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골격계 질환 시달려…산재 판정 기준은 모호(?)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
[메디컬투데이 이슬기 기자]
# "우리는 근육통과 스트레스에 약을 먹으면서 버티고 ‘그래도 이것마저 못하면 안된다.’ 하면서 참고 견디고 있다"
# "육수를 끓이는 일을 장시간 하다보니 손목에도, 팔에도, 다리에도 온통 화상 흔적이 남았다. 특히 한 쪽 손목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는데 화상을 심하게 입었지만 하루도 쉬지 못한 채 계속 식당에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 '2011 식당여성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에서 발췌)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에도 10kg 이상 무게의 음식재료들을 나르며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위험한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식당 여성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허리디스크 등 업무상 질병에 시달리고 있어도 산재를 인정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 식당 노동자, "아이구 허리야"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5~6월 전국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2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식당일을 하면서 더 악화되거나 새로 생긴병 1위가 허리,어깨, 팔다리 등 관절통이나 근육통이 61.1%였다.
이어 ▲하지정맥류 12.3% ▲두통 5.1% ▲호흡기질환 4.5%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병이 생겨도 식당 노동자들은 산재 신청이 아닌 병원이나 약국에 가서 자신의 돈으로 치료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156명에 해당하는 67.2%가 자기 돈으로 치료한다고 대답한 것. 이어 ▲사장이 치료비를 줌 67.2% ▲치료하지 않음 11.2% 등으로 나타났고 ▲산재 처리한다는 대답은 겨우 5.2%에 불과했다.
실태조사를 실시했던 한국여성민우회 안미선 활동가는 “산재 처리가 낮은 이유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산재 인정례가 너무 까다로운 이유”라며 “누가봐도 극단적이고 명확한 이유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산재 인정 받기가 힘들어 꺼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태조사에서도 ▲칼이나 절단기 등에 베임 21% ▲화상 21.6% ▲미끄러져 넘어짐 11.8% 등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산재는 승인율이 85%에 육박해 비교적 산재처리가 수월한 편으로 나타났다.
◇ 누굴위한 '산재 판정 기준'(?)
문제는 바로 흔히 ‘직업병’이라고 불리우는 업무상 질병 인정 판정 기준이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10kg의 무거운 재료를 나르는 등 무리한 힘의 사용과 반복적인 동작으로 인해 생기는 근골격계질환을 가장 많이 앓고 있지만 산재 판정 기준은 매우 모호하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40대 이상, 그들이 무거운 그릇이나 쌀 등으로 인해 허리디스크로 산재 신청을 하면 ‘나이가 들어서 퇴화한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진다는 것. 또한 사고와 동반되지 않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누적된 허리디스크는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에 어긋난다.
이러한 공단의 모호한 기준으로 최근 대법원까지 법정 싸움까지 다퉈 어렵게 산재 판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19년 동안 식당에서 일하면서 식자재, 식기 운반 등 10~50㎏의 무거운 물건을 들어 나르는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다 허리디스크에 걸린 박씨는 공단측에 요양신청서를 냈지만 공단은 ‘퇴행성 질환일 뿐’이라며 불승인 처분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장기간의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과도한 업무수행을 한 것이 허리병을 악화시켰다"고 판단하며 19년동안 허리병으로 시달려온 식당 여성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민주노총 최명선 노동안전보건국장은 “50대이상이라고 하면 무조건 퇴행성으로만 판단하는 기준은 불합당하다”며 “나이 뿐만 아니라 업무상과 연관이 있는지 공단이 재조사를 통해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 국장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질병인지 반복적 작업의 질병인지 연관성이 담긴 국내외 자료를 인용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왜 공단측의 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법정 다툼까지 가야하냐”고 덧붙였다.
◇ 산재 인정, 노동자가 가장 우선시 돼야
또한 산재를 판단하는 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의 근골격계 질환 판정에 있어 MRI,CT 등 연상판독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세도 꼬집었다.
근골격계 질환의 업무상 질병에 있어 실제 쟁점이 되는 사항은 상병명이나 상병의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상병이 직업적 요인 또는 작업적 요인에 의해 어느 정도 노출됐는가 하는 관련성에 대한 판단이라는 것.
최명선 국장은 “질판위 구성이 임상의사가 3명,산업의학의사가 1명이 포함돼있다”며 "임상의사가 식당노동자들의 작업적 요인을 얼마나 알수 있을지 의문이며 왜 안과의사가 포함돼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산재 신청에 앞서 식당 노동자들이 고용주의 눈치없이 자유스럽게 산재 신청을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인천의 한 소규모 식당에서 일을 하는 A씨는 “산재를 당했다 해도 그냥 참고 쉬쉬하는 편이지 산재 신청을 엄두도 못 낸다”며 “산재처리 후 보험수가 적용 비율이 달라지면 고용주 입장에서 부담을 느끼고 사이가 껄끄러워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산재처리 작업장으로 찍히면 좋을거 하나 없는데 고용주한테 산재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날 생각할지 안봐도 뻔하다”며 “그냥 참는게 낫다”고 덧붙였다.
이에 한국여성민우회 안미선 활동가는 “소규모 사업주들에게 산재 교육을 실시해 산재 신청을 많이 해야한다”며 “식당 노동자들은 다쳐도 산재 신청을 해야 하는지 절차도 잘 모를뿐더러 꼭 필요하다라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들에 공단은 공정한 산재 판정을 하고 있어 문제가 없다는 신영철 이사장과 다를바 없는 대답을 내놨다.
공단 관계자는 “최대한 공정하게 판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판정기준에 문제가 많다는 국감때의 지적도 있었기 때문에 노사경이 함께 판정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어 “질판위 임상의사들이 오히려 산업의학의사들보다 승인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경우도 많다”며 “단적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며 질판위 구성에 대해서는 논의를 거치고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메디컬투데이 이슬기 기자(s-report@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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