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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뿐인 ‘한센인 특별법’ 법적용 혜택 1%도 안돼

pulmaemi 2009. 2. 27. 08:18

의료지원금·기념사업비 지급 뼈대로 2007년 제정
한센인에 피해입증 요구…일본 보상 절차와 대조

 

한센인 피해의 진상규명과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한센인 특별법’이 제정 취지와 달리 한센인들에게 과도한 피해 입증 책임을 지우는 등 한센인들이 실질적 혜택을 받지 못하게 만들어져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07년 10월 제정된 이 법은 국가가 한센인 피해사건을 조사한 뒤, 피해자로 인정된 사람들에게 의료지원금과 기념사업비를 지급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평생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시달려 온 한센인들의 고통을 국가가 나서 보듬자는 취지다.

 

그러나 25일 인권단체와 한센인들의 말을 모아 보면, 이 법의 적용을 받아 혜택이 예상되는 한센인은 기껏 100여명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 한센인 1만6천여명 가운데 1%도 안되는 숫자다. 법이 피해자 지정 요건을 지나치게 엄격히 정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법은 피해 대상 및 범위를 △국가가 직접 저지른 학살 △강제 단종(정관수술) △부당한 감금·폭행·노동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한센인들이 그동안 사회로부터 받은 피해에 견줘 볼 때 대상과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경남 사천 서포면 한센인 정착마을 영복원의 지명석(73)씨는 1957년 ‘비토리섬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해 위령비라고 세우고 싶은 마음이지만 애만 태우고 있다.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한센인들은 당시 마을 앞의 비토리섬에 고구마를 심으러 갔다가 섬사람들의 습격을 받아 27명이 죽창에 찔려 숨졌다. 어처구니없는 참극인데도 이 사건은 학살의 주체가 ‘국가’가 아닌 ‘주민’들이란 이유로 진상규명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법은 또 한센인들이 겪은 여러 피해에 대한 입증 책임을 한센인들에게 돌리고 있다. 조영선 한센인권연구회 사무국장(변호사)은 “대체로 60~70대 노인들인 한센인들에게 수십년 전에 당한 국가 폭력의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은 너무나 지나친 일”이라고 말했다.

 

이에 견줘 일본 정부는 2006년 애초 자국내 한센인들에게 한정된 피해보상 지급 대상 범위를 1945년 이전 점령지역의 국외 한센인들에게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한센인보상 특별법을 개정했다. 또 한센인들에게 개별 사건에 대한 피해 입증 부담을 지우지 않고, 객관적 사실만 확인되면 보상해 주는 ‘일괄보상’ 방식을 택했다. 이에 따라 일제 강점기에 소록도병원에 격리된 소록도 거주 한센인 124명 등 국내 한센인 피해자 426명은 지난 24일까지 일본 정부로부터 1인당 800만엔(1억2천여만원)씩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국내 최초의 한센인 국회의원인 임두성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20일 공청회를 여는 등 법 개정 작업에 나서고 있다. 그는 “국가가 한센인들에 가한 인권 침해에 포괄적인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영선 사무국장도 “일본처럼 일괄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을 대폭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정대하,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