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외환시장이 루마니아 수준으로 천대받는 진짜 이유는…
(미디어오늘 / 이정환 / 2009-02-23)
동유럽이 연쇄 부도 사태에 직면했다. 워낙 부채비율이 높은데다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이를 상환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환율이 급등하고 외국 자본이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의 우리나라가 환율이 급등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도 단기 외채가 걱정이긴 하지만 국가 부도 직전인 이들 나라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닌데 왜 외환시장은 이렇게 취약한 것일까.
원 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섰다. 20일 환율은 1515.0원까지 치솟았다가 1,506원으로 마무리했다. 지난해 11월24일 1513.0원 이후 최고기록이다. 국제 금융시장 불안과 외국인의 주식 매도,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우려 등으로 달러화 수요가 급증한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GM대우 등 유동성 위기에다 국내 은행들 신용 위험도 확대되고 있어 이대로 가다가는 1,550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어쩌다가 우리나라 외환시장이 루마니아나 체코, 러시아, 헝가리 등과 비슷한 취급을 받게 된 것일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일단은 단기 외채 비중이 높은데다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고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있고 은행들 자금 조달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 모든 걸 감안해도 우리나라 원화가치가 루마니아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 이미징 마켓 환율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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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연구원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 단기외채가 1,894억 달러로 2005년 말 659억 달러에서 3년 만에 3배로 불어났다"고 지적한다. 전 연구원은 "동유럽 위기가 현실화돼서 유럽 은행들이 손실을 보게 되면 다른 데서 돈을 빼서 메워야 될 텐데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율 추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외국인 채권 투자 가운데 유럽연합 자금은 5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대비 단기외채 비중(왼쪽)과 단기외채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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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외채 비중이 높다는 건 장기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데 결국 3개월마다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일부에서는 외환보유액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한다. 단기외채 대비 외환보유액 비중이 2004년 말에는 353%였는데 이게 지난해 9월 말에는 126%까지 떨어졌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본다면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고 해외 차입이 완전히 막힐 경우 1년 정도밖에 버티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 이머징 마켓 화폐 절상률 비교. 한국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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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투자증권 김종수 연구원은 "국내 은행이 상환해야 할 단기외채 규모가 크지 않고 무역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는 등 외환시장 수급여건이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3~4월에 외국인 주식배당 송금이 몰려 있고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이탈이 계속될 경우 환율의 고공행진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금융 불안이 완화되기까지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3월 위기설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하나대투증권 소재용 연구원은 "3월 위기설은 상당부분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 "국내 은행들 외화차입의 3월 만기도래분은 104억 달러, 이 가운데 엔화 차입금도 60억 달러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데다 국고채 만기 도래분도 3.8조 원으로 지난해 9월의 20% 수준으로 급격한 혼란이 올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정리하면 동유럽의 외환위기가 우리나라에도 직격탄이 될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나라까지 극단적인 외환위기로 치닫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이야기다. 일부 언론이 3월 위기설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지만 외환시장 불안이 곧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과도한 수출 의존도와 단기외채 비중인데 이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대외변수가 출렁거릴 때마다 위기설이 다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 이머징 마켓 펀더멘털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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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부분은 정부의 대응과 언론의 반응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태국 푸켓 라구나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최근 국내 환율 불안에 대해 "환율은 기본적으로 어느 나라나 경제 기초 펀더멘탈과 시장 수급 및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면서 "한쪽으로 쏠림이 심하거나 투기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는 본다면 좌시할 수 없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 매일경제 2월23일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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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장구라도 치듯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을 풀어서라도 시장개입에 나설 수 있다"고 분위기를 잡았다. 환율 주권론을 강조하면서 노골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물의를 일으켰던 강만수 전 장관과 달리 윤 장관은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외환시장 움직임을 관망해 왔는데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자 결국 시장 개입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외환보유액 2천억 달러 붕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언론의 반응은 대체로 우호적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필요할 때는 외환보유액을 동원해서라도 환율 안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거들었고 세계일보도 "외환보유액 2천억 달러를 마지노선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면서 "환투기 세력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일경제도 "2천억 달러를 금고 안에 모셔놓을 필요가 없다"면서 "때를 놓치지 말고 효과적인 대응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일단 정부가 개입을 한다고 하더라도 펀더멘털이 바뀌지 않는 이상 환율을 크게 끌어내리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있고 외환보유액이 2천억 달러라고 하지만 당장 꺼내쓸 수 있는 실탄은 그리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섣불리 외환보유액을 소진했다가는 진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자칫 환율은 못 잡고 외환보유액만 축낸 강만수 전 장관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 연초 대비 환율 절하율. 한국투자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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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환율을 마냥 시장에 맡겨두기보다는 적절한 수준에서 개입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최근 환율 급등을 투기세력 탓으로 돌리는 얕은 문제 인식과 인위적으로 환율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무모함, 반복되는 위기설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는 무능함에 대해 언론이 비판은커녕 맞장구를 치고 있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3월 위기설 논쟁을 넘어 우리 경제가 왜 유독 더 취약한가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제기가 아쉬운 시점이다.
ⓒ 이정환 / 기자/seoprise.com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7494)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0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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