑스 기업 연구소의 흥미를 자극했다. 사장단 측의 이 싱크탱크는 프랑스에 영국식 ‘빅 소사이어티’ 모델을 도입하고자 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책도 그 문제가 발생한 사회 자체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대한 장애가 있었다. “국가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프랑스 정치 풍토에서는 시민사회가 갖는 의미가 전통적으로 약했다”는 점이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에 대한 믿음이 분명 영국보다 더 집요하기에 프랑스 역시 30년 전부터는 자선 분야의 발전을 격려하고 있다. ‘소외’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빈곤층은 엠마우스나 사랑의 식당(Restos du Cœur), 혹은 군소 지역 단체 같은 거대 조직을 통해 자원봉사와 자선 단체들의 보살핌의 대상이 되어왔다. 마찬가지로 지역 자치 단체들의 정책도 부분적으로는 ‘도시 주변 변두리의 문제’를 지역 자선단체들의 임무로 할당하려는 생각에 의존해왔다. 소위 오랫동안 “지역 내 사회 개발”이라고 부른 것이 다름 아닌 그 예이다. 교외지역 역시 수많은 단체가 생겨나 문화 스포츠 활동을 주도하고 새로 전입한 사람들을 행정적으로 도와주고 탁아소를 운영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데 모두가 가용 자금이 적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프랑스의 자선분야는 보수가 빈약하고 노동조건이 불안정한 것이 특징이다.(7)
프랑스에서 자선부분은 대부분이 공적 보조금과 회원들이 납부하는 회비와 서비스 판매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운영된다. 비록 최근에 와서 기부문화가 빠르게 퍼지고는 있지만 자선단체나 재단에 들어오는 기부금은 2013년 40억 유로를 넘지 않았다. 국내총생산의 0.2%에 해당된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2%다. 2003년부터는 개정된 콜뤼쉬 법에 따라 개인 기부자의 경우 기부액의 3분의 2, 기업은 60%까지 면세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세금 여건이 자선에 훨씬 더 유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프랑스인들은 국가를 통한 부의 재분배를 선호한다. 그리고 프랑스의 억만장자들은 재산의 일부를 현대 예술작품을 모으는 재단에 기부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1) ‘Bankrupt Canada?’, <The Wall Street Journal>, 12 janvier 1995
(2) Marcel Sévigny, ‘Le mouvement communautaire et la récupération étatique’, Possibles, Montréal, vol. 27, n° 3, été 2003에서 인용
(3) ‘Smaller government: Bigger society?’, session 2010-12,
www.publications.parliament.uk
(4) Rachel Williams, ‘Council plans ‘big society’ reward points’, The Guardian, Londres, 2010년 10월 31일
(5) Brinda Ganguly, ‘The success of Peterborough Social Impact Bond’, 8 août 2014,www.rockefellerfoundation.org
(6) ‘Royaume-Uni, l’autre modèle? La Big Society de David Cameron et ses enseignements pour la France’, Institut de l’entreprise, 2014
(7) Fanny Darbus et Mathieu Hély, ‘Justes causes et bas salair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4년 4월호
미국의 비영리분야
2013년 기준으로 미국에는 142만9,801개의 비영리단체가 있다. 이중 96만6,599개 단체가 자선단체이며 9만6,584개가 재단이며 36만6,618개의 단체가 무역사무소나 민간 동호회 등과 같은 기타 범주에 속한다.
2013년 미국에서 자선 기부 금액 총액은 3,351억 7천만 달러에 달한다. 이 액수는 2,680억 유로에 달하며 국내총생산의 3%에 해당되는 액수다. 이중 72%는 개인기부자들이 한 것이며 15%는 재단, 5%는 사기업들이 기부한 금액이다. 나머지는 유증에 의한 금액이다. 참고로 비교하자면 프랑스에서는 2012년 기업 및 개인 기부 총액이 40억 유로이며 이는 국내총생산의 2%에 해당된다. 영국에서는 2011~2012년 93억 파운드(116억 3천만 유로, 국내총생산의 0.7%), 캐나다는 2010년(접근 가능한 마지막 통계) 106억 캐나다 달러(74억 달러, 국내총생산의 0.5%)이다.
총액 3,351억 7천만 달러 중 3분의 1에 가까운 31.5%가 교구와 종교자선단체에, 16%가 교육 분야에, 12.5%가 비종교적인 사회복지에, 10.5%가 보조금을 분배하는 임무를 맡은 재단에, 9.5%가 건강 분야에, 5%가 예술과 문화 분야, 4.5%가 인도주의적 목적에, 3%가 환경 관련 명분에, 7.5%가 다양한 목적에 할당되었다.
미국 성인 중 4분의 1 이상인 6,450만 명이 2012년 비영리단체에서 자원 봉사를 했다고 말했으며 이는 79억 시간, 1,750억 달러 가치의 무임금 노동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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