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 sosmu / 2009-01-23)
김씨 이야기
김씨는 20여 년을 근무해온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행한 구조조정으로 지난 1월 명예퇴직을 했다. 아직 자식들은 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먹고 살려면 일을 더 해야만 했다.
재취업을 알아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땅 실업자인 김씨는 재취업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주위에서 창업을 권했다. ‘식당을 할까? 호프집을 할까?’ 근처 용산 쪽에 꽤 좋은 자리를 소개받았다.
방도 딸려 있어 집을 살 때까지 가게에서 지내도 될 듯싶었다. 권리금에 인테리어, 보증금 등 총 비용이 2억쯤 되었다. 전세금도 빼고 조금 남은 퇴직금과 적금들을 모으니 얼추 반은 넘었다. 모자란 돈은 이곳저곳에서 빚을 끌어모으니 어느 정도 맞춰졌다.
하지만, 역시 장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처음 몇 달을 적자를 내며 고생만 했다. 그래도 죽기 살기로 노력하다 보니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네에 뉴타운 뉴타운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뭐 동네 좋게 만든다니 덩달아 기분이 좋다.
‘동네가 더 깔끔해지고 좋아지면, 장사도 더 잘 되겄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재개발을 주도하는 조합 측에서 2,000만 원의 보상금을 줄 테니 가게를 비우란다.
‘뭐야, 이제 겨우 자리 잡고 장사할만하다 싶으니까 나가라고? 거기다 내가 투자한 돈이 얼만데 겨우 2,000만 원? 그럼 나머지 내 돈은 다 어쩌라고?’
말도 안 된다 싶다. 무시해 버린다.
하, 그런데 이게 웬일. 어느 날부터 깡패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 손님들은 점점 발길을 끊고, 김씨는 너무너무 답답하다. 주변 상인들도 같은 처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모두 함께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다. 구청에 민원도 넣어보고 조합 측에 요구사항도 말해본다. 하지만, 듣는 시늉도 안 한다.
답답한 김씨들은 모여서 항의를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깡패들이 와서 할아버지고 여자들이고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패고 끌어낸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도 묵묵부답이다. 아 어찌해야 하나. 너무 막막하다. 그야말로 세상이 깜깜하다.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아 다 포기하고 임시로 장사할 곳이라도, 임시로 거주할 곳이라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다. 다 무시한다.
김씨는 궁금하다. 땅주인과 투기꾼들의 배를 불리는 이따위 개발을 위해 왜 자신 같은 서민들의 재산권을 강제로 침탈하는가? 그리고 왜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인가? 이 추운 겨울에 이 돈으로 도대체 어딜 가라는 것인가? 당장 이 많은 빚은 어떻게 해야 하나? 경찰은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는 것인가?
‘안 되겠다. 살아야겠다.’
깡패놈들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고민을 한다.
‘경찰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를 지켜내겠다.’
결사투쟁을 결심하고 준비를 한다. 때마침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외면하는 김씨들을 도와준다니, 컴컴한 동굴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느낌이다.
그 사람들은 김씨들에게 대비를 더욱 단단히 해야 한다고 일렀다. 모두가 외면하는 김씨들을 도와주는 유일한 사람들이다. 이미 김씨들보다 먼저 철거를 당하고 모든 것을 겪어봤던 이들이었다. 맞서 싸울 대비책을 알려준다. 김씨들은 생각한다.
‘아무튼, 이대로 몇 날을 버티면 우리와 대화라도 해주겠지?’
준비를 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깡패놈들에게 시달려도 콧방귀도 안 뀌던 경찰들이 그 쓰레기들과 함께 김씨들을 몰아내려 나타났다. 정말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이다. 자신들을 지켜주는 존재라고 믿었던 경찰이 그들을 괴롭히는 깡패놈들과 한패라니 ….
경찰이 물대포를 쏘기 시작한다. 아래층에서는 깡패놈들이 폐타이어와 나무에 불을 붙이고 위협을 한다. 물대포에 유리창이 깨지고 간판이 휘청댄다. 김씨는 조금 스치기만 했는데도 뒤로 넘어갈 정도다. 그런 물대포 댓 개가 김씨들을 공격한다.
주변 모든 곳에 경찰들이 깔렸다. 예전 같았으면 너무 든든했을 모습이다. 이렇게 많은 경찰이 자기들을 지켜주러 왔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그 경찰이 되려 자신들을 공격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 이런 걸까? 김씨는 절망에 스며든다.
‘도저히 숨을 못 쉬겠다. 도대체 내가 무슨 그리도 큰 죄를 저질렀나?’
정말 김씨는 자신이 경찰과 싸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젊은 시절, 주위의 많은 대학생이 지금 김씨 손에 있는 꽃병을 들고 공권력과 맞서 싸울 때 김씨는 ‘왜 저렇게 위험한 것을 들고 나라에 맞서는 걸까?’ 하며 그들을 비난했었다. ‘저 위험한 짓들을 도대체 왜 하는 건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김씨는 지금 자신을 도우러 온 이들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남 일이다 싶어 그냥 무시했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 김씨는 그들을 욕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받아 처먹으려고 저리 생떼를 부릴까?’
그때는 김씨도 그랬다. 설마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칠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받아내려고 생떼를 부리는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이 사실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화염병을 던졌다. 던진다. 국가는 김씨를 지켜주지 않는다. 외려 자신을 몰아세운다.
그래서 김씨는 꽃병을 던질 수밖에 없다. 가슴에 차오르는 절망과 눈물을 담아 던진다. 팡팡 터진다. 이 부조리한 현실이 이글이글 저 꽃에 빨려 아스러지길 ….
‘도대체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먹고살기 참 힘겹다 ….’
점점 아래층에서도 깡패들이 몰려온다. 결국, 김씨들은 마지막 보루인 골리앗으로 향한다. 옆에 박씨는 흠뻑 젖어 덜덜 떨고 있다. 옆에 이씨는 꿈뻑꿈뻑 눈물만 흘린다. 이미 망루에는 물이 무릎까지 차있다. 너무 춥다. 이 추운 겨울 물속에서 물을 맞으며 있으니 너무너무 춥다. 밖에는 공중에 컨테이너가 날아다닌다. 김씨는 지금 너무너무 무섭다.
갑자기 어디선가 불길이 일었다. 뜨겁다? 아니,. 따뜻하다. 추운 겨울 아침, 물대포에 얼어 있는 김씨의 몸을 녹인다.
‘아주 따숩다. 따숩다. 나를 외면한 체 물대포를 쏘아대는 내 조국보다 저 불꽃이 더 따숩다.’
김씨는 지켜주고 싶은 마누라와 새끼들이 보고 싶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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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daum.net/pgrsj/2553389 |
Epilogue
개인적으로 용산참사를 보며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생존을 위한 그 처절한 투쟁을 단지 돈을 더 받아내려는, 그것도 화염병 등등 무서운 도구들을 이용한 몰상식한 사람들의 생떼라고 인식하는 여러 사람의 글을 보며 너무너무 안타깝고 무서웠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떠오른 것을 어설프나마 무작정 적어보았습니다.
김씨 아저씨는 우리 주변에 수없이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정이입을 하여 제 이야기처럼 적었다가 정말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김씨 아저씨의 이야기로 바꾸어 적었습니다.
조금은 편향된 내용일 수 있습니다. 강자보다는 약자에게 편향되는 것은 정당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차별은 평등입니다.
힘겨운 투쟁 속에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힘겨운 임무 수행 중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경찰, 정부 여당에게 고한다.
깡패들이 활개를 쳐도 지켜주질 못할망정 그 쓰레기들과 함께 소외된 이들을 몰아내려 안간힘을 쓴 공권력이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변명 따위를 지껄이는가? 정말 변명하는 그 주둥이에 물대포를 쏘아주고 싶다.
누구의 잘못이건, 공권력 탓에 국민이 불에 타죽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잘못을 떠넘기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당신들이 정녕 사람인가?
무조건 사과하라. 더는 내 조국을 부끄럽게 하지 마라.
※ 출처 -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8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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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96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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