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성질환, 안전

열악한 전공의 근무환경, 도마에 오른 건양대병원

pulmaemi 2012. 7. 30. 08:43

근로계약서 없어 이의제기하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지도 못해”

 

[메디컬투데이 김선욱 기자]

최근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건양대학교병원에서 근무했던 전공의가 임금과 관련해 병원과 소송 중에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특히나 전공의들을 낮은 임금으로 일을 시킬 수 있는 잉여인력으로 본다는 지적이 많고 살인적인 노동시간으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근로계약서 없이 주 70시간 이상 근무 “전공의는 근로자 아냐”

현재 공중보건의로 근무하고 있는 최모씨는 지난 2010년 2월부터 10개월간 건양대학교병원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새벽 6시부터 회진준비를 시작해 혈액검사 등을 처리하고 나면 오후였고 새로운 환자가 오면 이들을 보다가 저녁이 되면 이튿날 있을 수술이나 치료 준비를 했다.

한 밤 중에도 소독이나 검사가 있으면 잠을 자다가 일어나 업무를 봤고 도저히 끝이 안보이는 노동량에 휴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10개월간 최씨가 하루에 취한 수면시간은 4시간 이하. 비몽사몽간에 환자를 보게 돼 하루에도 몇 번씩 사소한 실수를 하기도 했다.

자신의 근무량이 환자에게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최씨는 병원 측에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최씨는 “인턴들이 수면이 부족해 혈액검사 환자를 착각하기도 하고 이 때문에 환자나 가족들이 불안해하거나 항의하는 경우도 있어 병원 측에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했지만 ‘인턴은 학생이지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10개월간 밤낮 없이 일을 하고 최씨가 받은 임금은 3200여만원. 최씨는 병원 측에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한 임금을 요구했지만 다시 거절당했고 이 때문에 고용노동부 대전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건양대병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도 않고 오히려 최씨에게 “이런 진정은 오랜 기간 수사를 해 병원 측의 부당함이 증명돼도 병원장이 벌금을 내면 끝난다”고 말했다.

결국 최씨는 이듬해 2월 진정을 취하했고 10개월의 전공의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 채 병원을 나와야 했다.

최씨는 건양대학교병원 측으로부터 “이렇게 병원을 나가면 병원협회끼리 정보가 공유돼 다른 수련기관으로 옮길 수도 없다”며 협박인지 회유인지 모를 소리도 들었다.

◇ 이의 제기하면 수련기관 옮길 수도 없어

전공의들의 근무환경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급여를 떠나 수련기관에서 전공의들을 대하는 태도는 바쁜 병원 일을 위한 인력충당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최씨의 경우 부당함을 알리고자 건양대병원 교육연구부를 담당하던 교수에게 찾아가 전공의 생활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그럼 다른 의사들이 힘들어진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에 최씨가 “그럼 제가 여기서 레지던트 생활을 할 것도 아닌데 다른 의사들을 위해서 봉사활동 하는 것이냐”고 묻자 해당 교수는 최씨에게 욕설을 하며 화를 냈다.

전공의들은 엄청난 업무를 소화한 후에도 환자를 직접 봐야 하는 부담을 함께 안고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환자가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다.

건양대병원 관계자는 “통념상 대학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을 근로자보다는 수련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당시에는 병원 인사팀 내에 교육수련 업무를 담당했었으나 현재는 교육수련 담당 부서가 따로 있고 문제점을 인지해 모든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처럼 전공의들이 해당 수련기관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경우 병원신임위원회에서는 해당 수련기관에 부과하는 대부분의 조치가 차기년도 전공의 정원 삭감의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한 전공의의 업무가 오히려 늘어나는 부메랑 효과가 있다.

각 진료과별로 학생들의 인기도가 달라 전공의들이 특정 진료과목으로 몰리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현 수련 시스템이 갖고 있는 과도한 노동량이다.

최씨는 공보의 기간이 지난 후 앞길이 막막하다. 결국 수련병원의 부당한 처사에 의사를 꿈꾸던 한 청년이 졸지에 실업자가 된 셈이다.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련체계와 과도한 업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으나 바뀐 것이 없는 현실에 얼마나 더 많은 청년들이 희생될지 지켜 볼 일이다.

 
메디컬투데이 김선욱 기자(tjsdnr821@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