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다

pulmaemi 2009. 3. 17. 13:05

(서프라이즈 / 개곰 / 2009-03-17)


1945년 9월 20일 스탈린은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북한 점령 목적은 소비에트 권력 수립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 확립 지원이므로 사적 소유를 유지하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종전 직후 소련의 한반도 정책 기둥은 친일 세력 분쇄였다. 반일 민족주의 지도자였던 조만식은 12월 모스크바 3상회담에서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자 반탁운동을 주도하며 외세 척결에 앞장섰지만 소련의 염원이 공산주의 정권 수립이 아니라 친일 세력 척결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소련이 배일을 중시한 것은 한민족에게 연민을 느껴서가 아니라 자국 안보를 위해서였다. 소련은 1905년 러일전쟁에서 패한 뒤로 일본을 두려워했다. 만주에서 일본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치던 김일성을 1930년대 후반 시베리아로 불러들인 것도 일본의 반발 탓이었다. 소련은 상대가 독일 같은 파시즘 세력일지 영미 자본주의 세력일지 아직 몰랐지만 서유럽에서 조만간 큰 전쟁을 치러야 할 상황에서 일본과도 싸우면서 동서에서 협공당하기는 싫었다. 소련이 일본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은 원폭 투하로 일본의 패색이 짙어진 1945년 8월 9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미국이 두려워한 것은 태평양 너머 일본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좌파 정권이 한반도에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좌파 세력을 탄압하고 친일파를 중용했다. 자연히 이념을 초월한 김구 같은 민족주의자보다는 반공 의식이 투철했던 이승만을 좋아했다. 그리고 친일 세력은 이승만 밑에서 활개를 폈다.

 

일본도 러시아를 두려워했다. 영국이 유럽에서 독일과 싸우느라 아시아의 식민지를 지키지 못할 게 뻔한데도 일본이 처음에 남진을 망설인 것은 영국이 소련을 끌어들여 일본의 뒤를 칠까봐 두려워서였다. 일본에게 한반도는 대륙 진출의 거점이기도 했지만 대륙이 찌르는 창끝이기도 했다. 일본도 여몽 연합군의 침공을 받은 악몽이 있었다. 일본이 조선에 눈독을 들인 것은 개항 이후 서방과 맺은 불평등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자기도 어엿한 제국주의 국가임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컸지만, 조선이 러시아의 품에 안기는 최악의 안보 위기를 막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빌미를 제공한 것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였지만 조선 왕은 1896년 러시아 대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으로 나라의 운명을 러시아에 몽땅 거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동학 농민이 외세 배척과 국정 개혁을 요구하면서 들고 일어났을 때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다. 왕을 부정하는 것도 아닌데 자국민의 개혁 요구를 타국 군대로 탄압한 것도 문제였지만, 중국의 가랑이만 붙잡고 늘어지는 조선의 모습에서 일본은 조선이 중국에 완전히 넘어가는 최악의 사태를 우려했을 수 있다. 일본은 청일전쟁 이전까지는 중국을 겁냈다. 서양 무기도 중국이 일본보다 먼저 도입했다. 일본은 아직 중국으로 유학생을 보내는 처지였다. 조선 왕의 어리석은 처신은 일본에게 승부수를 던질 기회를 주었다. 조선 지도자는 일본에게도 두려움이 있음을 알지 못했다.

 

핀란드의 지도자는 달랐다. 핀란드는 소국이 이념을 달리하는 이웃 대국과 단독으로 맞붙기는 어려움을 절감했다. 독일, 스웨덴, 영국과 상대를 바꿔가면서 동맹을 맺었지만 어느 누구도 핀란드를 지켜주지 않았다. 믿을 것은 자기뿐이었다. 그리고 이웃나라를 쓸데없이 자극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20세기 소련의 역사는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자본주의 진영과의 투쟁사였다. 소련이 동유럽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묶어두려던 것도 자본주의 진영의 직접적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의도가 강했다.

 

핀란드가 서방의 앞잡이가 되어 소련을 공격할까봐 소련이 겁낸다는 것을 깨닫고 2차대전 이후 핀란드는 보수당이 앞장서서 소련과 우호적으로 지내려고 애썼다. 미국의 마셜 플랜 지원을 안 받으면서까지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덕분에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 기구에서도 빠질 수 있었다.  불필요한 자극을 삼가는 핀란드의 처신을 서방에서는 약소국이 인접 강대국에게 알아서 기는 “핀란드화” 현상이라며 비웃었지만, 핀란드는 상대방의 두려움을 간파하고 그 두려움을 자극하지 않았을 뿐이다. 핀란드에는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었다.

 

한국도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었다. 노무현은 북한의 두려움을 간파했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국의 국방비는 국민총생산의 3%이고 세계를 호령하는 미국도 3.8%지만 북한은 무려 25%다. 세계 1위다. 2위인 오만이 10%, 3위 에리트리아가 9.2%, 미얀마가 9.0%, 사우디가 8.8%, 이스라엘이 8.2%, 요르단이 7.9%, 쿠웨이트가 7.8%다. 하나같이 안보 불안을 느끼는 나라들이다. 북한이 과도한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은 한국의 등 뒤에 버티고 선 세계 최대의 무력 보유국 미국의 공격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염원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일 수밖에 없다. 국방비를 10%로만 줄여도 북한의 생활수준은 크게 올라간다. 

 

노무현은 미국의 두려움도 읽었다. 조중동의 불필요한 이념 공세로 말미암아 미국이 한국의 새 정부를 이념에 휘둘리는 좌파 정권으로 본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라크에 파병한 측면이 강하다. 다른 나라의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들러리를 선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고 그것을 비판하는 것도 감수해야겠지만, 그런 불필요한 이념 공세로 미국을 애당초 자극한 장본인은 바로 조중동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은 북한의 바람을 정확히 읽었다. 그래서 남북 관계보다 북미 관계가 우선임을 줄곧 강조했다. 주인공인 척 굴지 않았고 성실한 조연으로 남았다. 사심없이 조연역에 충실하다 보니 신뢰가 쌓이면서 역할이 커졌고 북미 관계에서 한국의 발언권도 커졌다. 그런데 이명박이 과거 한국의 독재자들처럼 다시 미국과 일본만 졸졸 따르니까 북한도 미국, 일본도 한국을 다시 우습게 본다. 중국과 러시아한테서 받는 불신과 경멸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핀란드 중립 외교의 기틀을 세운 파시비키 대통령은 핀란드 내전 때 공산주의 세력이 주축을 이룬 적군과 목숨을 걸고 싸운 우파다. 한때는 극우파 혐의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종전 뒤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의 밀월 관계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파시비키였다. 나라와 민족의 이익 앞에서 이념은 한낱 휴지조각이었다. 핀란드가 강소국이 된 것은 이런 지혜로운 지도자가 존경받기 때문이고 한국이 벼랑에 선 것은 그런 지도자가 돌팔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그 선봉에는 물론 조중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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