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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 풀린 'S·K·Y대'…수험생 혼란 가중

pulmaemi 2012. 8. 21. 10:26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 기조 정면으로 거부
입학사정관 통한 학생 선발은 공정성 시비

 

지난달 15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총회 자리. 화두는 단연 2년 차에 접어든 대입 자율화 문제였다. 대다수 총장들은 "새 정부가 1년 동안 대입 자율화를 추진해왔다고 하지만 과연 뭐가 달라졌느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면전에서 오간 얘기였다. 대입 자율화 원년을 허송세월했다는 자평이기도 했지만, 일부 주요 대학의 일방독주식 입학 전형안과 이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 대교협의 무능 등을 질타하는 목소리였다.

도 넘어선 주요대의 멋대로 입시안

입시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인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 도입의 근본 목적을 무색하게 만드는 주범은 소위 '메이저 대학'의 입시안"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이른바 'SKY대학'의 입학 전형안 일부 내용이 특히 도마에 올라있다.

가장 논란이 뜨거운 대학은 고려대. 이 학교 2009학년도 수시모집 1단계 전형이 대입자율화 논란을 촉발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신이 5~7등급 하위등급인 외국어고 출신 학생들은 대거 합격한 반면 1~2등급 일반고 학생들은 무더기 탈락했다. 내신 100%(교과 90%+ 비교과 영역 10%) 전형에서 우등생은 떨어졌지만 열등생은 합격한 꼴이다

.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이사는 "교과 성적을 90% 반영한다는 학교 방침은 새빨간 거짓말이 됐다"며 "고려대측이 구체적인 해명을 해야 할 타이밍이 임박한 것 같다"고 고려대의 '결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2010학년도 서울대 정시모집 전형안은 "국립대가 사립대처럼 점수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2단계에서 20%나 반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대는 1단계에서 수능 성적만으로 모집인원의 2배수를 선발한 뒤 2단계는 내신 50%(교과 40%+ 비교과 10%), 논술 30%, 면접 20%를 일괄 합산해 최종 합격자를 뽑아왔지만, 올해 입시에서는 면접을 제외하는 대신 수능을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창의성이나 잠재력 보다는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을 한 명이라도 더 뽑겠다는 발상이다. 한만중 전국교직원노조 정책실장은 "점수 위주의 학생 선발을 지양하고 있는 새 정부 대입 자율화 정책의 기조를 국립대가 정면 거부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연세대가 구상중인 2012학년도 대입안은 "대입 자율화 방향과 거꾸로 간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수시모집에서 내신을 일절 반영하지 않고 대학별고사만으로 전체 정원의 20%를 선발하겠다는 내용이다. 인문계는 언어ㆍ영어ㆍ수리 능력을 측정하는 논술, 자연계는 수학과 논술 문제를 독자적으로 출제할 예정인데, 연세대 측은 "예전의 본고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벌써부터 "본고사를 치러야 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파장은 커지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경희대 등도 2009학년도 수시 논술에서 영어와 수학 등 특정 교과목의 지식을 묻는 문제를 내 본고사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윤지희 교육과 시민사회 대표는 "주요 대학들이 내놓거나 추진중인 입시안은 내신을 철저히 무력화시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며 "점수를 따지는 지필고사를 선발의 중심이 놓는 전형이 적지 않은데, 이는 대입자율화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걸음마 입학사정관제

입학사정관제는 대입자율화 정책의 뼈대임에 틀림없지만 연착륙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제도는 내신과 수능 성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학생의 독특한 이력과 열정을 평가하기 위해 2005년부터 추진됐다. 새 정부 들어 입학사정관제 전형이 본격화하면서 2009학년도 16개대, 2010학년도에는 49개 대학으로 확대될 예정이나, 성과는 기대 이하다. 올해 입시에서도 일부 대학을 제외하곤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잠재력 있는 학생을 다양한 기준을 통해 걸러낼 수 있을 만큼 전문성을 구비한 입학사정관이 많지 않은데다, 공정성 부분도 시비에 휘말려 있다. 올해 입시에서 A대 입학사정관 특별전형에 응시했다가 떨어진 한 수험생 학부모는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았는지 알 수가 없어 학교측에 항의했지만 아직까지 명쾌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정부 요구로 도입하고 있으나 예산 문제 등 때문에 입학사정관 양성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는 "공정성과 윤리적 책임감을 갖춘 입학사정관을 확보해 제대로 육성하는 토대가 구축돼야만 대입자율화의 한 축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