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 신나라의 특별한 여행 2

신나라의 특별한 여행 제 28 화

pulmaemi 2021. 11. 17. 12:25

  부제 : 슬기로운 빈둥이공동체마을 사용설명서

 

  지은이 - 필명 nurimaem

 

 

  제 28 화

 

  적당히 요기를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공연이 있는 운동장 쪽을 향하는데 목공 팀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한쪽에는 어른 아이 할거 없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윤소이 팀장이 방문객들과 얘기하다가 나라 일행을 알아보고는 서둘러 부스 안에서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다들 모여 계시네요?" 윤 팀장이 나라 일행을 보며 인사를 했다. 이 팀이 제일 바쁘네?" 성일이가 말했다. "이번에 작품들이 좋고 다양해서 그런지 많이들 찾아주십니다." 윤 팀장이 기분좋게 얘기했다.

 

  "저기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줄 서있는 것은 뭐지요?" 영숙이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아, 예, 저곳은 수제 팬 만드는 체험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신나라 선생님이 제안을 해주셨는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들 좋아합니다. 신나라선생님이 수제 팬 제작공구를 충분히 준비해 주시지 않았다면 큰 일 날뻔 했습니다." 윤 팀장이 신이 나서 말했다.

 

  또 옆줄도 신나라 선생님이 우드카빙 체험 프로그램을 제안해 주셔서, 저기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인기가 많습니다. 신나라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한 쪽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무 목재로 만든 간판이 서 있는데 '신나라 작가님 작품 특별전'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라가 이번에 만든 여러 가지 목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신나라 선생님께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팀원들의 의견이 신나라 선생님 작품을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하는 것보다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전시의 질도 높이고 마케팅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들이 많았습니다. 미리 상의를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윤 팀장이 나라의 눈치를 보며 미안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라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영숙이와 보경이도 나라의 얼굴을 보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큰소리로 말했다. "와, 며칠 만에 이렇게 많이 한 거야. 그리고 이 쟁반 봐봐. 너무 예쁘다. 식탁도 예쁘고. 안 그러니? 보경아." 영숙이가 보경이를 보며 말했다. "그래, 어떻게 며칠 만에 이렇게 만들 수 있지?" 보경이도 장단을 맞추며 감탄한 듯이 말했다.

 

  "내가 다 한 것이 아니고 성일이와 도현이가 많이 도와줬어.  그리고 윤 팀장님, 괜찮아요. 팀원들이 뜻이었고 윤 팀장이 그렇게 결정했으면 잘한 거예요. 고마워요." 나라가 얼굴 표정이 부드러워지자 다들 안심하는 눈치였다.

 

  "근데 가격이 많이 비싼 것 같은데요" 나라가 말했다. "예, 선생님, 팀원들이 의견이 작품들이 좋아서 그래도 잘 팔릴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정성을 기울여 만드신 거실용 탁자는 특별히 더 높은 가격을 매겨놓았습니다. 그래도 다들 팔릴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윤 팀장이 웃으며 나라에게 모종의 눈빛을 보내자, 그 말을 들은 다른 동창들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신나라 작품전을 알리는 목재 간판 옆에는 '신나라 선생님의 작품은 구매하시더라도, 관람객들을 위해 일요일 오전까지 전시된 후 가져갈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 있었다.

 

  선데이 마켓 곳곳을 둘러본 후 나라 일행은 공연이 열리는 남명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자랑이 진행 중이었다. 성일이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뒤쪽으로 갔다가 간식거리를 들고 나타났다.

 

  빈둥이 마을 식당의 제빵 팀이 만든 쿠키와 마들렌, 그리고 커피향이 나는 빵이었다. 많이 달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것이, 최소한의 천연 감미료와 아몬드 가루를 주원료로 사용했다고 했다. 지역주민들의 입맛과 건강을 고려해서 만든 간식거리들이었다.

 

  이것들을 먹고 있는데 젊은 일행이 샐러드가 담긴 큰 볼과 접시들을 들고 나라 일행 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니, 저 친구들이 웬일이야?" 보경이가 물었다. "응, 빈둥이 마을에서 마을축제를 위해 파견된 자원봉사자들이야." 성일이가 말했다.

 

  "빈둥이 공동체에서 축제에 참가하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건강하고 맛있는 디저트와 샐러드를 제공하기로 했지. 내가 우리도 맛보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 성일이가 대답했다. "아니, 젊은 친구들 바쁠 텐데 그렇게 민폐를 끼치냐?" 영숙이가 성일이를 농담조로 나무랐다.

 

  "다, 그렇게 서로 민폐도 끼치고 도우며 사는 거야. 그것이 빈둥이 공동체의 정신이 아니겠니!" 성일이가 웃으며 얘기했다. 이번에 빈둥이 마을에서 제공한 메뉴들은 지역 어르신들의 입맛과 건강을 고려하여, 밀가루를 가능한 줄이고 천연 감미료를 사용함으로써, 축제에 참여한 지역주민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메뉴가 되었다고 했다.

 

  공연을 보면서 열심히 먹고 있는데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도현이가 나타났다. "도현아, 점심을 먹었니?" 보경이가 물었다. "주섬주섬 먹었어. 빈둥이 마을에서 제공한 간식들도 먹고 해서 괜찮아." 도현이가 말했다.

 

  "어찌 얼굴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 있니?" 보경이가 물었다. "아놔! 무대 감독이 우리 공연을 맨 뒤로 빼자고 하네. 갑자기 초대한 유명가수가 못 오게 되었다고 말이야." 도현이가 불만 섞인 말투로 얘기했다. "그러게, 아무래도 어린 친구들이 부담될까봐 도현이가 마음이 많이 쓰이나봐." 나라가 위로하듯 말했다.

 

  "엔딩 곡을 너희들에게 맡기는 것을 보니, 너희 팀이 감독의 마음에 들었는가봐." 성일이가 농담조로 말했다. "무슨! 외부에서 초청된 팀들도 많은데 왜 우리한테 시키는지 모르겠어. 강하게 항의했는데 감독까지 나서서 부탁하니 어쩔 수 없네." 도현이가 난감하다는 투로 말했다.

 

  "애들도 힘들어 해?" 영숙이가 물었다. "애들도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하다가 조감독의 얘기를 듣더니 그렇게 하자고 하더라." 도현이가 긴장한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그럼 됐지 뭐. 중등친구들이 괜찮다고 하는데 뭐가 그리 흥분할 일이니." 영숙이가 말했다.

 

  "아, 그래도 말이야. 하필 우리 팀이야." 도현이는 아직도 기분이 안 풀리는 듯 일어섰다. "아니 여기 안 있고 어딜 가니?" "얘들한테 가봐야지." 도현이가 말하며 무대 쪽으로 사라졌다. 

 

  드디어 밀양 얼음골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무대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에 앞서 밀양 면 단위의 축제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제가 되다 보니, 밀양시장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그리고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소개하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오프닝 곡으로 외부 초청가수가 초대되어 노래를 했고, 뒤의 백댄서들은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빈둥이 마을에서도 참여를 했는데 연구원들 중에 재주꾼들이 많았다. 공동체 내에서 취미로 시작하였지만 배움 속에서 그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연구원들이 있었다. 이번 축제에는 시낭송과 오페라 가수가 나섰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공연을 하게 될 일명 '빈둥이 마을의 아이돌'들도 자발적으로 참여를 신청한 경우였다. 그들도 자체 팀을 꾸리고, 도현이의 지도하에 맹연습을 했다는 후문이 있었지만, 그 실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을 마지막 무대만 남겨놓았다. 사회를 보는 개그맨이 먼저 양해의 말씀을 구했다. 엔딩곡을 하게 될 외부 초대가수의 공연이 취소되어, 지역주민들에게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과 함께 밀양 얼음골이 낳은 전도유망한 아이돌 그룹을 소개했다. 

 

  익숙한 멜로디의 전주와 함께 다섯 명의 아이돌이 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라가 하도 익숙한 곡이라 노래의 제목을 물으니 '무조건'이란 곡이라고 했다. 5인조의 아이돌 그룹이 호흡을 맞추며 춤을 추었고 리더로 보이는 친구가 그들의 중간에서 노래와 함께 춤을 리드하고 있었다.

 

  다들 중학생들이 나서서 공연을 하겠다고 해서 성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다들 한편으로 마음이 쓰였다고 성일이가 말했다. 특히 아이돌 그룹의 리더인 송윤후는 밀양 시내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조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몸이 불편하신데도 돌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고민을 하던 밀양시에서는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보낼 테니 윤후는 빈둥이공동체마을에 부탁을 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윤후가 할머니와 같이 살지 않으면 본인도 빈둥이 마을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오 원장이 할머니도 돌보기로 하고, 빈둥이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고 했다. 초기에는 여러 가지 정서불안과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겹치면서 돌출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상태가 점차 안정되고 빈둥이마을 연구원들의 따뜻한 배려로, 윤후도 점차 안정을 되찾아 마을에 적응하게 되었다고 했다. 

 

  성일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얘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 쪽에서 환호 섞인 함성소리가 들렸다. 나라가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빈둥이 마을의 아이돌 뒷편에서 춤과 노래를 하고 있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학창시절에 입던 남자 고등학생복에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상의의 단추를 두 개를 풀어 제낀 모습이 나라의 눈에 확 들어왔다.

 

  거기에 '뒷 목 잡는 댄스'로 유명한 '니가 왜 거기서 나와'란 곡에 맞춰 중등 아이돌들과 함께 도현이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들 아무 말도 못하고 놀란 표정으로 무대 속의 도현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이돌과 함께 군무를 선보이는 도현이의 모습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기다가 1절이 끝마치고 중간 반주가 끝난 후 2절 시작하자마자 도현이가 아이돌 그룹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왔다. 춤과 함께 도현의 특유의 개성있는 보이스로 그 노래를 부르자 무대 앞 쪽의 관람객들이 다들 감탄사를 연발하며 떼창을 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곡이 끝나고 아이돌 그룹도 무대 뒤로 내려갔다.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회자가 나와 마지막 멘트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가 관중석에서 앵콜을 외치기 시작했다. 다들 합심하여 앵콜을 외치자 사회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관중석을 향하여 말했다. "누굴 부룰까요?"라고 묻자 다들 '아이돌'을 외쳤다. 나라 일행도 힘차게 같이 외치자 다시 무대 불이 꺼지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디까지 왔나 또 어디 숨었나, 맘에 들어왔나 나 나 나 나 나' 캄캄한 무대 쪽에서 디스코 풍의 아주 익숙한 멜로디와 가사가 흘러나왔다. 급기야 무대의 불이 환하게 켜지면서 빈둥이마을의 아이돌들이 나라 학창시절의 여학생복의 차림으로 디스코풍의 라인댄스를 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과 함께 뒤에서 어설프게 관광버스 춤을 추던 도현이가, 갑자기 무대 중심으로 나와 아이돌들과 함께 힘차게 군무를 추고 있었다. 거기다 윤후의 미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창법에 도현이의 바리톤이 절묘한 화음을 이루는 후렴구에 이르자, 나라의 일행은 그저 놀라움에 망연자실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역시 무대 앞쪽으로 지역 주민들이 나와 춤을 추는데, 나라 학창시절에 유행했던 트위스트와 디스코 등의 춤들을 추면서 마을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빈둥이 마을의 아이돌의 공연이 끝나자 사회자가 나와 여태까지 출연한 공연자들을 무대로 나오게 한 후, 자기가 독단적으로 관중 속에 호응이 가장 많았던 노래를 인기상으로 선정하여, 마지막 엔딩곡으로 하겠다고 하였다.

 

  모두 그의 입에 집중하고 있을 때 그의 마이크에서는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말하자, 함께 폭주가 터지면서 다시 한번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춤이 시작되었다. 목덜미를 잡는 춤 동작이 나올 때는 무대 위의 모든 참가자들이 같이 따라하기 시작했고, 관람석에서도 또 다시 관광버스 춤을 비롯하여 제각각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대의 마지막 분위기는 절정을 이루며 끝나고 있었다.

 

  마을 축제가 다 끝난 운동장에는 무대 설치 업체의 직원들과 빈둥이 마을의 자원봉사자들이 한데 어울려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나라 일행도 같이 무대 정리를 하고는 영숙이의 차로 빈둥이 마을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성일이의 집으로 향할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오늘이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 나라는, 그녀의 기억 속에 고이 담아두려는 듯이, 가로등이 비추는 오솔길과 그 주변을 지긋이 바라보며 걸었다.

 

  삼총사들은 함께 2층으로 바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왔다. 1층 주방 쪽 아일랜드 식탁에는 성일이가 뭔가를 맛있게 씹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샐러드가 담겨 있는 큰 볼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호두, 사마차인, 마카다미아, 브라질너트 등의 각종 견과류가 담긴 접시도 차려져 있었다. 

 

  게다가 낮에 맛있게 먹었던 쿠키와 마들렌이 담긴 그릇과 함께. 안주거리로 비트, 양배추 그리고 브로콜리가 혼합된 샤우어 크라우트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와우, 그새 이렇게 차린 거야?" 영숙이가 입맛이 돈다는 얼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내가 준비한 것은 아니고 특별히 식당에 부탁을 했지. 오늘 아주 오랜만에 여걸 삼총사가 회포를 푸는데, 이 정도의 서비스는 기본이 아니겠니?" 성일이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술은 뭐로 할까? 맥주, 소주, 와인 그도저도 아니면 타트체리 주스?" "가만, 오늘은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커피를 한 잔도 못한 것 같은데, 맛있는 커피 한 잔 할 수 있니?" 나라가 물었다.

 

  "당연히 있지요. 카페에서 판매하는 두 종류의 드립팩이 있는데, 건강에도 좋은 항노화 스페셜커피와 항노화 디카페인 커피, 어느 것으로 드립해줄까?" 성일이가 삼총사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라가 커피 얘기하니 나도 먹고 싶네. 나는 항노화 스페셜." 영숙이가 말했다. "그러게. 나도 같은 걸로." 보경이도 대답했다. "그럼 나도 항노화 스페셜로. 맛있게 드립해줘." 나라도 결심한 듯 말했다.

 

  "어? 나라는 항노화 디카페인 아니고? 그것도 맛있어. 카페인을 추출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스위스워터 방식과는 달리 이산화탄소 추출법을 사용한 것이라 더 맛있어." 성일이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어, 지난 번에 맛을 봤잖아. 오늘은 모처럼 삼총사가 모였으니 잠 못잘 것 같은데. 그래서 오랜 만에 카페인의 도움을 받으려고. 그리고 더 맛있는 커피가 땡기기도 하고 말이야." 나라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도현이는 언제 오니?" 나라가 물었다. "안 그래도 카톡이 왔는데 식당에서 아이돌 저녁 먹이고 온데. 곧 오겠지." 성일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도현이는 전생에 양반이 아니었어. 나는 남사당패였다고 봐." 영숙이가 말하자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뭐야, 다들 내 욕하고 있었지." 상기된 표정으로 도현이가 나타났다. "너야말로 뭐야? 그렇게 친구들을 놀라게 해도 되는 거니?" 보영이가 놀란 표정으로 도현이에게 말했다. "그러게, 귀띔이라도 해줘야 될 거 아냐?" 영숙이가 말을 이어갔다. "근데, 재는 학창 시절에 범생이 아니었니?" "너희들도 마찬가지잖아." 성일이가 말했다.

 

  "무슨! 우리 삼총사가 고등학교 때는 말이야, 주말만 되면 고고장이나 롤라 스케이트장으로 잠입했다는 거 아냐!" 영숙이가 건들건들한 자세로 말을 했다. "아까도 도현이가 공연을 할 때 그때의 춤 실력 들통날까봐 얼마나 자제했는데!" 영숙이 말에 다들 한바탕 웃었다.

 

  실제로 그랬었다. 초등학교의 우정은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 때도 계속되었다. 주말마다 함께 모여 재미있는 곳을 찾아 놀러다니 곤 하였다. 그 때 유명한 DJ가 나오는 음악다방도 갔었고 디스코텍과 롤러스케이트장도 자주 다녔으며, '토요일 밤의 열기'란 영화가 나온 후 유행한 허슬과 와킹 춤을 열심히 연습하기도 했었다.

 

  다들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영숙이가 갑자기 검은 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영숙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짜잔!" 하며 온갖 색상으로 화려한 '몸빼'들을 펼쳐 보였다. "어! 그거 어디서 났어?" 성일이가 놀란 듯이 말했다.

 

  "오늘 밀양 재래시장에서 샀지. 밤에 몸빼 파티하려고." 영숙이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왜 다섯 벌이야?" 도현이가 물었다. "우리 다섯 명이잖아." "뭐, 우리도 입으라고?" 성일이가 난감한 듯이 물었다. "그럼, 다 같이 입어야 재밌지." 영숙이가 놀리듯이 말했다. "나, 안 해, 나 못해" 도현이가 손사래를 치다 갑자기 몸빼 하나를 낚아채듯 가지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광경을 보고 다들 신이 난 듯 웃으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도현이가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도현이가 노래를 부르면서 나타났다. "근데 니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아~, 사랑을 믿었었는데 발등을 찍혔네, 그래 너 그래 너 야 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몸빼를 가슴까지 올린 상태로 목 뒤 덜미를 잡으면서 공연 때 부른 노래와 춤을 추는데, 지켜보던 친구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리고 노래에 맞추어 박수를 치며 도현이의 이름을 연호했다. 후렴구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도현이의 춤 동작을 다 같이 따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