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스 -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베리의 애칭 - 는 나의 영원한 로망이다. 위대한 작가였으며, 창공에 인생을 걸고 모험과 도전의 일생을 불꽃처럼 살았던 초창기 비행시대의 영웅적 비행사. 마침내 전투파일럿으로서 2차 대전에 참전하여 그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대상인 하늘에서 산화한 생텍쥐베리. 나에게 다른 사람의 일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 없이 생텍쥐베리를 선택할 것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내 기억으로 소설 ‘인간의 대지’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4년 가까이 서프에 글질한 이유 하나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공 아닌 짬밥’으로 고참 대접받고 객원 필진이 된 ‘내과의사’ 닉을 지탱한 ‘규칙 제1호’이기도 했다.
강금실의 당당했던 한마디. ‘적어도 나는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않았다’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할 수 있는 그 누구라도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나는 서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무리 아닌 척 위선 떨어 보았자 어차피 기득권 인생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보다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을 함께 갈 수 있다는 전제마저 없었다면 진작 서프 글질 때려치우고 설치류 무리들 쪽에 젖은 낙엽처럼 찰싹 달라붙는 속 편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한나라당이라는 정치집단을 한없이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반드시 분쇄해야 할 악의 무리라고 생각한다. 왜? 그들의 뿌리가 대한민국 역사에 수없이 많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주체인 5공 민정당 정권과 유신정권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의 법칙.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힘과 사과가 땅 위로 떨어지는 힘은 동일하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 식민지 시절 일제가 우리에게 자행했던 만행들,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민족과 종교와 이념의 이름으로 강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약자에 대한 박해와 탄압들.... 한나라당에 대한 나의 증오와 분노 역시 그러한 악행들에 대한 나의 감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 내가 한나라당을 정상적인 정치집단으로 인식하려면 뉴라이트 또라이들처럼 머리를 다시 포맷하는 도리밖에 없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우리에게 축복이었다는 식으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한나라당에 입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사람이라면, 비록 한나라당과 잠시라도 인연을 맺었을지언정, 그 사실을 후회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한 가지 공통점만으로도 서로 사랑하며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믿었었다. 쓸데없이 서로 뚫어지게 째려보며 흠집 잡으며 다투고 싸우는 짓은 부질없는 감정의 과잉이요, 낭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었다. 적어도 서프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자는 나의 규칙 제1호를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규칙 하나로 우리들은 결코 갈등 없이 봉합되지는 못했다. 왜? 비록 같은 방향을 바라볼지언정 누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느냐는 인간 본연의 감정과 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생텍스’의 경구에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나의 직업이 아니다. 정치는 우리네 삶을 규정하는 큰 틀이지만 정치권력의 향방이 내가 먹고사는 이해관계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존심과 양심의 문제와 더 가까운 영역이다. 하지만 직업정치인이라면 정치에 대한 개념이 나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we are the world !!’라는 모토는 어쩌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그저 좋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치인에게 ‘가장 목 좋은 자리’를 내가 차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하루하루 진료 환자 수에 목을 매는 의사의 심정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우주 어느 곳에서라도 예외 없이 적용되겠지만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일제의 만행으로 상징되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억압과 횡포 앞에서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분노는 결코 한나라당에 적용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TK.PK로 통칭되는 영남 땅에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불가해하고, 추악한 현실이다.
호남 땅에서 ‘한나라당 없는 세상 바라보기’는 정치인에게 최고의 좋은 자리를 보장하지만 영남 땅에서는 곧바로 정치업계 퇴출을 의미한다. 똑같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도 결과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똑같이 양심과 이성에 따라 행동했을 뿐인데 정치인으로서 위상이 ‘F4’와 ‘서민’처럼 갈라진다. 나는 너와 같은 방향으로 고개 돌리기도 힘든 처지인데 너는 그쪽을 보는 척(?)만 해도 짭짤한 재미를 본다. 전후관계를 정확히 따지지 않고 이 상황 자체만을 두고 모순과 부조리라고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보편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파행적 현상과 정치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필연적 행위는 결국 내가 순진무구하게 믿어왔던 ‘생텍스’를 무너뜨린다.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이유만으로 서로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물론, 서로를 경멸하고, 부정하고, 조롱하며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감정싸움의 양상으로 치닫는 파국을 치른다. 이단전쟁이 이교전쟁보다 더욱 잔인한 양상을 보이는 것처럼.
이명박 정부라는 재앙을 초래한 책임은 나에게, 그와 한나라당을 반대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있다. 막지 못했기 때문에, 절대 방어선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 하나, 1997년에도, 2002년에도 이루어냈던 일치된 단결이 2007년에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끼리 마주 보며 처절한 저주를 퍼붓는 이단 전쟁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이다.
호남 땅에서 ‘한나라당 없는 세상 바라보기’는 정치인에게 최고의 좋은 자리를 보장하지만 영남 땅에서는 곧바로 정치업계 퇴출을 의미한다. 똑같이 양심과 이성에 따라 행동했을 뿐인데 정치인으로서 위상이 ‘F4’와 ‘서민’처럼 갈라진다. 대한민국의 불가해하고, 추악하고 너무나도 서러운 현실이다. ‘생텍스’에 대한 나의 믿음이 무너진 비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암담한 현실이 왜 잉태되었으며 영원한 현재진행형으로 자리 잡아 가는지에 대한 진단적 시각이 우리들 사이에서조차 일치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이단전쟁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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