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슬기로운 빈둥이공동체마을 사용설명서
지은이 - 필명 nurimaem
제 26 화
입구는 좁았는데 안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정원이 있는 한옥 집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넓은 마루에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서 있는 직원이 손님이 몇 명인지를 물은 후, 비어있는 한쪽 방으로 안내했다. 식탁에 메뉴판이 놓여 있었다.
"와보니 알겠는데, 무엇을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 치맨가?" 성일이가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기억이 나겠니? 특히 남자들은 그 술이 문제야. 알콜성 치매!" 영숙이의 말에 다들 웃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나이 많이 드신 분이 주문을 받으러 들어왔다.
"어서 와요? 한동안 뜸하더니 오늘도 손님들을 모시고 오셨네요!" "할머니,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요즘도 건강하시지요?" 영숙이가 친근하게 물었다. "그럼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댁도 별고 없으시지?" "예, 그럼요. 여전히 건강해 보이십니다!" 영숙이가 말을 이었다.
"이 나이에 무슨! 그래도 전에 영숙 씨가 말씀해주신 대로 식사에 신경 쓰니, 정신도 맑아지고 몸이 많이 홀가분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고맙다고 얘기하러 이렇게 들렸소. 아참! 주문받으러 와서 우리끼리만 얘기 했네. 뭐 드실는지 정했소?" 할머니가 얘기했다. 다들 메뉴판을 보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서둘러 영숙이한테 눈길을 주었다.
"다들, 인사해. 여기 어르신은 이 집의 주인이셔. 아 아니, 집주인은 아니고 수십 년 된 이 식당의 주인장이셔. 여기 이 친구들은 제 초등학교 동창들입니다." 영숙이의 소개에 다들 존경의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주인장께서는 다 잘하시지만 오늘은 몸보신하러 왔으니 소고기 버섯전골로 하자. 맛있어." 영숙이가 말했다. "어, 여기 메뉴에는 소고기 버섯전골과 돌솥밥이 한 세트로 되어있는데?" 성일이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 분들은 아직 훈련이 안되어 있군요. 영숙 씨가 특별히 저에게 부탁한 메뉴예요. 다른 분들하고 같이 와도 돌솥밥을 안 시키길래 유달리 인상에 남았어요"
"그래서 물어보니 건강 때문이라고 해서 갸우뚱했어요. 그래서 물어도 보고 유튜브에도 보고 해서 저도 한 번 따라해 봤어요." 할머니가 말을 끝마치자 다들 놀란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오늘은 달라요." 영숙이가 손사래를 치며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오늘은 갑자기 오게 된 것이라 사전에 그런 얘기를 안 했습니다. 얘들아 돌솥밥도 같이 시킬래." 다들 눈치를 보며 말을 못 했다.
"그럼 보경이도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밥 구경 한 번 해야지." 영숙이가 말했다. "아니야, 밥 안 먹은 지가 오래되어서 난 괜찮은데 나라는 식사해야지" 보경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빈둥이 마을에서 밥을 먹은 기억이 별로 없네. 나도 괜찮은 것 같은데." 나라도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일이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다들 밥은 안 먹는 것으로 해요. 내가 밥장사를 하지만 공부해보니 배부르게 먹어도 밥·빵·면만 적게 먹어도 살이 안 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요즘 손님 중에 간혹 돌솥밥을 빼 달라고 하는 분들이 계신데, 세트 메뉴라 가격은 빼주지는 못하고, 전골의 양을 듬뿍 넣어 드리지요. 이번에도 특별히 푸짐하게 드릴 테니 많이 드셔요. 밥만 덜 먹어도 건강해진다고 영숙 씨가 말해줬어요." 주인장이 영숙이를 향해 한쪽 눈을 찡끗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할머니."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여기 밑반찬도 푸짐하고 맛있으니 먹고 있어. 소고기전골은 시간이 걸릴 거야. 잠시 시장에서 뭐 살게 있어 갔다 올게." 영숙이가 말하며 일어섰다. "그래 다녀와라." 나라가 말했다. 영숙이가 나가고 대화가 이어졌다. 그리고 밑반찬이 들어왔는데 상추겉쩔이, 백김치, 야채샐러드, 냉이나물 그리고 곤약들깨무침이 나왔다. 보기에도 시골 촌집 반찬처럼 소박하게 보였다. 먹어보니 달지도 않으면서 담백한 맛과 향이 제대로 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갔을 건데 네팔은 많이 변했어?" 성일이가 보경이한테 물었다. "그럴 리가? 그렇게 빨리 변하면 네팔이 아니지!. 다들 잘 알겠지만 네팔은 자연자원을 제외하고는 먹고살기 힘들잖아. 그래서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분야 말고는 큰 변화가 없어 보였어." 보경이가 말했다. "근데 하고 많은 나라 중에 어떻게 네팔에 가게 된 거야?" 나라가 물었다.
"그것은 얘기가 좀 길어지는데, 한 번 해볼까? 영숙이는 다 아는 얘기니까 영숙이 오기 전에 후딱 해야겠다." 성일이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오 원장과 이 교수가 오랫동안 해외 공정여행과 봉사활동을 한 것은 다들 잘 알 거야. 필리핀, 캄보디아 그리고 베트남 등의 동남아에서 주로 했어. 그런 와중에 오 원장이 오지탐험을 좋아하잖아. 산도 좋아하고. 오래 전에 사전답사를 핑계로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안나푸르나 산군에 혼자서 트래킹을 한 적이 있었어." 성일이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때 카트만두에서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로 가는 카트만두 국내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어. 시간이 많이 남아 대합실 구석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데. 근데 누가 옆에 앉아 유창한 한국말로 말을 걸어 오길래 한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근데 고개를 들어보니 네팔 현지인인 거야.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한국말을 잘하느냐고 물으니, 자기는 10년간 거제도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에 귀국을 했다고 하더래."
"포카라로 출발할 시간이 두 시간이나 남은지라, 둘이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고 하더군. 그는 대학에서 수학과를 나와서 결혼한 후 자식을 낳았고, 그 후 한국으로 갔었나봐."
"그래도 다행히 한국에서 큰 사고 없이 일하고 귀국하여, 지금 포카라에 있는 시골 학교의 교사로 있다고 했대. 그런 이유에선지 한국인에 대한 인상이 좋았는데, 오 원장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고 하더군."
"그런 대화 중에 오 원장이 포카라의 시골에 있는 지역 마을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료 및 교육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를 물었는데, 당연히 가능하고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면서, 본인의 명함을 주었다고 하더라. 그 이후에 오 원장이 빈둥이공동체마을 주민들과 함께 안나푸르나 산군 트래킹을 하면서, 다시 연락이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된 거야." 성일이가 계속 말을 이어가려고 할 때, 영숙이가 돌아왔고 연이어 소고기 버섯전골이 나왔다.
오랜만에 시골 인심이 느껴지는 넉넉하고 즐거운 시골 밥상이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오래 끓인 사골 육수에 여러 가지 버섯들이 한데 어우러진, 향과 맛의 성찬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식사를 끝마친 후, 배도 꺼줄 겸 밀양 명소를 몇 군데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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