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사회

노인 결핵, 남의 일 아니다

pulmaemi 2009. 3. 25. 09:00

오늘은 제27회 ‘세계 결핵의 날’이다.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 결핵 퇴치의 길을 연 지 100주년이 되던 1982년, 이를 기념하고 결핵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 항결핵 및 폐질환 연맹이 제정한 날이다.

결핵균이 발견된 1882년 당시 유럽과 북미에서 7명 중 1명이 결핵으로 사망할 정도로 결핵은 심각한 질환이었다. 그 후 127년이 지난 오늘날, 결핵의 진단과 치료법에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년 920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하고, 약 170만 명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40여 년 동안 매년 7%씩 빠른 속도로 결핵을 감소시켜 왔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 결핵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2007년도 결핵환자 신고현황 연보’에 따르면 결핵환자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의 연령군에서 발생, 가장 높은 발병률을 보였고, 25~34세의 연령군이 그 뒤를 이었다. 2006년 경우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만 명당 185명의 결핵 환자가 발생, 25~34세 연령군에 비해 2.3배의 높은 발생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노인 결핵이 증가하는 주된 이유는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이라는 사회적 요인도 있지만 젊은 연령층에 비해 면역력이 떨어져 결핵 발병에 매우 취약한 탓이 크다. 게다가 폐결핵의 주요 증상인 기침과 객담, 전신 피로감, 식욕 상실, 지각력 감퇴 등은 노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들이어서 발병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기 쉽다. 의사 입장에서도 진단이 쉽지 않다. 노인들의 경우 방사선 소견에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암 등 결핵과 구별해야 할 다른 질환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치료를 하더라도 약제 부작용이 증가한다. 또 다른 동반 질환으로 인해 복용하는 약제의 종류나 수가 많아져 치료를 완료하기도 힘들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거나 실패함으로써 약제 내성(耐性) 결핵의 발생률이 높아지고, 사망률도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언론에서는 매년 젊은 연령층에서의 결핵 문제를 주로 보도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노인 연령층에서의 결핵 문제는 도외시해 왔다. 결핵감염률이 낮은 선진국에서는 고령화가 진행되더라고 노인 결핵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같이 결핵감염률 자체가 높은 나라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0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이미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2018년께면 그 비율이 14%를 넘어서서 본격적인 고령 사회로 접어든다고 한다. 이처럼 인구의 고령화가 선진국 수준으로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노인 결핵은 점점 더 중요한 보건 문제로 대두될 수밖에 없다.

고령 사회에 대비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선진국형 노인 복지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정부가 보건 분야에서 노인 결핵 환자를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국가결핵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강화하는 것도 노인 복지를 위한 중요한 대책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세계 결핵의 날’을 맞아 정부와 국민 모두가 노인 결핵 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돌렸으면 한다.

ⓒ 중앙일보 류우진 결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