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청년에게 꿈을

<홈스쿨러 친구 사귀기>, 지상 강좌 -민들레에서 펌

pulmaemi 2012. 7. 10. 11:40

김광화

 

학교를 안 다니면 친구를 어찌 사귀지? 친구 관계가 너무 좁아지는 거 아니야? 어떤 점에서는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홈스쿨링’이라면 우선 집만 떠오르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의문이겠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아직 홈스쿨링 경험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있으니까 더 그럴 것이다.


이제라도 그런 경험을 조금씩 나누고자 한다. 최근 10여년 역사만 돌아보아도 관련 사례는 많으니까. 먼저 친구에 대한 정의부터 새롭게 내릴 필요가 있다. 친구를 이야기할 때 자주 빠지는 함정이 바로 또래 친구다. 이러한 또래 관계는 학교 문화가 만든 지극히 인위적인 관계일 뿐이다. 나이별로 아이들을 학교라는 공간에 가둘 때 만들어진다.


그러나 홈스쿨러들에게 친구는 또래 친구만을 뜻하지 않는다. 친구(親舊)는 말 그대로 서로 친한 사이다. 우리네 일상적인 삶을 돌아보아도 사실 또래 친구보다는 서로 잘 통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친구라고 할 때 또래 친구를 넘어, 서로 잘 통하는 사이라고 분명히 정의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홈스쿨러들에게 첫 친구이자 계속 이어지는 친구 관계는 홈스쿨러 사회성(1)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부모와 형제다. 부모나 형제라는 말은 혈연을 기초로 지어진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맥락에서 이를 달리 보면 친구가 된다.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친하게 사귀는 관계는 당연히 부모일 수밖에 없다. 물론 부모가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키운다면 이런 친구 관계는 형성이 되지 않겠지만 보통 가정에서 어린 아이들의 일차 친구는 부모다.


그러다가 형제가 생기면 형제가 또 친구가 된다. 한 집에서 같이 자라면 당연히 서로를 잘 알게 된다. 가정 밖에서 이루어지는 사람관계에서 크게 휘둘리지 않는다면 형제는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 우리보다 뒤늦게 홈스쿨링을 접한 몇몇 이웃들을 보면 형제 사이 다툼이 거의 없다. 부러울 정도다. 처음에는 이게 참 신기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따돌림이나 폭력을 경험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형제끼리 사이가 참 좋다.


아이들이 점점 자란다고 해서 식구끼리 친구처럼 지내는 관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더 깊어진다. 왜냐하면 성장하면서 서로를 더 깊이, 더 많이 알기 때문이다. 또 자라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도 자꾸 자라기 때문이다.


식구 사이 서로 친구가 되면 다시 친구는 친구의 친구로 뻗어간다.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그 친구들과 나머지 우리 식구들도 서서히 하나 둘 친하게 된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친하게 바뀌는 관계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 친구들 열 몇 명 정도는 이름과 관심분야 그리고 그 부모가 하는 일들까지 웬만큼 안다. 또한 아이 친구 부모들과 교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홈스쿨러들의 친구 관계는 가정을 토대로 이리저리 뻗어간다.


홈스쿨러들이 친구를 사귀는 두 번째 특징은 뭘까? 바로 자기 자신이 친구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가족이란 친구는 자신이 선택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가족 이외 친구는 선택이 된다. 이건 홈스쿨러들에게 학교가 선택이듯이 친구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학교는 또래 아이들 몇 십 명을 인위적으로 모아놓는다. 이 때는 아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친구도 사겨야하는 어려움에 놓인다. 보고 싶지 않는 아이들과 한 반에서 같이 오래도록 생활한다는 건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특히나 개성이 강한 아이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나 학교 폭력이라 하겠다.


여기 견주어 홈스쿨러들은 친구를 선택하며 사귄다. 자기 가정 안에서 사람 관계가 충분히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친구를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때가 온다. 친구를 사귀고 싶고 그리워하는 때가. 친구를 빨리 그리고 여럿 필요로 하는 아이는 자기 관심에 따라 사람을 찾아다니며 사귄다. 요즘은 학교 밖에도 이런저런 모임이 있고, 캠프 형태의 행사도 많다. 사춘기 나이만 되도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훌쩍 떠나 친구들을 사귄다. 심지어 청소년 홈스쿨러만 되도 내가 아는 상당수 아이들이 해외 봉사 활동이나 워크나인 같은 모임을 통해 해외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을 사귀는 사람과 적은 사람을 깊이 사귀는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사회성이 좋은가 를 가르는 짓은 무의미하다. 이런 방식은 자칫 아이에게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제 빛깔을 묻히게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친구 숫자가 아니라 친구 관계로 인한 만족도가 얼마나 높으냐이다. 적은 수의 친구지만 긍정적인 자극을 서로 많이 주고받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있을까.


이렇게 아이가 친구를 선택하며 자라다보면 점점 그 선택의 범위는 넓고도 깊다. 우선 또래를 훌쩍 넘어 사귄다. 우리 아이들이 하는 모임을 보면 사진에서 보듯이 위아래 다섯 살 정도까지는 큰 무리가 없이 사귀는 거 같다. 학교 선후배 사이에서 나타나는, 엄격한 분위기하고 달라도 너무 다른 분위기가 아닌가. 게다가 이 아이들 가운데는 어른들과도 잘 사귀는 아이들이 있으니 사실 나이는 친구가 되는 데 크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지역 역시 학교에 견주어 자유롭다. 학교는 공간과 시간에 아이들을 묶어둔다면 여기에 견주어 홈스쿨러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형편에 따라 훌쩍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기도 한다. 내 청소년 시절과 지금 우리 아이들을 견주면 친구 폭이 다름을 실감한다.


친구를 자기 스스로 선택할 때 얻는 장점 하나는 친구를 아주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자신이 선택했기에 쉽게 친구를 버리지 않으며, 관계가 오래 간다. 심지어 내가 아는 한 아이는 자기 친구에 대해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친구’라고.


홈스쿨러들에게 친구는 사람만이 아니라는 점도 또 하나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일상에서 가족 이외는 사람을 자주 만나는 구조가 아니기에 많은 홈스쿨러 아이들은 동물을 좋아한다. 나이나 환경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동물을 키울 수만 있다면 가족 못지않게 아이들은 동물과 친하게 지낸다. 나는 이러한 관계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본다. 짐승과 눈을 맞추고 소통할 수 있다면 사람의 눈빛을 읽어내기가 한결 쉽기 때문이다. 언어 이전의 관계 맺음이라고 할까.


이렇게 또래를 넘는 형태로 친구를 두루 사귀는 것은 이후 사회 활동에서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우리 둘레 직장이나 단체들을 보면 그 대부분 나이와 성별을 넘어 서로 어울려 일들을 해 가지 않는가. 또래만으로 굴러가는 조직은 아주 드물다. 나이를 뛰어넘어 성장하는 사람이라면 이 다음 사회생활에서도 그런 경험이 소중하게 밑받침 되리라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닌가.


이와 관련해서 좀더 덧붙이고 싶은 건 홈스쿨러들은 사회적 형제애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사회는 형제 없이 외동으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 형제가 함께 커본 경험이 절대 부족하다. 이런 아쉬움과 부족함을 홈스쿨러들은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또래를 넘어 사귀게 되기에 사회적 형제애를 갖게 된다. 사회적 형제는 한 집에서 자라는 형제하고는 다르다. 사실 한 집에서 형제나 자매로 자라다 보면 많이 다투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집을 벗어나 다른 집 홈스쿨러들과 사귈 때는 이런 다툼이 훨씬 덜하다. 그 이유는 정말 보고 싶을 때 보니까 그렇다.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할 때는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외동으로 자라는 홈스쿨러야말로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또래보다는 위아래 고루 사귈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필요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어려운 점은 없을까. 아이와 가정 형편에 따라 차이가 많을 테다. 얼핏 떠오르는 한 가지는 공간의 제약과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보고 싶은 친구를 보고 싶은 만큼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보통 아이들이 학교를 간 시간에 홈스쿨러들이 누군가를 만나려 다니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나 여자 아이들 경우. 이 점에서 홈스쿨러 부모들 몫이 크다고 하겠다. 아이들이 원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고민해 가야하리라. 아이들은 그 부모를 보고 먼저 배운다. 아이보다 먼저 부모들끼리 이러저러한 모임을 꾸리면서 서로 가까워지는 것도 아주 현실적인 방법의 하나가 되리라 본다. 다양한 ‘그룹 홈스쿨링’이나 ‘홈스쿨링 가정연대’를 인연이 닿는 만큼 꾸려 가면 좋겠다.


어려움 가운데 또 하나를 들자면 또래 아이들 속에 이리저리 몰려다녔던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학교를 벗어난 초기 적응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데 여기에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이는 달리 보면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나중에 좀더 자세히 다루어보자.


어쨌든 이 모든 관계의 토대는 다시 말하자면 가정이다. 가정은 그 모든 관계 맺기의 시작이자, 순환의 고리가 된다. 친구를 만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을 지내기에 그렇다. 마치 어른들이 일터로 나갔다가 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홈스쿨러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리만 잘 깔아주면 저절로 잘 자랍니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로

대안교육연대에서 여러 교육단체와 협력하여 <홈스쿨러 부모를 위한 기획 강좌>를 마련했습니다.

이런 자리에 관심사별로 모둠을 나누어 서로 함께 하면서

아이들 친구나 사회성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면 좋으리라 봅니다.

<홈스쿨러 부모를 위한 기획강좌>신청은 아래로 해주세요

http://www.psae.or.kr/board/board_view.php?free_flag=N01&number=792&grp=792&seq=1&depth=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