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우울증, 여성 우울증 비해 자살 위험성 ‘4배 높아’
[메디컬투데이 남연희 기자]
“내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껴지곤 한다”
직장인 이병준(가명·49)씨는 얼마 전 명예 퇴직자 명단이 나와 불안한 마음에 불면증도 겪으며 매일같이 받는 스트레스로 삶의 희망까지 잃을 정도로 무기력해 졌다고 한다. 그는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버릇처럼 마시던 술이 이제는 일과가 돼 버렸다고.
이병준 씨는 “여기저기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어디 풀거나 하소연 할 때도 없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그냥 마음속으로 삭히기 일쑤다. 어느 날 내 자신이 한심하면서 ‘세상에서 내가 무슨 존재인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한숨지으며 말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이 ‘가을을 탄다’라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계절을 막론하고 사회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자신도 모르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30~40대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 40세 이상의 중년 우울증이 무려 ‘절반 이상’
‘마음의 병’ 우울증은 일반적으로 성인 10명 중 1명이 일생동안 한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할 정도로 흔한 질병이다. 우울증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질병이면서도, 우울증 환자의 약 15%가 자살한다고 알려져 있는 만큼 위험한 질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를 괴롭히는 세계 3대 질환’의 하나로 우울증을 선정, 2020년이 되면 우울증이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질환 중 1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울증 진료인원은 2005년 43만5000명에서 2009년 50만8000명으로 약 7만3000명이 증가했고 연평균 약 1만8000명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우울증은 40세 이상의 중년 및 고령층에서 주로 나타났다. 2009년을 기준으로 50~59세가 19.6%로 가장 높았으며 ▲60~69세 18.1% ▲40~49세가 17.6%로, 40세 이상의 연령구간이 전체의 55.3%를 차지했다.
여성들은 임신, 분만, 폐경기를 겪는 동안 호르몬 변화로 인해 더 쉽게 우울증에 걸리는 반면 남성들은 명예퇴직, 감원 등 사회적 압박으로 우울증이 오는 경우가 많은데 자존심 때문에 치료받을 시기를 놓치거나 술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 승진-명퇴에 대한 불안감 등 삶의 회의와 무가치함으로 ‘남성 우울증 급증’
우리 사회에서 남성은 나약하면 안 된다는 통념이 있어 30~40대의 남성의 우울증은 은밀히 감추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거나 실제로 자신의 증세를 인식하더라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노르에피에프린이나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제 기능을 못하게 돼 발생하는 것으로 남성의 우울증은 삶에 대한 회의나 자신에 대한 무가치감,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부정적 생각, 혹은 외부 대상에게 표출하지 못하는 분노를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나 승진․명퇴에 대한 불안감 등도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외에도 성생활에서 장애가 오거나 성욕이 떨어지면서 남성으로서의 자신감도 결여되는 갱년기가 겹치게 되면 더욱 우울증이 심각하게 나타난다. 밤에는 잠들기 어렵거나 새벽에 깨면 다시 잠이 안 들어 흔히 밤을 꼬박 지새우는 수면장애가 있고 식욕이 떨어져 체중이 5kg이상 감소하기도 한다.
우울증이 심화되면 정상인에 비해 심근경색의 위험이 5배 이상 높으며, 사망률을 살펴봤을 때에도 정상인 보다 3배 이상 높다.
고려대학교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우울증 자체만으로도 위험성은 심각하다. 초조, 후회, 죄책감, 절망감, 우울한 망상은 심한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우울증 치료는 무엇보다 자살 예방을 위한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실제로도 우울증 환자 3명 가운데 2명은 자살을 생각하고 그 중 10∼15%는 자살을 시도한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이어 이 교수는 “그중에서도 남성 우울증은 여성 우울증에 비해 자살 위험성이 무려 4배 높다. 자살 시도를 많이 하는 것은 여성 환자이나, 실제 자살에 이르는 경우는 남자가 훨씬 많기 때문에 남성 우울증은 더욱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 진심으로 환자 이해하고 인정하며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물을 항우울제라고 하는데, 항우울제는 기분을 호전시키고 수면을 개선시키면서도 의존성이나 중독성이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는 항우울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효과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우울증 광치료는 환자 가운데 계절성 우울증이 있거나 밤낮이 바뀐 환자들에게 특히 도움이 많이 되는 치료법이다. 통상적인 실내조명보다 5~10배 정도 강한 빛을 발생하는 라이트 박스를 보는 방법을 사용한다. 빛이 눈을 통해 들어와서 수면-각성 주기를 바꾸어 주고 멜라토닌의 대사에 영향을 주어 우울증을 호전시키게 된다.
우울증은 약물치료와 정신과 치료가 병행돼 이루어져야 한다. 약물치료는 신속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으나, 일상적인 문제나 부담감에 대해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민수 교수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편견으로 선뜻 치료에 나선다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 치료를 통해 문제해결 방법이나 스트레스 해소 방법, 대인 관계 유지 방법 등에 대해 도움을 얻음으로써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남성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환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환자의 치료효과를 높이는 것은 물론 주변인 모두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메디컬투데이 남연희 기자(ralph0407@md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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