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선도국가

더는 잃을 수 없는 것들을 위하여

pulmaemi 2011. 1. 12. 16:08


(한겨레 / 이종석 / 2011-01-10)


2010년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국익과 이성보다는 정략적 이익과 감성을 앞세운 정부의 정책이 어떤 화를 부르는지 온몸으로 겪은 한해였다. 우리는 천안함·연평도 사태에서 보여준 부실대응과 혼선에서 정부의 무능함을 실감했고 불충분한 천안함 조사 결과를 가지고 북한 규탄을 공언하며 유엔에 나갔다가 망신을 당하고도 ‘절반의 성공’을 운운하며 떼쓰는 정부의 억지를 보았다. 자신의 안보실패를 반성하기는커녕 과거 정부 탓으로 돌리고 정치적 반대세력을 친북으로 몰며 선거 승리를 위해 북풍몰이마저 서슴지 않는 후안무치한 정권의 사욕을 보았다. 전쟁불사를 외치며 강행한 연평도 사격훈련에서 정권의 무모함도 실감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한국은 연평도 사태를 거치면서 한반도 상황 관리자라는 위상을 잃었다. 탈냉전 이후 20여 년간 한국은 핵 문제를 비롯한 모든 북한 문제에 대해 주도적이거나 중심적 위치에서 발언권을 가졌다. 한반도 상황 관리자로서 미국과 협력하고 중국과 협의해 왔다. 그러나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연평도 사격훈련을 강행하면서 졸지에 북한과 철부지들의 무모한 대결인 ‘치킨게임’이나 벌이는 호전적인 분쟁당사자로 비쳤다. 이제 한국 외교는 북한과 외교경쟁을 해야 하는 구시대로 퇴보했으며 6자회담 무대가 볼썽사나운 남북 대결의 첫 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역대 정부가 추구해온 동북아 평화협력의 길도 실종 상태다. 동북아에서 강대국 간의 패권적 갈등을 막고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을 개척하는 것은 오랜 역사적 경험에서 얻은 한국의 국가전략이다. 그러나 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태를 한-미 동맹 일변도로 풀려 함으로써 중국을 북한 쪽으로 기울도록 몰아갔다. 한국과 중국의 국익이 다르기에 신중하고 현명한 대중국 접근이 필요했지만 ‘나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으면 북한 편’이라는 소아병적인 주관주의적 태도로 일관했다.

 

냉전 해체 이후 열린 북방시장은 한국 경제의 기회의 창이 되어왔다. 작년 한 해만 해도 한국 수출의 25%가 중국에 치중됐다. 이는 미·일·유럽연합(EU)에 대한 수출을 합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교역 상대국에 ‘불공정’이라는 딱지를 붙여 무차별 보복을 허용한 미국의 슈퍼 301조가 우리 경제를 떨게 했던 시절인 1991년 대미 무역의존도가 24.4%였다. 이제 늘어나는 한-중 간의 물적·인적 교류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도 다자간 안보협력은 필수적이다. 동북아에서 한-미 동맹과 북-중 동맹 간의 갈등구도가 형성된다면 이는 한국에 재앙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이 길을 차단하기는커녕 앞장서 간 것이다.

 

2010년에 우리가 입은 가장 큰 손실은 한반도 평화 실현에 대한 국민의 자신감 상실과 전쟁에 대한 공포가 일상화된 것이다. 탈냉전의 세계사 흐름과는 거꾸로 전쟁을 걱정하는 가운데 국민 삶의 질은 형편없이 추락하였다. 2006년에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할 정도로 평화애호와 균형외교로 국제사회에 각인되었던 한국의 이미지도 물거품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과연 우리가 잃은 것들은 필연적이었나? 아니다. 잘못된 정책이 낳은 참상일 뿐이다. 이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고 지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부가 기존 정책을 전환해서 과감하게 남북대화를 추진하여 국민을 전쟁의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고 6자회담을 재개하여 북핵 문제 해결의 길로 나서며 한-미 동맹과 한-중 협력을 하나의 전략 틀에서 조화롭게 구사하면 된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다. 송대의 문장가 소철(蘇轍)은 “천하의 재난 가운데 그 재난이 생긴 까닭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걱정이다. 정부는 이 재난의 근원이 자신의 그릇된 정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다시는 정권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판돈으로 내건 위험천만한 도박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정부 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 오직 국민만이 그것도 깨어 있고 발언하는 시민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580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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