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다.
(서프라이즈 / 김찬식 / 2009-01-20)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하여 순식간에 진압해야 나라님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충성 경쟁, 농성 중인 철거민들을 그냥 방치하면 무능력한 지휘관으로 찍힐 것이고 기왕 진압하는 거 속전속결로 특공대 투입하여 경찰의 멋진 모습을 나라님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법질서 확립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1년 내내 달고 살던 나라님이 서슬 퍼렇게 있으니 당연히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라도 조기 진압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먼저 깡패들이 철거민 열 받게 하여 폭력을 행사하도록 유도하고 폭력행사는 불법이니 경찰이 나서는 것이고 화염병 던지는 불온세력이니 특공대가 나서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진압하다 사람들이 죽고.
엄동설한에 먹고살게 해달라고 농성하는 것이 경찰로 하여금 그토록 촌각을 다투게 하는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경찰은 주저 없이 초강수를 쓴 것이고 초강수를 쓰게 만든 배경에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조성된 정부의 분위기가 한몫한 것이다.
게다가 신임 경찰총장의 취임. 아래 직원의 충성경쟁일 수도 있고 신임 총장의 한건주의일 수도 있지만 결론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기 진압, 이것이다. “까불면 다친다”라는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고 타이밍상 가장 적합했던 것이 용산 철거민 진압이었기에 철거민들의 죽음이 더 안타깝다.
한겨울에 물대포 맞아 추위에 고통받다 죽을 땐 화염에 휩싸였으니 단 몇 시간 만에 세상의 가장 큰 고통을 다 겪은 꼴이 된다. 그래서 더 불쌍하고 안타깝다.
국민이 서울 한복판에서 여러 명 불타 죽었는데 논평조차 하지 않는 청와대의 행위는 또 무엇일까? 어제 개각했는데 김빠지게 이게 뭐야, 라고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지들도 사람이라면. 너무 당혹스러워서 논평을 자제하는 것으로 해석해 두자.
저항하던 철거민이나 지시에 의해 진압한 경찰관이 무슨 죄가 있을까? 둘 다 피해자일 뿐이다. 철거민이 농성을 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 그리고 진압을 지시한 상부, 결국 가해자는 정부가 되는 것이다.
2층에서 폐타이어 태우며 철거민들을 압박한 철거반원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 저것도 일종의 살인행위 아닌가? 그런데 철거반원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연행됐다는 기사는 접해보지 못했다.
어제 오늘 용산을 누비던 또 다른 가해자인 서슬 퍼런 철거반원들은 지금쯤 피곤을 풀기 위해 낮잠을 즐기고 피해자인 철거민들은 가해자라는 새로운 딱지가 붙어 연행돼 가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법질서 확립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이 죽어나가면서까지 법질서 확립을 외칠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철거민들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을까? 그건 내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외면하다가 일이 터지자 법질서 확립한다고 경찰특공대 동원하여 진압한 건 아닐까? 왜 일 터지기 전에 대화할 생각은 안 했을까?
오늘 새벽 벌어진 진압기사를 보며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국민들이 저런 개죽음을 당하는 나라가 정녕 대한민국 맞나? 라는 자괴감이 든다. 이런 일들은 과거에나 있을 법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현재도 일어났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더욱 아찔하다.
그냥 입 막고 귀 닫고 조용히 살면 문제없겠지, 하지만 그건 이성을 가진 인간이 할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인간은 누르면 누를수록 저항하려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어떤 통제수단으로도 인간의 본능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정말 아니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께 삼가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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