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시론/신의진]우울증, 이웃의 情이 약이다

pulmaemi 2009. 3. 13. 08:48


경제 위기가 엄습하면서 절망에 겨운 사람의 자살, 충동적 행동이 우리를 잔뜩 움츠리게 한다. 사회 전체가 우울한 기분에 휩싸여버린 느낌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에 노출됐을 때 우울증이란 단어를 자동적으로 떠올린다. 수년간 자살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우울증이 원인으로 거론되면서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생존경쟁으로 고립-상실감 커져

문제는 우울증이란 말을 남용하면서 우울하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간과하는 현실이다. 우울증은 누구나 힘들면 걸리고 혼자서 극복하면 된다는 식의 무감각증이 확산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나고 원인도 참으로 다양하다. 주요 우울장애 혹은 조울증에서 나타나는 우울장애는 무기력함, 우울한 기분, 이에 따른 자살사고가 빈번해 전문적 치료가 필수적이다. 심한 스트레스에 의해 단기간 울적하고 짜증이 쉽게 나며 무기력해지다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반응성 우울증상도 있다. 같은 증상이라도 원인과 정도에 따라 다른 처방이 필요한데 우울증에 대해 너무 주관적인 해석을 내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우울증에 빠지게 만드는 환경적 요인이 있다는 점도 쉽게 간과한다.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대표적 우울증 유발 요인이 사회적 고립과 심각한 상실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만 한 달 정도 지내다 보면 누구나 우울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병아리 무리에서 한 마리만 떼어놓으면 모이를 쪼는 횟수, 즉 식욕이 감소하는 우울 증상을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 물리적인 고립이 아니라 곁에 친구나 가족이 있어도 따돌림을 당하거나 정서적 유대감이 없다면 더 심한 사회적 고립을 느껴 심하게 우울할 수 있다. 집단따돌림을 당한 이후 자살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겪는 청소년이 대표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갑작스러운 실직 이후 심한 심적 고통을 겪는 것은 심각한 상실로 인한 우울증이다. 6개월이 지나도 우울감이 회복되지 않으면 전문적인 치료가 꼭 필요하다.

상실과 고립으로 인한 우울증은 경제 위기 이후 사회 도처에서 넘쳐난다. 당장 필요한 점은 경제난 극복 그 자체가 아니라 상실과 고립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이다. 실직 빈곤 상실이 소수에게만 국한되어 사회에서 외면 받는다면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을 택한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이 고통을 함께 나눈다면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우울증을 극복할 의지가 생긴다. 인류 역사의 어느 순간도 전쟁 빈곤 질병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다. 지금의 경제위기 역시 시간이 흘러야 극복될 것이다. 그동안 상실과 고립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실직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며 옷깃을 여밀 일이 아니다. 상실과 고립으로 우울한 동료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여유가 바로 우리 사회를 살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가족-동료가 손잡고 고통 나눠야

일자리 창출 등 실질적 도움 이외에 정신적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과 복지제도를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 예전에 비해 타인과의 유대감이 느슨해지고 경쟁과 물질적 성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위기 상황에서 상실과 고립을 심화시킨다. 그 결과 조그만 스트레스에도 우울 증상에 빠져 극단적인 행동과 고통이 만연한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고 함께 어루만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개인과 국가 모두 주변에 상실과 고립으로 우울해하는 이웃이 없는지 살펴보는 여유를 갖자. 그리고 고통을 나누고 필요한 경우 전문적 도움을 받도록 이끌어 주자.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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