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환경성질환, 안전

직업병 인정기준 개정…노동 현실 반영 ‘글쎄’

pulmaemi 2013. 3. 8. 09:45

노동계, 정기적 개정 및 실제 노동현장 모습 담아낼 ‘필요’ 지적

 

정부가 직업병 인정기준 개정 관련 근로기준법과 산재보험법 시행령을 입법예고 한 가운데 현실 반영률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동부 개정안이 직업병 산재인정 기준과 절차의 부당성을 해소하고 노동자의 접근성 강화 방안을 일부 반영하기는 했지만 실제 노동현장의 모습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암 유발 원인 물질 및 인정 암 종류 ‘확대’

최근 고용노동부는 ▲직업성 암 발암물질과 표적 암 종류 확대 ▲만성폐쇄성 폐질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퇴행성 근골격계 질환 등 직업병 인정기준 확대와 직업병 산재 신청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한 직업병 인정기준 체계를 개선하기로 했다.

개선 방안을 살펴보면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원인물질은 기존 9종에서 23종으로 확대하고 이와 연관된 직업성 암의 종류도 9종에서 21종으로 늘렸다.

추가된 유해물질에는 ▲엑스선 및 감마선 ▲니켈 화합물 ▲카드뮴 ▲포름알데히드 등이 포함돼 있고 직업성 암은 기존 ▲피부암 ▲폐암 ▲백혈병 등 9종에 ▲난소암 ▲침샘암 ▲식도암 ▲위암 ▲대장암 ▲갑상선암 등을 추가했다.

이 밖에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산업재해 인정기준에 새롭게 추가된다. 만성과로 인정기준도 현행 ‘3개월간 일상적인 업무에 비해 과도한 업무’에서 ‘12주간 주당 평균 60시간(4주간 주당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로 구체화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달 15일에는 ‘업무상 질병판정 절차 및 인정기준’ 토론회가 개최돼 수 년 동안 그 부당성이 지적돼 왔던 ‘뇌심혈관계질환 만성과로 기준’ 고시 개정 등이 논의된 바 있다.

◇ 기준 확대 ‘불구’, 또 산재 불승인 ‘결정’

하지만 확대된 직업병 산재 기준으로도 현장에서 잦은 산재를 경험하는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대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산재 기준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근로자 입증 책임을 덜어주는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아 까다로운 절차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있다.

6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는 지난달 15일 대전지역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열고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출신 노동자인 고 이은주씨의 장의비 및 유족급여청구에 대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이씨는 만 17세인 93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해 6년간 일한 후 24세에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이에 12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지난해 36의 나이로 사망해 이씨의 유가족들은 같은 해 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회사측이 제공한 작업환경측정결과와 물질정보 등에 기대 형식적인 역학조사 결과를 통한 질병판정위원회를 통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반올림의 의견이다.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씨가 담당한 업무인 금선연결(와이어본딩)공정에서 난소암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석면, 탈크, 방사선 등의 유해물질을 취급하지 않아 질병과 업무와의 관련성이 낮다고 분석한 것.

이에 반올림은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대폭 개선했다는 노동부의 말과는 달리 현실은 여전히 산재 불승인 결정이 줄을 잇고 있다”라며 “명백한 증거 없이는 인정해 주기 힘들다는 것은 더 많이 죽고 더 많이 병들은 후에야 사후 약방문을 쓰겠다는 것에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 사회적인 요인 반영 범위 확장 ‘필요’

인정기준이 확대됨에 따라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쉽게 업무상 재해를 신청하고 이를 반영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개선된 업무상질병 인정 기준이 법상의 휴지조각이 아닌 실질적 산재 승인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는 “직업성 암을 유발하는 노동 강도와 노동시간, 직무상 스트레스 등 사회적 요인이 기준에 반영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며 “정기적으로 어떤 직업병의 요인과 물질들이 새로 추가되는 지 등을 통해 새로운 암 종류의 확대를 논의하고 관리할 상설기구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청소노동자나 여성 노동자등 취약노동자를 비롯해 서비스업과 운수업 등에 대한 실태조사 및 연구보고 등의 논의로 정기적 개정을 해야 한다”라며 “제조업이나 대공장 위주의 조사가 아닌 영세 사업장과 취약 업종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인정기준에 반영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산업재해, 노사분쟁구조운동본부는 “위원회의 구성이 의사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어 판정이 의사의 소견위주로 흐르고 있는 실정이다”라며 “산재법의 근간인 근로자의 생존권 보장 정신을 외면하고 단순히 의학적 인과관계만으로 결정을 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상대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던 노동자에 대한 판정에 있어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체적 명시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노동부 측은 앞으로 노사정 논의 결과를 토대로 여러 전문가 의견을 감안해 업무상 질병 인정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을 추진할 것이며 업무상질명의 진단기준 및 인정기준 등의 객관적 기준 정립에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 한 관계자는 “기본적인 방향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돼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 한다”며 “현재 나온 개정안은 지금까지 직업적 유해 환경과 업무상 인과관계에 따른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을 반영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업무상질병 기준을 마련하는데 사회적인 요인을 반영하는 것 역시 단시간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데이터가 축척 돼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직업환경의학회가 지속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통계를 축척하려고 계획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메디컬투데이 김보라 기자(bol82@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