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유시민 정치역정 중간점검 책 발간...활동 재개 신호탄?

pulmaemi 2009. 3. 10. 14:09

후불제 민주주의’ 출간 “MB정부 역주행, 강건너불 아니야”

 

▲ 9일 출간된 유시민 전 장관의 '후불제 민주주의' 
[데일리서프] 18대 총선 낙선한 후 정치활동을 접고 고향인 대구에서 강연에만 전념했던 유시민 전 장관이 지난 1년여간의 성찰을 담은 ‘후불제 민주주의(돌베개)’를 9일 발간했다.

유 장관이 그동안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느낀 소회를 피력하는 형식의 책이지만, 사실상 자신의 정치역정에 대한 중간 점검 성격을 띠고 있어 책발간을 계기로 적극적인 정치활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대한민국 헌법에 관한 에세이인 동시에 유 전 장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문에 “나는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인생인가” 등 바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에서부터 출발했다.

유 전 장관은 또 현재 자신의 상황을 “철골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도시 한가운데 살면서 정신적·정치적 유배 생활을 하고 있다”고 표현하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문명 역주행’은 그저 구경만 해도 되는 강 건너편의 불이 아니다”고 글을 쓴 배경을 밝혔다.

그는 “나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그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저 조금이라도 덜 불행한 마음으로, 또는 조금이나마 더 행복한 마음으로 내 소망과는 정반대로 가는 세상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쓸 만한 답을 찾은 것 같기는 하다”고 헌법 조문을 독자들에게 내밀었다.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주의’”

유 전 장관은 지난 1년여 이명박 정부와 보수 세력의 행태를 ‘문명의 역주행’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불도저처럼 무작정 밀어붙이는 정치 권력의 야만적 행태”의 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다수 국민의 왜곡된 욕망으로 봤다.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 어느 하나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가치이지만 대한민국은 이 둘 모두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국민도 지도자도 행복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문명 역주행’의 동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더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국민의 열망이 이명박 정부를 만들었으며, 문명의 흐름을 거슬러 가는 이 정부에 여전히 정치적인 동력을 공급하고 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보수 세력에게 권력을 맡겼던 국민들은 당황하고 있지만 아직 판단을 명확하게 바꾸지는 않았다”며 “국민들이 추가적인 연료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고 남아 있는 관성의 힘마저 다 소진한 후에야, 비로소 이명박 정부의 ‘문명 역주행’은 멈춰 서게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문명 역주행’을 멈추게 하는 시민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 유 전 장관은 아름다운 인간상과 세계상을 그리고 있는, 동서고금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선한 의지와 분투 덕분으로 만들어진 헌법 조문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는 “어떤 일이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지를 찾는 데 지침이 되는 안내서는 대한민국 헌법”이라면서 “거기에 행복을 추구하는 인류의 꿈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만인이 따라야 할 사회적 행동의 원칙이 다 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유 전 장관은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선언한 대로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정통성 있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리 국민이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기본 질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다 지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에 넣은 일종의 ‘후불제 헌법’이었고, 그 ‘후불제 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 역시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후불제 민주주의’였다”는 것. 시민혁명을 통해 성취한 것이 아닌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하며 발전해온 ‘후불제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헌법과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자세가 결여된 집단이나 개인이 권력을 장악하는 순간 ‘문명 역주행’이 일어나고 국민들은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 유시민 전 장관  
“헌법이 담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조항 하나하나에는 인류의 문명사가 들어 있다. 자유와 평등, 인권과 평화, 복지와 사회적 안정을 갈망하는 인간의 오랜 꿈을 담은 헌법 조문들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뇌하고 싸우고 노력하고 헌신한 동서고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과 피로 쓰였다. 제헌헌법 덕분에 우리 국민들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얻었다. 양성평등이 대중적 의제가 되기도 전에 여성들이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노동 3권이 주어졌다. 대한민국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주공화국이 된 것이다.”

유 전 장관은 “민주주의는 헌법과 제도만이 아닌 자기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 의식, 헌법과 민주적 절차에 대한 적절한 이해, 공정한 경쟁 규칙의 수립과 경쟁 결과에 대한 승복, 생각이 다른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민주공화국을 만든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긴 세월에 걸쳐 ‘후불제 민주주의’의 비용을 정상해야 할 것이며, 지난 시기 잘해낸 것처럼 미래에도 잘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유 전 장관은 정치권력의 ‘문명 역주행’과 헌법 파괴 행위에 대한 종식을 “짧은 기간에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 국가 전체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상을 입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의 ‘문명 역주행’은 아무리 오래 지속된다고 해도 2013년 2월을 넘기지 못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라면서 “그 다음에 또 무엇이 올 것인가? 그것은 그때 다수 국민이 품게 될 소망이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장관은 “그 소망을 만드는 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슬픔과 노여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몫”이라면서 “각자가 선 자리에서 대한민국 헌법이 부여한 권리와 책임을 일상적으로 실천해나가는 ‘각성한 시민’이 많아질수록, 그 연대를 기반으로 한 시민 행동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질수록, 우리의 민주주의는 더 단단해지고 사회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의 연대만이 악한 시스템을 막을 수 있어”

유 전 장관은 아울러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 때의 경험을 예로 들며 ‘악한 시스템’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선한 사람들의 연대’밖에 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는 1980년대 학내 폭력사태, 유태인 대학살,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의 포로학대 사건, 최근 잇달아 무죄판결을 받은 간첩 관련 사건 등을 언급하며 악한 시스템과 상황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죄의식 없이 악을 저지르게 만드는 상황을 경고했다.

유 전 장관은 특히 “2009년 1월 용산 4지구 재개발 지역에서 벌어진 참극은 선한 사람도 악을 저지르게 만드는 악한 시스템의 부활을 예고했다”며 “사람이 여섯 명이나 죽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들은 ‘강자의 지배’를 ‘정의’와 동일시하고 국민주권 행사를 체제 전복 행위로 간주하는 사악한 체제를 복구하기 위해 경찰력과 최루탄으로 대한민국을 ‘포맷’하려 할 것이다”고 우려했다.

유 전 장관은 “그러나 아무리 나쁜 시스템과 상황 속에서도 선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악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악한 상황을 종식시키려면 선을 행하려는 의지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손잡는 수밖에 없다”고 연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선의 연대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악한 시스템을 무너뜨림으로써 선을 실현하려는 거대한 시민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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