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항생제는 성장하는 박테리아를 죽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즉 박테리아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박테리아는 항생제의 작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박테리아를 움직이는 자전거에 비유한다면, 항생제는 바퀴살 사이로 막대기를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자전거가 움직일 때 막대기는 자전거를 넘어뜨릴 수 있지만, 자전거가 서 있다면 막대기는 그냥 바퀴를 통과하고 맙니다.
이런 식으로 항생제를 피하는 박테리아의 전략은 관용(tolerance), 인내(persistence), 또는 휴면(dormancy) 등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전략은 단순합니다. 위기가 지나갈 동안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헤브루 대학의 오퍼 프리드만(Ofer Fridman) 등은 대장균이 항생제 암피실린(ampicillin)을 이렇게 피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암피실린에 죽지 않는 0.1%의 대장균을 추출해 다시 배양했고, 이를 반복해, 10%가 암피실린에 죽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대장균이 항생제 자체에 저항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단지 성장과 분열이 일어나기 이전에 더 긴 휴면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대장균이 연구진이 항생제를 투여한 시간에 매우 정확하게 반응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항생제를 3시간씩 투여했을 때, 위의 배양을 통해 만들어진 대장균들은 3.5시간의 휴면시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시간이나 8시간 항생제를 투여한 실험에서도 이보다 약간 더 긴 휴면시간을 가지는 대장균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대장균은 그저 위기를 피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시간 동안 위기를 피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떤 원리에 의해 이들이 정확한 시간을 피하게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이들의 유전자를 해독해 이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6개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변이된 유전자를 다른 대장균들에 집어넣음으로써 이 중 세 종류의 변이가 이런 현상을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중 두 유전자는 박테리아로 하여금 주변에 먹이가 없으니 기아(starvation) 상태로 들어가 성장을 늦추게 만드는 유전자였습니다. 세 번째 유전자는 역할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런 휴면 능력이 그저 여러 박테리아 중에 우연히 발생한 것인지 또는 휴면시간을 조절하는 전략이 진화한 것인지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후자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열흘간의 항생제 치료에서 대장균은 위의 전략을 진화시켰습니다. 같은 일이 환자들에게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박테리아가 휴면 시간을 조절하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큰 문제입니다. 일반적인 세균은 특정 항생제에 대한 저항력을 키웁니다. 그러나 이 휴면시간 조절능력은 거의 모든 항생제를 피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팀은 암피실린을 피하도록 만들어진 대장균이 노르플록사신(norfloxacin)이라는 다른 항생제도 피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균들을 퇴치할 수 있을까요? 항생제를 더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저항력이 높은 변종을 만들어낼 우려가 있습니다. 어쩌면, 휴면시간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방해하는 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는, 휴면에 들어간 박테리아를 퇴치하는 약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방법 중 아직 임상을 통과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과 세균과의 전쟁은 항상 쉽지 않습니다. (Phenom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