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아저씨
제가 이런 소리는 안하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듣다듣다 보니까,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하신 것 같아서 운을 띄웁니다.
최경환 아저씨. 저는 좀 화가 나있습니다. 아저씨가 하는 말을 듣고 짜증이 났기 때문이에요. 총리 대 찌질이 대학생으로 말하지 말고 계급장 떼고 우리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상상해봅시다. 반듯한 양복에, 기름 바른 단정한 머리. 서류 가방도 들고오셨겠죠? 성공한 50대 엘리트 관료의 전형을 예상해봅니다. 저는 기모레깅스를 입고 노트북 든 가방을 메고 그 앞에 앉아있겠습니다. 제가 요즘 즐겨듣는 홍진영이 ‘산다는 건’을 BGM으로 틀어놓을 게요.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래요.’ 이런 구절로 시작하는 그 노래 말입니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다. 이 말을 들으면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실까.
“그래. 산다는 게 다 그렇게 힘들고 그렇지. 암.”
그런 말을 하실까요? 요즘 한참 욕 많이 드시느라 힘드실 것도 같습니다. 심란한 얼굴로 소주 한 잔 쪼로록 따르신다면, 저는 그 병 냅다 뺏어 제 잔부터 채울렵니다. 총리님? 아저씨? 아저씨가 말하는 ‘산다는 건 다 그렇다’는 의미가 지금의 20대에겐 어떻게 다를지 생각해보셨나요? 경제판 모서리도 제대로 못 집는 학생입니다만, 제가 체감하는 ‘산다는 건’ 아저씨 생각과 많이도 다릅니다.
서울 20대 사망자 2명 중 1명이 자살
서울시 통계를 보면 지난해에 40대 이상은 암으로 죽고, 20대는 자살로 죽었답니다. (서울시 ‘서울시민의 건강과 주요 사망 원인’ 통계, 11월 26일 ) 전체 사망자 4만 2063명 중 20대가 552명이었습니다. 이 중 반 이상이 자살로 죽었습니다. 51.6%. 과반수가 넘습니다. 장년층이 견디다 견디다 속 곪아 암으로 죽는 케이스라면, 청년층은 애쓰다 애쓰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비극입니다. 산다는 게 다 그렇다는 말. 아부지 세대랑 우리 세대랑 같은 무게로 쓰고 있을까요?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에서 이런 비교를 했습니다. 최경환 아저씨 나이가 59세. 제 나이가 스물 다섯이니 우리 둘이 겪은 시절, 겪을 시절을 비교하는 표입니다. 아저씨. 제 친구들은 평균 1300만원어치 빚을 지고 대학을 나갑니다. 요즘엔 취업도 힘들어서 1년 정도 ‘취준’하는 건 찡찡댈 축에도 못 끼구요. 기업은 스펙초월전형이다 뭐다 그럴싸한 말을 만드는데, 주변에 토익 점수 하나 없이 이력서 쓰는 애들 본 적이 없습니다.
강남에 토익 학원 빌딩은 높아져만 가는데, 지방에서 올라온 내 친구 집은 좁디 좁은 세 평 방입니다. 스타벅스 커피 마신다고 팔자 좋은 대학생 아닙니다. 오래오래 눌러 앉아 눈치 안 보고 이용할 공간 찾아, 빌딩숲에서 갈 수 있는 ‘자리’ 찾는 겁니다. 밥버거 먹고 핫식스 마시며 밤새 일하는 세대가 우리입니다.
주변 사회초년생은 다 ‘야근er’인데 대한상공회의소인지 대한공상회의소인지는 왜 “한국 근로자들은 경쟁국보다 일하는 시간도 짧고 생산성도 낮은데 월급을 많이 받아간다”고 비난이랍니까. (참고 기사 : 11월 17일, ‘아시아 경쟁국이 근로시간,임금,생산성 비교 및 시사점’) 두 명 야근분 합치면 일자리 하나 정도는 거뜬히들 생길 거 같은데 왜 채용인원은 항상 그렇게 적습니까. ‘0명 채용’이란 말이 진짜 0명 채용하는 게 아니라 골라 채용한다는 말이란 걸 눈 비비고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고생 대결 하자는 건 아닌데요.
내가 더 힘든지 네가 더 힘든지 우열을 가리자는 게 아니라요. 우리 같이 좀 잘해보자는 겁니다. 제 학자금 빚이 1400만 원이면 그걸 제가 혼자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제가 독립해나가 월셋집에 살면,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은 거뜬히 넘는 그 보증금을 제가 다 낼 수 있을까요? 다 내고 싶어요. 다 내려고들 대기업에 줄 섭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임금차가 배입니다. 배요, 배. 2배.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상시종업원 300명 미만)의 임금은 대기업 (300명 이상)의 52.9% 수준입니다. 5천 vs 2천 645. 임금 격차뿐이겠습니까. 나라 복지는 기대 안 해도 회사 복지는 기대합니다. 대기업 가면 일하는 기계 된다고들 하는데도 다들 그렇게 대기업 가고 싶어합니다. 올 하반기 삼성입사시험 싸트 응시생이 10만명이었습니다. 대졸자 3명 중 1명꼴입니다.
부모한테 빚 안 지고, 독립해서, 멀쩡하게 회사 다니고 싶어요. 보증금도 다 내가 내고, 학자금 빚도 다 내가 갚고 그러고 싶어요. 그래서 대기업 가려고들 한다구요. 안정적으로 적어도 3-4년은 밥벌이할 수 있는 직장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이거 본인이 못 갚으면 부모 빚 되고 형제 빚 돼요. 청년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 못 만들면, 청년만 손해 아닙니다. 안 그렇습니까, 또 하나의 부모 최경환 아저씨?!
물론 우리는 각자도생, 알아서 살 길을 영리하게 찾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아저씨가 그렇게 안심하고 남 일처럼 보시면 안되지요. 자기 자식 일처럼, 자기 일처럼 다시 생각하셔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미리 말하지만 협박입니다.
누가 더 힘든지 싸우자는 거 아닙니다. 아저씨. 우리가 취업 못하고, 창업 망하고, 집 못 사면 누가 죽는지 아세요? 우리 부모님 세대가 죽어납니다. 가진 거라곤 집 한 채뿐인 우리 이모가 우리가 집 안 사주면 어떻게 살아요. 집값 떨어져서 본전도 못 찾으면 우리 이모 노후자금 누가 대준답니까. 본전 못 찾아 연금 받고 먹고 살면, 우리 이모 받을 연금도 우리가 내야하는데요. 지금은 5명이 노인 1명 부양하는 시대지만 20년 뒤면 청년 둘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옵니다. 청년이 이 사회 허리입니다. 허리 끊어먹으면 달릴 힘이 어디서 난답니까? 사회를 지탱하고, 애도 낳고 연금도 내야합니다. 누가요? 우리가요.
그런데, 열심히 돈 낸다고 국가가 우릴 보살펴줄 거란 미래 보장도 없습니다. 연금이 고갈돼도 국가 지급 보장 의무는 없다 합니다. 제가 60살 먹어 기금이 고갈되면 저는 메리츠화재에 의존해 노후를 보내야하겠습니다. 국가에서 자꾸 애를 낳으라고 하던데요. 아저씨 같으면 20만원 준다고 ‘다자녀’ 낳겠습니까? 택도 없는 당근으로 우롱하면 안됩니다.
임금이 낮고, 직장 처우가 열악하면 가정과 사회에 소홀하게 될 겁니다. 가정과 사회에 소홀하고, 미래에 기대가 사라지면 우리는 더이상 이 사회의 ‘허리’로 기능하지 않을 겁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한국을 ‘인구소멸 1호 국가’로 지목했습니다. 2006년의 일입니다. 아저씨. 아저씨가 자꾸 헛소리를 하면 우리는 순순히 애를 낳아주지 않을 겁니다. 다른 정치인 분들 다 마찬가집니다. 자꾸 청년을 ‘봉’으로 알고 선거 때만 빛깔 좋은 개살구를 던질 경우, 순순히 연금을 내주지도, 집을 사주지도 않을 거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협박은 그 쪽이 먼저 하셨잖아요.
맞습니다. 협박입니다. 협박으로 협상의 전략을 취하는 이유는 아저씨가 먼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당신, 제 앞의 이 아저씨가 기자들과의 만찬 간담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때문에 기업들이 겁이 나서 인력을 뽑지 못하고 있는 만큼 노동시장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게 들리더이다. “일자리를 인질로 잡고 있으니 순순히 정규직 이놈들 권리를 순순히 내놓아라.” 해고의 절차적 요건 합리화를 통해 고용을 유연화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들 해석 해주는 걸 들었습니다. 아저씨. 저는 고용이고 노동시장이고 잘 모릅니다만 직관적으로 기업들이 ‘겁이 나서’ 인력을 뽑지 못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갑니다. 기업들이 “이놈을 한 번 뽑으면 해고하기가 힘드니까 뽑지를 말아야겠어.” 이게 채용공고를 안 내고들 버티는 이유입니까? 그럼 잘 해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정말 우리 모두가 사는 방법입니까? ‘겁이 나서’ 인력 못 뽑는 기업들과 잘릴 까봐 ‘겁이 나는’ 노동자의 고민의 무게 중 무엇을 더 무겁게 느끼십니까? 정규직 살 깎아 제 자리 생긴다고 그 자리가 ‘좋은 삶’을 보장할 일자리일지 의문입니다.
정규직을 너무 보호해서 불만인 게 아니라 비정규직을 너무 보호 안 해서 불만이랬는데! 자꾸 아저씨는 창의적 해법을 말합니다. 아니, 창조적이란 말이 유행이니 ‘창조적 해법’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습니다. ‘정규’라는 말과 ‘비정규’라는 말의 간극이 너무 커서 불만이라니까 그 간극을 한 놈을 끌어내려 줄이겠다 합니다. 저는 아저씨가 가진 그 질문과 해법이 모두 이해가 안 갑니다. 경제부총리 되면서 했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보호 강화 얘기는 허울 좋은 선물이었어요? 알면서 뒤로 뺀 카드입니까 아니면 그냥 한 번 내본 카드입니까.
아저씨. 우리가 고생고생해서 얻은 일자리가 ‘저질’이면 누가 제일 힘들지 생각해보세요. 우리도 힘들지만, 우리가 우리 엄빠 세대 부양하기도 힘들 거고, 현금 용돈은 커녕 빨간 내복도 못 사드릴 거에요. 손자 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구요. 애한테 들일 돈도 없지만, 애 보기도 힘든 환경에서 일하게 설계해두고 우리한테 뭔가 막 기대하고 막 그러실 건 아니죠?
와! 우린 집도 없어!
최경환 부총리님은 아마 소 팔아 대학 가던 시절에 대학생이었겠지요. 우리 엄마 연배니까. 우리 세대는 부모가 집 담보로 대학 보내는 시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는 민달팽이로 살 세대입니다. 부모는 하우스 푸어, 우리는 민달팽이.
30대 청년의 평균 소득이 3000만원인데,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4억 8천입니다. 우리 세대는 16년을 굶고 일해야 아파트 한 채 삽니다. 월세로 한 달에 50만원씩 내다보니 적금도 버겁습니다. 금리 낮춰주셔서 이자는 바라지도 못하구요. 내 힘으로 내 집 마련? 전세집이나 제대로 구하면 다행 아닐까요. 총리님 정책 덕분에 전세집 구하기도 하늘에 별따기라고 합니다만.
물가를 반영한 임금 상승률이 0%대. 이 쥐꼬리 모아 통신비 내고 애도 키우고 연금도 내고 노인도 부양하고. 그리고, 살 집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 와중에 부총리님 뭐하셨습니까? 빚 더 내서 집 더 사라. 그런 해법 내놓으지 않으셨습니까? 주택담보로 낸 빚으로 겨우 마트에서 손자 신발 사주는 부모님들 처지는 생각도 않고 “집 살 거지?” 하지 않으셨냔 말이에요. 부동산 담보 대출 규제 풀어서, 부모님들 다 생활비로 쓰고 계시답니다. 대출 목적을 물었더니 절반은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빌린다고 했고, 절반은 그 외 목적으로 돈을 빌렸습니다. 그 나머지 절반 중 33%가 기존 대출 상환 자금을 위해 쓰였습니다. 사정을 모르니 해법이 다르고, 자꾸 어긋나는 것입니다. 전셋값은 다시 폭등하고, 가계부채가 10월까지 11조 늘었습니다. 이 빚은 고스란히 ‘우리’의 빚입니다.
2013년도 말을 기준으로 전문대 이상 맞벌이 신혼가구의 평균 실질소득이 월 425만원입니다. 여기서 생활비-세금, 사회보험,식료품, 교통, 통신비 등-를 다 빼면 소주 세 병 사먹고, 82만원이 남습니다. 월 흑자액 82만 6000원. 월세 내고 빵원 남거나, 용돈 정도 남습니다. 전세? 하늘에 별 따기. 월세로 근근히 허리 졸라 삽니다.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정책질의에서 욕을 좀 먹으셨다죠. ‘나도 전세 산다’며 전세 사는 설움을 안다고 하셨다는데, 서초구에 8억 8000만원짜리 집을 한 채 본인 명의로 두시고 전세 사느라 얼마나 ‘서러우셨’습니까? 부모님 집에 사는 호강을 못 누리면, 20대 애들 고시원에 삽니다. 사정이 나으면 4평 짜리 원룸에 살구요. 2013년도 청소년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 비동거 대학생 절반 이상(52%)이 14제곱미터(4.2평) 이하에서 삽니다. 이렇게 못 사는 사람들이 10명이면 개중 4명은 3평도 안 되는 곳에서 삽니다. 최경환 아저씨. 부동산 정책 내놓으면서 ‘당장의 경제’ 얘기 많이 하셨습니다. ‘당장’ 말고 조금 더 앞의 ‘미래’를 생각해도 답은 같습니까? 우리는 ‘당장’ 이렇게 살고, ‘조금 더 앞의 미래’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계속 이런 식이면 우리도 곤란합니다.
미래를 갉아먹고 지금 당장이 얼마나 배부를 수 있습니까? 정규직 갉아먹고 ‘노동자 모두’는 얼마나 행복할 수 있습니까? 빚 내서 배불리고 얼마나 다리 뻗고 잘 수 있습니까? 청년에게 짐을 미뤄두고, 장년 세대는 얼마나 맘이 편할 수 있습니까? 아저씨한테 묻고 싶습니다. 다같이 망하자는 거 아니면 우리 같이 좀 삽시다. 이건 권유나 애걸이 아니라 협박입니다. 우리 ‘같이’ 좀 살 길을 찾아봅시다.
썸머 - 뉴스고로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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