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언론史 세로쓰기' / 방짜 / 2009-03-10)
일진회 이야기로 신문들이 '파티'를 벌인 적이 있다. 한 중학교 교사가 ‘나름’ 조사한 일진회 실상을 폭로하면서 학교 폭력 문제가 ‘다시 한 번’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었다. 허나 대부분 신문은 폭로 내용 중 이른바 ‘섹스파티’나 ‘일락(일일 락카페를 일컫는 말)’ 등 극히 일부 사례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폭로 자체에 대한 검증보다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재미’ 보기에만 바빴다. 당시 나는 <시사매거진2580> 팀에서 취재PD로 일하고 있었다. '일락'의 실체를 알아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한 교사의 폭로에 언급됐던 수유리나 돈암동 등 어린 친구들이 많이 몰린다는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 허나 별 소득은 없었다. 4년 전 꼭 이맘때 이야기다.
4년 전 오늘… ‘섹스파티’로 포장된 일진회
와중에 중학교 시절 이른바 ‘일진’이었다는 여학생(당시 고등학교 중퇴)을 알게 됐다. 그는 “자신은 섹스파티 같은 것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었다. “아저씨는 왜 그 선생님 말만 믿느냐”고. 이런 말도 했다. “옛날에도 학교에서 본드 불고 정말 이랬던 사람들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 보고 무조건 일진이라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라고 말이다.
일진회 실상을 폭로했던 그 선생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당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이 폭력과 ‘섹스파티’ 위주로 전달했고, 특히 ‘섹스파티’를 부각시켰다”면서 “일락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섹스머신은) 그중 하나였고, 어쩌다 연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마치 그게 전부인 것처럼 몰고 갔다”고 언론보도를 비판했다.
이는 당시 신문 제목들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1,200명 연합모임…. 락카페서 섹스파티’와 ‘공개성행위… 노예팅… 연합음란파티… 일진회 탈선 갈 데까지 갔다’가 2005년 3월 10일 자 <조선>과 <동아>의 제목이었다. <한겨레> 역시 “일진회 600개교 ‘서울연합’ 락까페 열어 공개섹스 충격”이란 제목으로 ‘동참’했다. 문제의 본질과는 별도로 ‘성(性)’ 적인 요소들만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선정보도, 아니 ‘성(性)적보도’는 <조선>과 <동아>에 의해 다음날도 자행됐다. <조선> 12면에 실린 기사 제목은 ‘성폭행 버젓이 자랑… 시끄러운 노래방서 몰매’였고, <동아>의 그것은 ‘맞고 또 맞고… 진학포기, 선배가 시키면 동침까지’였다. 이 정도면 뭐가 ‘똥’이고 ‘된장’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것 아닐까.
▲ 2009년 3월 10일 18시 20분 현재 조선닷컴 |
가장 키운 <조선>, 친절한(?) 링크 <동아>
그리고 오늘(3월 10일) 알몸 여중생을 폭행하고 해당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10대들이 경찰에게 붙잡혔다는 소식이 들렸다. 심지어 ‘원조교제’를 강요했고, 이를 위해 협박용으로 동영상을 촬영한 데다가, 피해 학생들이 탈출하자 공개했다고 하니, 참으로 충격적인 소식이다.
또 언제나 그렇듯, 이런 충격적인 소식에 누구보다 먼저 정신을 수습해야 할 언론은 오늘도 가장 먼저 냉정함을 잃고 말았다. 대부분 언론이 어떤 동영상인지를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오히려 ‘호기심’만 부채질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18시 20분 현재 각 신문사 홈페이지 편집을 살펴봤다. <한겨레>는 한 줄 뉴스로 처리해 잘 눈에 띄지 않았고, <경향>은 14번째 기사로 위치하고 있었다. <오마이뉴스>가 7번째 위치에 편집, 세 신문 중에는 가장 키웠다. 조중동의 경우는 역시 <조선>이 ‘돋보였다’. 6개 신문 통틀어 가장 크게 키워놨다. ‘발가벗겨 뺨 때리고, 성기 노출까지’란 제목 또한 극도로 자극적이었다.
<동아>는 기사(?) 내용이 사회적 공기라고 하기에는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동아> 홈페이지 ‘일진녀 폭행 동영상은 성매매하려 만든 것’이란 기사 제목을 클릭하면 ‘동아닷컴’의 도깨비뉴스가 기사로 뜬다. ‘아니, <동아> 기자는 뭐 하고 있나’란 생각이 채 끝나기 전에, 눈을 의심케 한 것은 ‘[화보] 충격적인 '일진녀' 가혹행위 더 보기’란 링크였다.
<조선>이나 <동아>나 하는 짓은 ‘변태’
이쯤이면 뉴스가 충격적인지, 편집이 충격적인지 헛갈린다. 뭐가 ‘똥’이고 ‘된장’인지 구별할 수 없었던 2005년 오늘과 판박이다. 당시 일진회 ‘실상’을 폭로했던 교사는 <미디어오늘>을 통해 “(언론이) 암묵적으로 아이들을 쓰레기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들을 선도하면 100% 돌아올 수 있는 개전의 정이 있다. 그런데 현재 언론은 아이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략)…. 문제의 이면에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소홀히 다뤘다. 어른들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결과를 아이들이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동영상 유포 사건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이면’은 왜곡된 성문화와 황금만능주의다. 헌데 <조선>은 그들 스스로 문제의 이면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있다.
참 뻔뻔스럽게 말이다. 위에 언급한 6개 신문사 홈페이지를 한 번 가보시라. <조선>만큼 ‘빤빤하게’ 성인메뉴를 노출한 곳이 있나.
그래놓고 오늘 ‘아이들의 뉴스’를 ‘섹시하게’, 대문짝만 하게 키워놓은 <조선>, ‘친절한 링크’로 피해 학생들의 인권을 다시 한 번 짓밟은 <동아>. 이런 신문들을 뭐라 불러줘야 하나.
완전히 ‘변태신문’들 아닌가.
※ 출처 - http://blog.ohmynews.com/bangzza/26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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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3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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