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셉 스티글리츠의 책 <불평등의 대가>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습니다. 저는 미리 읽어보고 이 책의 해제를 쓰기도 했는데요. 정말 많은 분들이 읽어보기를 바라는 좋은 책입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의 해제를 소개하니 일독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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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스티글리츠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서는 드물게 좌파로 분류되는 학자이면서 자본 중심의 세계화에 강력한 비판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최근작 <불평등의 대가>는 조셉 스티글리츠의 책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은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불평등을 핵심어로 해 적나라하고 통렬하게, 그러면서도 학자적 엄격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국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학자와 대중들의 지지를(물론 주류 경제학계의 반발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스티글리츠의 책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저작일 뿐만 아니라 최근 나온 각종 경제서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저작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 책의 주장은 설득력 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강력한 열망도 담고 있다.
사실 이 책에 대한 추천사는 딱 두 줄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현실의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처럼 정밀하게 설명하는 책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이 책의 지적과 분석이 가장 잘 들어맞는 나라는 미국 다음에 한국일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역시나 한국은 미국과는 다른 현실 맥락이 있다. 사실 한국은 이 책이 보여주는 미국의 현실보다 더 악화된 측면도 적지 않다. 이 책을 읽는 이들 또한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한국의 악화된 현실이 궁금할 것이다.
잘 알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불평등은 매우 심각해졌다. 불평등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소득격차의 확대라고 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8년까지 하위 10%의 월 소득이 101만원 증가하는 동안 상위 10%의 월 소득은 888만원이 늘어났다.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보다 약 아홉 배가량 더 많이 늘어난 셈이다. 상위 10%의 월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지를 보여주는 배율도 외환위기 이후 크게 높아졌다. 이 배율은 1993년 6.8배를 기록했으나 외환위기가 터진 1998년 9.4배까지 치솟았다가 지금도 9배 전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의 통계 기준이 2009년 이후 달라져 연속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2009년 이후에도 격차 확대 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통계청 조사는 표본조사를 통한 것으로 ‘타워팰리스’ 거주자처럼 조사를 꺼리는 최상류층의 실태는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다행히도 상위 1%의 소득 집중도 윤곽이 경제학자 출신인 민주당 홍종학 의원에 의해 드러난 바 있다. 홍의원이 그동안 사생활 보호라는 명분으로 공개되지 않던 국세청의 ‘통합소득 100분위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내용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 상위 1%의 평균 소득(3억 8120만원)은 중위 소득(2510만원)의 15.1배였다. 하지만 이는 소득이 적어 면세 대상이 되는 과세 미달자를 뺀 비교인데, 과세미달자 560만 명을 포함한 경우 중위소득(1688만원)의 22.6배나 됐다.
또한 최근 몇 년 동안의 소득격차도 계속 늘어났는데,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상위 10%의 평균 소득 증가액은 710만원으로 전체 평균 소득증가액 226만원의 3.1배, 하위 10% 평균 소득증가액 40만원의 17.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같은 기간 통합소득 상위 10% 이상 소득계층의 비중은 2007년 32.9%에서 2011년 34.3%로 늘어났다. 이 같은 소득 집중도는 대다수의 선진국들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나 아르헨티나 등 상당수의 중남미 국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사실 국세청의 소득 자료는 각종 비과세 및 감면 소득이 빠진 액수이므로 실제 소득격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한국의 빈부격차는 이미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대 중반에 이미 30여개 OECD국가들 가운데 빈곤층(전 국민 가운데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 미만인 계층)이 여섯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됐다. 또 멕시코와 스위스, 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빈곤격차(poverty gap, 중위소득과 빈곤층의 평균 소득의 차이를 나타냄)가 큰 나라가 됐다. 하위 10%의 소득 대비 중위소득의 배율이 2.5배 정도로 멕시코, 미국, 터키에 이어 네 번째다.
그런데 이 같은 통계조차 한국의 불평등도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것처럼 보이게 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 대로 통계청 자료는 최상위 계층의 소득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한편 평균 소득이나 중위 소득 등은 국세청 자료보다 상당히 높게 잡혀 있다. 하지만 통계청은 이 같은 표본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각종 불평등 관련 지표를 내고 있고 그것이 OECD에도 보고되고 있다. 정부의 각종 불평등 지표가 실제보다 훨씬 완화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로 홍의원이 밝힌 국세청 소득 자료를 바탕으로 대표적인 불평등도 지표인 지니계수를 구하면 2011년 기준 0.448이다.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도가 높은 셈인데, 이 수치를 그대로 대입하면 OECD 34개국 가운데 2000년대 후반 기준 가장 지니계수가 높은 멕시코(0.48)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진다. 미국의 지니계수는 OECD 통계로는 0.38로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는데, 스티글리츠가 책에서 인용한 수치는 0.48로 멕시코와 맞먹는 수준이다. 어떤 경우든 분명한 것은 한국의 소득 불평등도는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미국이 사회가 멕시코나 남미국가들처럼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가 되고 있다고 개탄했는데, 한국 또한 미국의 궤적을 뒤쫓아 빠른 속도로 불평등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빈부격차는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교육기회의 격차와 건강 격차, 사회적 이동성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면 관계상 여기에서는 교육기회의 격차만을 따져보면 한국은 공교육 비중이 낮아 세계에서 사교육비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이에 따라 집안의 재력에 따라 학생들의 진학 기회가 크게 달라진다. 이른바 포커판에서처럼 판돈(=사교육비)을 많이 댈 수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승승장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사립초등학교와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 등으로 이어지는 ‘성공경로’에 일찍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고 고소득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른바 교육의 ‘승자독식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미 환상이 된지 오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의예과 신입생의 43%, 법대 신입생의 38%가 자신이 상류층 출신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인 상류층 응답 비율보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더구나 이처럼 상류층 출신들이 한국의 지배엘리트로 성장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법조계가 대표적인데, 특목고가 생겨난 이후 외고--->서울대--->법조계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는 유행이 되다 시피했다. 실제로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미 대원외고를 나온 현직 판검사가 129명으로 전통의 명문고인 경기고 55명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끊어지고 기회 격차가 구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공식적으로는 OECD국가들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하지만 미국 대학생의 67% 가량이 국공립대 등록금을 내는 반면 한국 대학생의 78%가 사립대 등록금을 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대학등록금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소득은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고 대학 교육의 수준도 훨씬 낮은 나라에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부담은 더 높은 것이다. 스티글리츠가 개탄하는 미국의 등록금 현실도 한국에 비하면 약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대다수 국민들을 희생해 경제 성장의 과실을 재벌 대기업과 극소수 상류층에 몰아준 탓이 크다. 특히 상시적인 정리해고 등을 통해 가계 소득의 주축인 일자리를 뿌리째 흔들려버린 것이 국민 대다수의 빈곤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일자리 불안에는 부동산거품, 수출편향 경제, 저출산 고령화 등이 주요하게 작용했지만 재벌독식 구조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재벌독식구조가 강해지다 보니 중견,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산업생태계가 사라지고 골목상권까지 무너지는 상황이 돼버렸다. 일자리의 88% 가량을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담당하는데 이들 일자리가 점점 위축되거나 불안한 일자리가 돼버린 것이다. 일례로, 두부시장에 CJ나 대상과 같은 대기업이 들어와 수많은 중소 두부공장이 문을 닫은 것이나 동네 구멍가게와 재래시장이 대형마트나 SSM 등에 밀려난 것이 대표적이다. 재벌그룹의 부와 이익은 늘어났으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무너졌다. 그렇다고 재벌대기업들이 이익이 늘어나는 만큼 고용을 확대한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전 직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고용 비중은 13%에 이르렀으나 외환위기 이후 5%대로 떨어진 뒤 조금 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7%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고 살아남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노력하는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는 경제 기득권에 막대한 특혜를 몰아주고 이들이 중소하도급업체나 협력업체 및 그 종사자들의 소득을 사실상 가로채는 ‘삥땅경제’ ‘가로채기 경제’ 행태가 만연해 있다. 각종 사내하청이나 파견근로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건설, IT서비스, 화물수송, 택배 등 많은 산업 및 직업 영역에서 이 같은 행태가 횡행한다. 실제로 정부 등 발주자나 원주문자가 지급하는 금액이 100이라고 한다면 현장 노동자에게는 40~50 정도밖에 내려가지 않는다. 원도급자나 중간 하도급업자, 알선업자 등이 모두 떼먹고 실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쥐꼬리만한 돈만 내려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노동자들의 일당은 외환위기 전과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내려갔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그들의 일당은 반토막났다. 지난 십여 년 동안 부동산 광풍이 불고 공공건설 물량도 몇 배나 늘었지만 건설 노동자들의 대우는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진행돼온 게 이런 식이었다. 국민 대다수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충분한 부가 생산되는 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재벌대기업과 극소수 상류층에 몰아주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재벌대기업에 대해서는 인위적 고환율과 연간 16조원이 넘는 R&D 예산의 대부분, 대규모 공공토건사업, 불공정거래 및 담합 등에 대한 방조, 세계적으로 낮은 법인세율과 대폭적인 비과세감면 혜택 등으로 재벌의 독식을 방치해왔다. 그 결과 지난 몇 년간 재벌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는데 대다수 서민들의 삶은 계속 가난해졌다.
그런데도 이 같은 현실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최근으로 올수록 더욱 악화시켜 왔다. 조세구조를 예로 들어보자. 소득세의 경우 한국은 평균임금의 167%를 받는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이 OECD 국가가운데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또 한국 언론의 왜곡된 보도로 한국의 법인세 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상당히 낮은 수준에 속한다. 오히려 스티글리츠가 불만을 터뜨리는 미국의 법인세율은 세계 2위 수준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며, 일본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높은 대부분 국가들이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명목세율뿐만 아니라 실효세율은 더 낮아 삼성전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누리기 힘든 낮은 실효세율을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 등 재벌기업들은 언론을 통해 세금 부담이 높아 금방이라도 한국을 떠날 것처럼 협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재분배해서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효과가 OECD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 예를 들어, 가계 가처분소득 가운데 과세되는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OECD 국가 간에 비교한 지표를 보면, 한국은 이 비율이 8.0%로 OECD국가 중 가장 낮다. 한국 바로 다음인 아일랜드도 19.4%로 한국보다 2.4배 이상 높다. OECD 평균은 28.3%로 한국의 3.5배 가량에 이른다. 미국도 OECD 평균에 비해 낮기는 하지만 약 26%로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한편 이 같은 과세로 인해 불평등이 감소하는 효과가 스위스와 일본을 제외하고는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낮다. 정리하자면 한국은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가계 가처분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비율이 가장 낮고 누진세 적용 등이 미약해 소득 재분배 효과가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고소득 부유층에 대한 누진세 적용이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소득 부유층과 재벌 대기업 등의 세금 부담이 적은데도 이명박정부는 미국 부시행정부를 따라 대규모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세계적으로 3위 수준의 대규모 감세였다. 그 같은 감세정책의 결과는 스티글리츠가 지적하듯이 경제성장에도 기여하지 못했고, 불평등을 키웠으며 정부채무만 잔뜩 늘려놓았을 뿐이다. 이명박정부 들어 국세 수입의 3대 축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가운데 직접세인 소득세(-3.6%)와 법인세(5.2%)는 줄거나 거의 늘지 않았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인 종합부동산세(-57.4%)와 개별소비세(-1.8%)도 줄었다. 반면 간접세여서 상대적으로 서민들 부담이 커지는 부가가치세(20.0%), 유류세(21.9%), 주세(27.2%)는 대폭 늘었다. 부자들이 내는 세금은 왕창 깎아주고 중산층과 서민들 세금을 대폭 올려 소득 역진성을 키워버린 것이다. 그 결과 노무현정부 때 상위 20%의 세금 증가율은 63.7%였으나 이명박정부에서는 13.2%로 감소했다. 반면, 하위 20~40% 계층의 세금 증가율은 3.8%에서 65.7%로 크게 늘었다. 가뜩이나 심각한 빈부격차를 더욱 악화시켜 버린 것이다.
이 같은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악화된 결과 성장 잠재력마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불평등의 대가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 3.6% 성장한데 이어 2012년 2.0% 성장률에 머문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명박정부 5년 동안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2.9% 수준인데, 이는 김대중정부 5년 동안 5.0%, 노무현정부 4.3% 수준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물론 세계경제위기라는 상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2011년과 2012년 연속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을 밑돌 정도인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는 극소수 상류층과 재벌대기업들로 부가 쏠린 반면 대다수 서민들의 소득이 부족해져 지출 여력이 고갈된 탓이 크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 가운데도 내수주들의 실적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백화점이나 마트의 매출이 최근으로 올수록 점점 위축되고 있다. 가계 소득이 부족하니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낸다 한들 사줄 여력이 바닥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에 따라 경제의 성장성과 효율성마저 떨어지는 것은 멕시코, 핀란드, 남미국가들에서 이미 목격한 바다. 그런데 이 같은 궤적을 미국과 한국 같은 과거의 상대적 고성장 국가들이 빠르게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불평등의 대가>는 경제적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정치적 기득권을 강화하고 그 사회정치적 기득권이 어떻게 다시 경제적 불평등을 강화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강점이다. 한국에서도 그 같은 양상은 낯설지 않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전에도 정경유착에 의한 이권 주고받기가 횡행했는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더욱 교묘하게 그들만의 이권 주고받기를 지속하고 있다. 시장원리든 정부개입주의든 기득권에 유리한 방식들만 선택적으로 결합해 받아들인 결과 한국은 ‘기득권 만능 사회’가 됐다. 예를 들어, 분양가 자율화 도입과 함께 폐지하기로 했던 반시장제도인 선분양제를 허용함으로써 공급자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주택시장을 만들어 주택 폭등을 자극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이들 경제적 기득권은 사회경제적 강자들은 독과점과 담합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서도 약자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경쟁을 강요한다. 약자에게만 한 없이 가혹한 경쟁의 이중구조를 만든 것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통신 건설 유통 등에서 재벌기업들은 대부분 사실상 독과점과 담합, 불공정 경쟁을 일상화하면서도 자신들에게 부품을 조달하는 하도급 업체에는 생사를 건 납품단가 인하 경쟁을 벌이게 하고 불공정거래를 요구한다. 상당수 건설업체는 대물변제라는 형식으로 미분양 물량을 하청업체 떠넘기고 임직원의 친인척까지 동원해 형식상으로 미분양을 털어내면서 미분양이 없는 것처럼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그 결과 경제적 강자들은 공정한 시장경쟁 상태에서보다 늘 많이 가져간다. 하도급 업체와 같은 '을'과 일반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그들의 배를 불리는데 쓰는 것이다.
이 같은 기득권구조를 뒷받침하는 세력들은 한국사회의 주요 영역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및 관련산업에 형성된 모피아나 토건족은 한국경제의 자원 배분과 정책 및 제도 결정을 좌우하고 있다. 재벌에 매수된 검찰과 법원 등은 재벌과 상류층의 구조적 불공정게임에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 재벌 광고주들이 던져주는 광고에 눈이 먼 기득권언론들은 ‘삼성이 망하면 한국이 망한다’와 같은 거짓말로 국민들을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재벌대기업의 용역을 받아 일하는 다수의 학자나 전문가들은 이들 언론의 보도나 정부의 결정에 기꺼이 권위와 (허구적인) 논리적 토대를 제공한다. 이렇게 지배 엘리트들 사이에 끈끈하게 ‘인지 포획’이 일어나고 1%를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어내는 ‘규제 포획’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는 막대한 일반대중의 이익을 희생해 상류층의 독점적 이익을 보장하는 불평등 사회다. 재벌 계열사들에 국가가 쥐꼬리만한 면허세를 받고 ‘황금알 낳는 거위’인 면세점을 허용해주거나 각종 민자사업과 재정사업을 벌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에게는 막대한 퍼주기를 지속하도록 하면서도 OECD국가 가운데 복지 예산 비중이 가장 낮은 현실을 왜곡하며 ‘복지로 망한다’고 협박한다. 최소 주거여건에 미달하는 가구가 13%에 이르지만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주거복지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가진 자들의 집값을 떠받치기 위한 각종 세금 감면책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식으로 상위 1%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와 정책, 법률들을 누적시켜온 결과 한국의 불평등은 스티글리츠가 우려하는 미국 이상으로 극심해졌다. 이 같은 불평등을 반영해 사회는 갈가리 찢어지고 있다.
다행히도 지난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재벌개혁과 복지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운동에 상응하는 흐름인 셈이다. 물론 대선 1번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를 국정목표에서 빼버린 박근혜정부에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미 시대의 화두가 된 경제민주화를 완전히 없던 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국회에서 정년 60세 연장안이 통과되고, 재벌 경제력 집중 견제와 공정거래 질서 강화를 위한 몇 가지 입법안이 통과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스티글리츠가 강조하듯이 지금의 불평등이 바꿀 수 없는 흐름이 아니라 정치적, 정책적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낙관적일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의 불평등 구조를 지탱하는 사회정치적 기득권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날이다. 하지만 낙관적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함께 노력할 때 ‘다른 세상은 가능해진다’. 이 책을 읽고 함께 꿈꾸어 보자. 재벌 등 경제기득권에 주던 특혜를 없애고 이를 서민의 혜택으로 전환한 미래를.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서민들의 부를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이전해온 거대한 부의 이전 시스템을 바꾼 미래를. 재벌대기업 지원과 토건부양책으로 탕진하던 세금을 아껴 보육과 교육, 복지, 문화, 생활체육 등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데 쓰는 나라 살림살이를. 그리고 수출대기업이나 건설업계, 외국자본에 장악된 금융업체들에게 유리한 정책이 아니라 중소기업과 중소상공인, 주택수요자, 금융소비자 등에 유리한 정책기조가 상식이 되는 세상을. 우리가 함께 꿈꾸는 한 그 같은 세상은 결코 꿈으로만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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