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사회

복지예산, GDP 7%는 너무 적다

pulmaemi 2009. 3. 4. 09:18


이제 진짜 전쟁 상황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 얘기가 아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국제적인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실물경제의 타격이 대량실업, 서민생활 붕괴,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라는 모습으로 침공을 개시했다. 육해공 전방위에서 무자비한 화력으로 무장한, 가공할 만한 적군의 침공이다. 청와대 벙커회의에서도 부랴부랴 긴급현안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모습을 보면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선전포고가 나온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멀리서 다가오는 포화가 한국만은 비켜갈 것인 양, 제대로 된 무장조차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서울은 안전하다는 방송에 안도하려 애썼던 몇 달 전이 그리울 지경이다.

국민행복 마지노선 우선 지켜야

국민행복의 마지노선을 지켜내기 위한 이번 전쟁은 지구전이 될 가능성이 크고 시간을 끌수록 전황은 암울해질 것이다. 초기대응에 실패한 원죄는 이명박 정부의 준비소홀에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성장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약속에만 취해 복지 안전지대의 확보와 사회적 무장에 안이하게 대응한 우리 사회 전체의 가벼움도 현 상황의 공모자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가 전쟁이라고 외치면서도 경제의 궁극적 목적인 복지와 행복의 진지구축을 위한 비용조달에는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굴었을까? 당장 코앞에 닥친 금융위기도 잘 짚어내지 못하면서 복지국가의 확대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주장에는 어찌 그리도 당당할 수 있었을까? 보건 의료 돌봄 교육 주택 빈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세금은 내지 못하겠다는 억지는 왜 부렸을까?

우리 모두가 공모한 결과는 실로 참담하다. 이번 전쟁에서의 최후방어선을 구축할 행복예산의 절대적 파이가 터무니없이 작다. 1인당 국민소득 1만5000달러 시점에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의 크기를 나라별로 비교해보면 우리가 확보한 실탄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성장과 복지를 통합적으로 이루어 온 북유럽 국가가 25% 선, 사회보험제도에 의해 적어도 근로소득계층에 대한 복지만은 책임질 수 있었던 대륙유럽 국가의 경우에는 22% 선, 신자유주의의 첨병으로 이름 높은 앵글로색슨계 국가마저도 16% 선에 이른다. 선진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복지지출 수준을 기록한 미국의 경우도 15% 선에 육박하지만 한국의 지출 수준은 7% 정도에 불과하다. 이래도 더 기다려야 하는가?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면 전략도 무기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경쟁적 성장보다는 행복의 마지노선을 지켜내는 일이 급선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위기상황에서는 항상 복지국가가 원군이 되어 왔고, 그렇게 구축된 국민행복의 방어선은 뒤이은 위기에서 스스로 빛을 발했다. 대공황 속에서 뉴딜이 나왔고 양차대전의 포화 속에서 현대적 복지국가가 도약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시대의 대량실업사태 속에서 한국형 기초생활보장의 밑그림이 나왔다.

작은 정부만 외치는 것은 무책임

이번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뭔지도 잘 모르고 휩쓸렸던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광풍으로 끝나야 한다. 우리가 무조건 따라가려 했던 미국마저도 복지국가의 기치를 다시금 꺼내 드는 상황이다. 국민행복의 진지가 파헤쳐질 극한 상황에서도 오로지 작은 정부만을 외치는 모습은 소신이 아니라 무책임이다. 전쟁수행의 담당자는 민간이 아니라 정부요 국가다. 정부는 공동생존과 나눔의 원칙을 지켜내기 위한 이번 전쟁의 비용부터 마련하고, 국민은 그것을 서둘러 요구하라. 벌써 전쟁은 시작됐는데 여기저기서 터지는 포성이 아직도 들리지 않는가?

 

안상훈 서울대 교수·사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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