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상대주의와 보편적 가치

pulmaemi 2009. 3. 16. 11:46

(사람사는 세상 / 노무현 / 2009-03-13)


관용, 상대주의 이런 관념과 논리 이야기는 그만 하려고 했는데, 설명이 좀 부족했던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대주의 이야기를 좀 더 보충하려고 합니다.

 

사람세상 회원 한 분이 보내주신 글에 “저는 ‘상대주의 철학’은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와 개념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분이 말하고자 하는 본론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논쟁을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논리를 한 번쯤 짚어보는 것은 상대주의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부족한 대로 저의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저는 상대주의 철학이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주의는 절대적 진리 또는 가치를 부정하고 절대주의를 반대하지만, 보편적 가치나 보편적 원리를 부정하거나 반대하지 않습니다.

 

절대주의는 다른 가치나 반대를 인정하지 않고 억압하고 배제합니다. 그와는 달리 보편주의 입장은 보편적 원리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다른 가치나 견해를 배척하고 억압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편적 가치 또는 원리는 절대주의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에서 상대주의 가치는 적극적으로 상대주의 그 자체의 진리성을 강조하는 데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가치와 사상을 ‘반대는 하더라도 억압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라는 소극적 태도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 민주주의 사상의 기초로서 소중한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상대주의가 스스로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에 관한 경우입니다. 민주주의 헌법에 관한 보편적인 이론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사상이라 할지라도 사상의 수준에서는 자유를 인정해야 하지만, 그것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으로 발전할 때에는 이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상대주의의 한계, 관용의 한계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엄밀하게 논리적으로만 말한다면 이것은 상대주의가 스스로 상대주의를 부인하는 모순에 부닥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는 아직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모순 때문에 민주주의의 가치와 철학적 기초가 모두 무너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철학과 논리의 세계에서 가치와 사상, 법칙 이런 것을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이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는 철학적 원리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편성, 타당성, 이런 이론으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저는 뉴턴의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불확정성의 원리, 상대성 원리 이런 이론을 처음 만났을 때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 혼란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물리학의 세계에서도 확률과 통계적 보편성 이런 것이 과학적 원리로 통용이 되고 있다는 글을 읽고 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논리적으로 완벽한 진리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이런 사고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상대주의, 관용 이런 개념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상대주의니 관용이니 하는 말이 ‘동의하지 않지만, 반대하지만, 미워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그의 권리로 인정하고, 인내한다. 나도 상대와 논리를 비판하고 공격할 수 있지만, 민주적으로 합의된 규칙에서 허용된 방법을 넘어서는 반칙을 하거나, 상대를 억압하거나 배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원리를 이야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 어렵게 한 것 같습니다만, 이처럼 사상과 논리의 구조를 찾아가는 과정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 사이의 우선순위, 양보와 타협의 균형점, 그에 이르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지켜야 할 규칙과 태도 이런 것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사고의 연습으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시민이 이런 사고에 익숙한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튼튼한 기초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용에 관하여 길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지루한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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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3일
노무현


G20 재무장관회의 기사를 보고
(사람사는 세상 / 노무현 / 2009-03-15)


이전에는 세계경제에 관한 국제회의라면 주로 G7, 또는 G8, 이런 이름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에는 G20이라는 이름이 자주 나옵니다. G20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궁금합니다. 세상이 좀 달라지고 있는 것인가? 그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궁금합니다.

 

G20이란 무엇인가? 다음 사이트에 “G20 재무장관 회의… ‘부양 먼저’ VS. ‘규제 먼저’” 이런 기사가 있어서 들어가 보니, 그 기사 아래에 G20을 소개하는 글 두 개가 걸려 있네요. 우선 위키피디아에 들어가 봅니다.

http://ko.wikipedia.org/wiki/G20_%EA%B3%B5%EC%97%85%ED%99%94_%EA%B5%AD%EA%B0%80

 

읽어보니 G20이라는 것이 1999년도부터 시작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왜 새롭게 뜨는지에 관한 설명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밋밋합니다. 그래서 다른 블로그로 들어가 봅니다.

http://blog.naver.com/yitahaing/80064986252 G20 코미디 낙서장(2009/03/14 10:12)

 

제가 올리기에는 약간 민망한 내용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G20을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는 글이라 올립니다.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선 G7, G8, 이렇게 모여서 세계경제의 질서를 의논할 때에는 우리는 구경만 하던 처지였는데, 이젠 그 회의에 들어가서 할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우선 기분이 좋은 일입니다. 더욱이 우리 한국이 BIS 회원국이 되고, 회의 개최국인 영국이 우리나라를 핵심 로비 대상 국가로 분류했다니 기분이 아주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책임도 무거워지겠지요. 들어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보호주의 안 된다. 경기 부양과 은행위기 해결에 힘을 모은다. IMF 대출재원을 확대한다. 이처럼 별 이견이 없이 대세를 이루어 굴러가는 주제들에 관해서는 그냥 대세를 좇아가게 되겠지요. 그러나 의견의 대립이 있거나 우리 같은 처지에서 중요한 이해관계가 있는 의제에 관해서는 누구 편 의견이냐가 아니라 세계경제의 바람직한 질서와 우리 같은 나라의 이해관계를 잘 따져서 입장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보도를 보면 금융규제에 관하여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나오네요.

http://media.daum.net/economic/world/view.html?cateid=1046&newsid=20090314195004734&p=ytni&RELATED=R2

 

그런데 관련기사 묶음을 보면 ‘오바마, G20 경기부양, 금융개혁에 초점’이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http://www.ytn.co.kr/_ln/0104_200903120224586999

 

이 두 기사를 보면 미국 재무장관과 미국 대통령의 입장이 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2005년 9,19선언 직후 BDA 문제를 불거졌을 때, 우리는 미국의 대통령과 국무부의 입장과 재무부의 입장이 서로 맞지 않아서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우리는 어느 쪽으로 힘을 실어야 하는 것일까요?

이번의 경제위기는 세계경제, 우리경제, 특히 우리 서민경제에 큰 재앙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세게 금융제도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의논을 모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G20이라는 회의가 그런 일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도 그 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논리가 곳곳에서 부닥칩니다. 이런 자리에서 어떤 주장을 해야 할 것인지에 관하여도 보수와 진보 간에 이견이 있는 것일까요?

 

G20 유럽과 미국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주목해 봅시다. 유럽은 보수정권도 있고 진보 정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금융규제의 필요성에 관하여 한목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위의 기사들만 보면 미국은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대통령은 금융규제를 강조하고 있는데, 재무장관은 국제회의에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앞으로 오바마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주목해 볼 일입니다.

 

어떻든 일단 G20이 등장한 것은 세계질서에 큰 변화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대로 G7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지, 과거의 체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인지 이것도 관심사입니다. 이 또한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댓글 참여 - http://member.knowhow.or.kr/board_best/view.php?start=0&data_id=162447&mode=&search_target=&search_word=

 

2009년 3월 15일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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