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성질환, 안전

“가습기살균제 무죄 선고 1심 재판부, 위해성 제대로 평가 못했다”

pulmaemi 2021. 5. 25. 15:38

[메디컬투데이 이재혁 기자]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안정성 검증을 하지 않아 대규모 피해자를 낸 혐의로 기소된 애경, SK케미칼 등 전직 임원들이 지난 1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재판부가 제품의 위해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학계에 따르면 한국방송통신대 보건환경학과 박동욱 교수 연구팀은 최근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게재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함유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제조 및 판매기업 형사판결 1심 재판 판결문에 대한 과학적 고찰' 논문에서 이 같이 평가했다.

지난 1월 12일 서울지방법원 제23형사부는 CMIT/MIT의 독성 평가, 호흡기를 통한 인체 내 흡수, 호흡기로 흡수된 이들 화학물질이 천식 및 폐 손상을 일으키는 각각의 과정에서 형사판결의 인과관계를 충족하는 데 부족하다고 판결했다.

반면 박 교수 연구팀은 해당 제품이 폐 손상 등 건강 피해를 일으킨다는 것을 입증할 과학적 사실이 충분하다고 봤다.

연구팀은 재판부의 판결문을 대상으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CMIT/MIT의 노출과 건강영향(폐질환 혹은 천식)과의 인과성을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은 세 가지 근거인 ▲CMIT/MIT 함유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위험성 ▲공기 중 CMIT/MIT의 유의미한 발생과 호흡기 노출 정도 ▲CMIT/MIT의 호흡기질환 유발 가능성 등을 고찰했다.

당시 재판부는 제품이 천식과 폐 손상을 초래했다는 공소 요지를 형사재판의 인과관계 미충족을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연구팀은 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한 1994년부터 2011년까지의 기간 동안 CMIT/MIT는 각종 폐질환과 천식 및 기타 질환(피부질환 포함)을 일으키거나 악화시켰으며 문헌 고찰 결과에서도 신 독성도 일으키는 등 강력한 감작성, 부식성 물질로 잘 알려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유독성 물질이 주성분으로 사용된 가습기 살균제 제품은 호흡기질환 등 건강영향을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팀은 재판부가 근거로 사용한 제품 사용으로 실내공기에 CMIT/MIT 발생을 재현한 연구에서 실험자들은 제조사가 제시한 권장 사용량을 2L 용량의 가습기에 희석해 농도가 훨씬 낮아진 상황에서 공기 중 CMIT/MIT를 측정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가습기에 들어간 CMIT/MIT 총량은 희석한 농도와 상관없이 방 안으로 분산되며 이 양이 일정 시간 동안 사용자에게 계속적으로 노출된다”며 “CMIT/MIT 노출 위험은 특정 시점 또는 정상상태에 도달한 조건에서의 공기 중 농도뿐만 아니라 가습기에 넣은 총량(µg), 사용 시간, 사용 기간 등을 고려한 ‘누적 노출 용량’을 고려해야한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가 노출 재현 연구에서 측정한 공기 중 CMIT/MIT농도를 미국 EPA에서 제시한 NOEL(no observable effect level)인 0.34µg/L보다 낮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판단한 데 대해 해당 기준은 동물을 유해 물질에 노출시켜 독성반응을 유도해 얻는 값으로 이를 인간에 적용할 때에는 종간 차이, 종내 차이, 노출기간, 자료의 신뢰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EPA 기준(0.34µg/L)은 CMIT/MIT함유 제품을 제조하는 6개 공정에서 일하는 건강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값으로 일반 인구, 특히 소아 피해자가 많은 가습기 살균제 노출기준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재판부가 CMIT/MIT가 수용성 물질이기에 하기도까지 도달하기 어렵고 천식, 폐질환을 초래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결한 것과 관련해서도 문제점을 짚었다.

연구팀은 “수용성과 반응성이 높은 물질도 하기도 질환을 초래하는 사례가 많았으며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서 CMIT/MIT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훨씬 많은 양의 안정제로 첨가된 질산마그네슘(25%)과 혼합돼 있다”며 “개별 물질만의 특성으로 공기 중 발생과 호흡기 흡수를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CMIT/MIT를 취급하는 노동자의 천식 사례, CMIT/MIT 단독 제품 사용자의 폐 손상 임상 사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검찰이 항소하며 재판은 항소심으로 넘어간 상태다. 지난 18일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윤승은) 심리로 이들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메디컬투데이 이재혁 기자(dlwogur93@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