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생활

그 의사, 새 잡으러 남극 갔다?

pulmaemi 2009. 3. 7. 08:48


남극 킹조지 섬에서 극지연구소 김정훈 박사가 연구에 쓰기 위해 새를 생포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새의 깃털과 혈액을 채취한 뒤 다시 놓아준다. 사진 제공 김정훈 박사
새 몸안 바이러스 연구 위해 혈액 - 깃털 등 확보

“소시지로 유인하고 새끼 유괴하고… 요령 생겼죠”


“제 손 좀 보세요. 이게 다 새 잡다가 생긴 상처예요.”

이민구 고려대 의대 교수에게 최근 남극에 다녀온 이야기를 묻자 자신의 손부터 내밀었다. 그의 손엔 곳곳에 상처가 남아 있다. 새의 부리나 발톱에 다친 흔적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1월 11일 남극 킹조지 섬으로 출발해 지난달 27일 귀국했다. 한 달 남짓 그는 남극 하늘 아래서 ‘새’를 잡으러 뛰어다녔다. 목표는 킹조지 섬에 사는 조류를 종류별로 한 마리 이상 생포하는 것. 하지만 ‘눈먼 새’가 흔할 리 없었다. 이때 도움을 준 사람이 남극 새 전문가인 김정훈 극지연구소 박사였다. 김 박사는 2005년부터 해마다 남극을 찾아 새의 종류와 생태를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가 새에 관심을 가진 건 동물에게서 사람으로 옮는 ‘인수공통전염병’ 때문이다. 새는 조류인플루엔자(AI)를 비롯해 다양한 질병의 매개체다. 남극 새들은 일본 남단까지 날아든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식적으로 발견되진 않았지만 동해 인근에서 남극 새를 봤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남극 새의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를 확보하고, 그 위험성을 파악하는 것이 연구의 주제다.

펭귄 등 날지 못하고 행동이 굼뜬 조류는 비교적 잡기 쉽다. 새가 다치지 않도록 다리를 잡아 거꾸로 집어 드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놀란 펭귄이 부리로 허벅지나 배, 가슴팍 등을 사정없이 쪼아대곤 한다. 김 박사는 “지금도 허벅지에 상처가 있다”고 말했다.

도둑갈매기 등 빠르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는 ‘소시지낚시’와 ‘유괴’ 기술을 이용한다. 소시지낚시란 미끼(소시지)를 바닥에 놓아두고 먹는 데 정신이 팔린 새를 가느다란 줄로 낚아채는 방법이다.

유괴는 알이나 새끼를 이용해 새를 잡는 방법이다. 알이나 새끼가 있는 새 둥지를 찾아 주변을 서성대면 어미 새는 ‘새끼를 건드린다’고 생각해 공격해 온다. 이때 손을 뻗어 공중에 있는 새를 움켜잡으면 된다. 새를 잡으면 날개 혈관에서 피를 뽑고, 배 아랫부분에서 깃털을 조금 뽑아낸 뒤 바로 놓아준다.

이 교수는 “이번에 일반 조류 50여 마리와 펭귄 50여 마리 등 100여 개의 샘플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킹조지 섬에 사는 대부분의 새를 잡았지만 가마우지와 제비갈매기는 아쉽게 놓쳤다”면서 “올해는 번식률이 나빠 새를 찾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새의 조직과 혈액, 깃털 등 실험재료를 모두 같은 의대의 송진원 교수에게 보냈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송 교수는 앞으로 남극 새들의 유전자 정보를 조사할 예정이다. 그는 “남극에는 인류가 발견하지 못한 미지의 바이러스가 존재할 가능성도 크다”고 밝혔다.

이 교수와 김 박사, 송 교수는 모두 극지의학연구회 회원이다. 2007년 고려대 의대를 중심으로 극지 의학에 관심이 많은 10여 명이 처음 모임을 만들었다. 지금은 30여 명으로 늘었다. 극지연구소와 양해각서를 맺는 등 위상도 높아졌고 회장인 강윤규 고려대 교수는 1월 세계 남극과학위원회의 한국분과 대표로 내정되기도 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