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통상국가

분배문제, 절대로 미국을 닮아서는 안 된다

pulmaemi 2014. 7. 24. 22:12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소득분배의 불평등도가 극심한 나라의 예를 들어 보라고 하면 누구나 주저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든다. 라틴아메리카는 우리에게 소수의 권력계층이 정치권력과 금력을 독점하고 있는 아주 불평등한 사회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와 거의 비슷한 혹은 그보다 더 높은 불평등성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재는 지니계수(Gini index)를 비교해 보면,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들 중 상대적으로 불평등도가 더 큰 나라와 비슷한 값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이 언제 그렇게 불평등한 사회가 되어 버렸나 의아해 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최근 동향을 세밀하게 관찰해온 사람이라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1970년대 말부터 진행되어 온 급격한 불평등화로 인해 미국 사회는 역사상 불평등의 정도가 가장 심했던 1920년대 초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버렸음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1930, 40년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정책으로 인해 확립되었던 평등화의 기반은 완전히 무너졌고, 이제 미국은 승자독식(winner-take-all)의 불평등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이와 같은 미국 사회의 불평등성 심화과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으며 이와 관련해 몇 편의 논문을 쓴 바 있다. 미국 사회를 특히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미국의 경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해 적용될 수 있는 유용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를 진행해 오면서 그와 같은 기대가 100% 이상 충족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내심 놀라기도 했다. 즉 미국 사회의 경험에 대한 연구가 현재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또한 별 생각 없이 미국의 정책을 베껴오다 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불평등성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절감하게 되었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화 과정을 연구하면서 우리 사회가 약 30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 사회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신자 유주의정책 실험이 시작된 것이 1980년이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MB정부에 의해 그와 비슷 한 실험이 2008년에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정책의 실험이 부자들에게 뜻하지 않은 이득을 가져다주는 데 그쳤을 뿐, 경제를 되살리는 데 그 어떤 효과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두 나라 의 경우가 너무나 닮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미국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정책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분명한 판정이 내려진 반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그런 분명한 판정이 내려지지 못했다는 차이만 있다.

미국 사회의 불평등성이 심화된 이유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술진보의 특성이 숙련노동자에 대한 수요를 더 크게 만드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숙련노동자와 미숙련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가 점차 더 커졌다는 숙련편향기술진보 (skill-biased technological progress)가설이 그 중 하나다. 또한 세계화(globalization)로 인해 외국의 값싼 물건들이 미국시장으로 밀려들어 오면서 미국 내의 미숙련노동자들의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가설도 있다. 나아가 정보화사회로 변모해 감에 따라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상을 독차지하는 이른바 슈퍼스타(superstar)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소득격차가 커졌다는 이론도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가설들로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불평등성 심화 현상 전체를 설명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이와 같은 불평등화 요인들은 결코 미국 사회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비슷한 수준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미국 사회에서와 비슷한 정도의 불평등화 경향 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관찰할 수 있는 불평 등화 경향은 상대적으로 훨씬 더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 사회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불평등화 요인 없이는 다른 나라들과의 차이를 만족스럽게 설명해줄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불평등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정치와 사회의 보수화다. 1980년 미국의 보수세력은 소위 '레이건혁명'(Reagan revolution)으로 일컬어지는 정치적 승리를 이끌어 냈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뉴딜정책의 영향이 아직도 미국 사회의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세력은 숨죽인 채 재기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형국이었다. 1968년 닉슨이 치밀한 선거전략 덕분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회 전반에 걸친 보수세력의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런데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7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는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의 반전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기업과 부유층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이로 인한 영향력의 급속한 확장이었다. 그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해 보수적 정치인들에게 정치헌금을 뿌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적 이념의 확산을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에 전력을 집중했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 같은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think tank)가 속속 만들어지고, 경제학계에서도 보 수적 이념의 소유자들에게 아낌없는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발표 즉시 보수적 언론매체에 의해 대중에 유포되기 시작해, 마치 보수세력의 연합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은 양상이었다.

보수세력이 부르짖는 구호는 감세, 정부지출 축소, 규제완화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었다. 1970년대 미국 경제는 석유파동으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과 기업들의 국제경쟁력 약화로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보수세력은 뉴딜정책의 유산이 미국 경제의 활력을 좀먹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뉴딜정책으로 인해 비대해진 정부를 그대로 두고서는 미국 경제의 회생을 기대할 수 없고, 과감한 감세, 정부지출 축소, 그리고 규제완화를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이었다. 보수적 싱크탱크, 보수적 경제학자, 보수적 언론매체는 마치 서로 짜기라도 한듯 이와 같은 이념의 확산을 위한 체계적인 분업조직을 일구어 냈다.

이와 같은 이념전쟁을 통해 1970년대 말 보수세력은 미국 사회에서 완전한 문화적 우위 (cultural hegemony)를 거머쥐게 된다. 물론 보수세력의 득세에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과거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뉴딜연합(New Deal coalition)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백인 근로계층과 남부 백인들의 이탈,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의 보수세력 편입 등의 요인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1970년대에 걸 쳐 치열하게 벌어진 이념전쟁에서 보수세력이 거둔 승리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정책 실험의 든든한 뒷받침이 되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 미국 경제가 처한 어려움이 보수적 이념의 득세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민주당의 진보적 정책이 오늘의 어려움을 가져 왔다는 공화당의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데다가,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죽어가는 경제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갖는 매력이 한층 더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울 때는 실오라기 하나에도 기대를 걸게 마련이고, 따라서 대폭적으로 세율을 낮춰주면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것은 물론 조세수입도 더 커질 수 있다는 허황된 예언조차 열렬한 신도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레이건혁명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미국 사회가 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1970년대 미국 경제의 상황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나쁜 것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정책의 실험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던 80년대와 비교해 보면 평균적 성장률이 오히려 70년대가 더 높았다. 그런데도 미국 경제가 전 세계의 패자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50년대나 60년대에 비해 성장률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온 사회에 위기의식이 팽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120km의 속도로 달리던 운전자가 시내로 들어오면서 60km로 속도를 줄이면 엄청나게 늦게 달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당시 미국 사회에서 또 하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었던 것은 독일과 일본의 급격한 부상으로 인해 미국이 갖고 있던 헤게모니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피케티(T, Piketty)가 『21세기의 자본』에서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 독일과 일본의 부상에 대해 크게 우려할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보인 과민반응의 성격이 강했다. 그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철저한 파괴로부터 복구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매우 빠른 성장세를 보일 수밖에 없어 전쟁의 피해가 전혀 없었던 미국과 일대일의 비교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미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오늘의 어려움을 자초한 주원인이 되었다는 보수세력의 주장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1980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레이건이 압승을 거두게 된 결정적 원인은 어려운 경제상황이었다. 레이건과 공화당은 이것이 바로 카터 대통령과 민주당의 무능이 빚은 비극적 결과라는 홍보전을 통해 압승의 발판을 닦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약속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레이건하에서의 8년이 그 약속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수적 이념 그 자체가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를 통해 이룩한 보수적 이념의 발판이 워낙 굳건했기 때문에 실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의 뒷받침을 받아 정권을 잡은 공화당은 노골적으로 승자독식의 정치를 시작했다. 즉 자신의 핵심적 정치 기반인 기업과 부유층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 그들의 수중에 더욱 많은 소득과 부가 집중되는 결과를 빚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승자독식의 정치가 빚어낸 결과가 바로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필적할 만한 불평등성의 심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민주당이 집권해도 이 승자독식의 정치구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민주당도 돈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고, 결국 돈을 가진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래로 기업과 부유층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시작되면서 미국정치가 금권정치(plutocracy)의 경향을 점차 강하게 띄어 갔다. 오늘날 보는 미국 정치의 보수화 그리고 이에 따른 불평등성의 심화는 결국 이 금권정치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그 동안 이와 같은 미국 사회 불평등성의 심화 과정을 연구하면서 매우 흥미롭게 느낀 것은 한국 사회에 대입해 볼 때 놀랄 만큼 강한 상사성(相似性)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우선 1980년 레이건의 등장과 2008년 MB 등장의 배경을 보면 너무나도 비슷한 점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경제적 상황의 어려움이 두 사람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것도 비슷한 데다가, 사실은 경제적 어려움의 정도가 과장되어 대중에게 알려졌다는 사실까지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의 평균 성장률이 4.3%였는데,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이것이 그리 나쁜 성과는 아니었다. 특히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약속으로 대통령이 된 MB하의 2.9%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성과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이전 고도성장기의 높은 성장률에 익숙한 대중에게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느낌을 주었을 따름이다. 카터 대통령을 무능력자로 몰아간 레이건이나 노무현 대통령을 무능력자로 몰아간 MB가 모두 사실을 과장해 정치적 이득을 톡톡히 챙겼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대통령 선거 때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성적표를 남기고 쓸쓸히 퇴장했다는 점에서도 서로 너무나 닮아 있다.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점은 1980년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음이 이미 분명해진 상황에서 2008년에 그 시대착오적인 실험을 반복한 한국의 상황이다. 나에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왜 MB가 경제를 되살리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음이 의심의 나위 없이 증명된 감세정책에 그렇게 집착했느냐라는 것이다. 한 가지 가능성은 그의 보좌진이 충분한 공부를 하지 못해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에 관해 무지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는 성공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든 허황된 실험으로 귀중한 5년이란 세월을 허송한 우리의 아쉬움은 더할 수 없이 크다.

미국의 경험에서 또 한 가지 찾아볼 수 있는 우리 사회와의 공통점은 보수세력이 벌이고 있는 이념전쟁이다. 미국 보수세력의 이념적 첨병이 앞서 말한 헤리티지재단과 카토연구소, 그리고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라면, 우리 사회에는 그와 비슷한 성격의 싱크탱크로 재벌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한국경제연구원과 자유경제원이 있다. 이 두 나라의 보수적 싱크탱크는 수많은 보수적 성향의 경제학자들과 연계해 자신의 후원자들에게 유리한 이념의 확산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너무나 닮아 있다.

다만 미국에서는 이념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 보수세력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그들이 완전한 승리를 일구어내지는 못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도 보수적 싱크탱크가 갖는 영향력은 이제 무시 못 할 수준까지 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언론이 독점구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적극적 홍보 덕분으로 보수적 싱크탱크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무심코 읽는 신문 기사가 사실은 보수적 싱크탱크에서 특정한 목적의식에서 만들어진 연구결과를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신자유주의정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보수세력의 이념전쟁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부자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면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법인세율을 낮춰준다 해도 실제로 투자가 늘 어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을 감히 입 밖에 내는 경제학자는 극히 드물다. 경제학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은 거의 모두가 신자유주의 이념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다.

피케티는 자본주의체제 내부에 불평등성 심화의 본질적 요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평등성이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주장이 갖는 설득력을 인정해 줄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런 본질적 성향에 승자독식의 보수적 정책이 더해져 극단적인 불평등성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규제 철폐로 기업의 최고경영진과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소득을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만든 데다가 이들에게 갖가지 감세 혜택을 퍼부어주는 한편,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보장지출을 줄이고 (실질) 최저임금은 1970년대 수준에서 한 푼도 올려주지 않는 인색한 보수적 정책이 오늘의 불평등한 미국을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 중에는 모든 점에서 미국을 따라 하는 것이 좋다고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특히 현재 우리 사회를 주도하고 있는 보수세력 중에 그런 맹목적 신념의 소유자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대로 미국과 같은 길을 걸어가면 몇 십 년 후의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시장은 미덕이며 정부는 악덕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측면에서 시장의 역할을 늘려 가면 과연 우리 눈앞에 낙원이 펼쳐질 것인가? 끊임없이 세금을 줄여가고 이에 따라 정부가 하는 일도 줄여 가면 우리 경제의 활력이 나날이 더 커질 것인가?

어느 나라든 배울 점이 있고 배우지 말아야 할 점이 있는 법이며, 미국도 이 점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나는 미국을 무조건 따라 할 생각을 버리고 그들의 경험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교훈만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최소한 신자유주의정책의 실험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미국의 경험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결코 닮아서는 안 되는 한 가지 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나날이 분배의 불평등성을 심화시키는 승자독식의 정치다. 가진 자의 이익만을 노골적으로 비호하는 승자독식의 정치는 절대로 우리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해야 한다. 나는 분배문제에 관한 한 몇 십 년 후의 우리나라가 절대로 현재의 미국과 같아져서는 안 된다고 소리 높여 부르짖고 싶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