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을 시인한 김석동, 이제 정치권을 압박할 때다
미래경영연구소
소장 황 장 수
1. 어제 대선주자 『대공황, 컨센서스가 우선이다』 라는 글을 쓰자마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사실상 대공황임을 시인한 솔직하고도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이 보도되었다.
그는 어제 금융위 간부회의에서 『유럽 사태는 자본주의 역사 흐름 속에서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또 『그 동안 위기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 왔지만, 이제 실천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국내 금융 분야의 최고의사 결정기구이다. 금융위는 금융정책을 비롯해 관련한 모든 법률 제정 및 개정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실상 정부 고위관료 중 처음으로 대공황 사태를 시인했다. 그것도 국내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이라는 막중한 위치에서 그의 한 마디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심각함에도… 또 그는 『2008년 리먼사태는 미국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위기에 대처했지만 유럽은 국가간 이해가 다르고 정치적 리더십이 작동하지 않아 위기의 본질에 대해 정확한 진단이 되고 있지 않아 해법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고 현 경제위기의 본질이 정치적 리더십 부재이고 향후의 사태 전개가 부정적 일 것임을 단언했다.
2. 또 그는 『군인의 훈련이 실전에 대비해 준비하는 것처럼 이제 금융당국이 훈련이나 경계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전략 신속한 작전 수행능력이 필요한 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페인까지 번지면 재정위기가 은행위기로 확산되어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예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스페인의 상황을 매우 우려했다. 나아가 『우리 자본 시장의 대외 개방도가 높아 외부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해 결국 우리의 경제금융 전반 상황에 과도한 시장 충격을 줄 수 있다며 외화유출 가능성과 투기성이 과도한 파생상품』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과 작년 이후 내가 해온 대공황에 대한 발언이 매우 흡사하다. 정치 리더십의 위기, 유로존 통합의 위기, 우리나라 자본 시장 개방과 투기자본 유입에 의한 변동성 강화의 우려, 궁극적인 대공황으로 전환, 스페인의 결정타, 1929년 이후 두번째 대공황으로 기록 등 결국 그와 나는 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작년 이후 대공황에 대해 언급한 글들은 내 블로그에 모두 올려 놓았으니 참고하시길)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용기 있게 이런 발언을 한 배경에는 임기 말 권력 재창출과 사적인 마무리에 여념이 없는 MB와 대선에 눈이 멀어 『대공황의 위기』를 모른 채 이념 논쟁에 몰두하는 대선주자들과 여야 정치인에 대한 솔직한 경고인 것이다.
그간 내가 듣기에는 MB 행정부 내 일부 양심적인 경제관료들은 현재의 세계 경제 상황이 사실상 역대 겪어보지 못한 제2대공황 수준임을 자기들끼리 실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2008년 금융위기의 가장 신속한 극복(?)을 업적으로 삼는 가치와 그 핵심 측근들의 이세에 눌려 이를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아왔다. 그 과정에서 헤지펀드, 투자은행 등 투기 금융자본의 유입을 가속화시키는 『자본산업법』개정이 추진되는 등 세계 경제의 대공황 추세와는 180° 역행하는 금융경제 정책이 가속화되었다. 대공황 위기의 퍼펙트 스톰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데 뚝을 쌓기는커녕 뚝을 허물러 온 것이 한국 경제 금융정책이었다. 김석동은 그의 관직과 명예를 걸고 상황을 솔직히 고백한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공황임을 시인하고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때다.
3. 문제는 정치권이다.
지난 총선 전 여야 정치권은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앞다퉈 언급해 왔지만 그때 여야가 내놓은 것은 평상시의 상황에서 복지와 경제규제, 감독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곳간 퍼주기』식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대공황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 상황은 그러한 『곳간 퍼주기』 수준이 아니라 아예 곳간이 쓰나미에 휩쓸려가 퍼줄 것도 없는 위기가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나는 작년부터 가끔 자문을 해오는 여야 정치인에 『지금의 세계 경제상황은 대공황이기에 이에 걸맞은 국가적 전략과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 느낀 반응은 『무슨 음모론자나 하늘이 무너질까 우려하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은 유사이래 『언제 한국경제가 위기가 아니라고 한 적이 있느냐?』는 식으로 경제는 항상 어렵다고 했지만 우리는 다 극복했다고 쉽게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97년 외환위기는 극복한 것이 아니라 다수 중산층의 몰락과 비 정규직 양산, 양극화 및 투기로의 집중과 산업 공동화의 시작이었다. 또 2008년 금융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대공황으로 반전하여 우리의 코 앞까지 다가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고용구조, 낮아진 GDP 성장률, 급격히 둔화된 수출현황, 줄고 있는 소비 및 투자현황, 부동산 몰락과 하우스푸어, 금융투기의 파산우려 등은 이 모든 『아마게돈』적 종말상황의 징후일 수 있다.
대공황도 1929년 곧바로 터진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소급해 1929년을 잡은 것이지 1929년 전후 3~4년 『그 전조』가 나타나는 상황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도 시초는 1989년으로 잡지만 본격 시작은 1991년으로 잡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2012년 지금은 2008년 이후 4년간이 훗날 대공황의 시작부분으로 역사에 기록될 시점인 것이다.
4. 산업과 자본, 금융의 구조가 개방되고 고도화 될수록 공황의 충격과 여파는 『승수효과』로 급격히 늘어난다.
1929년 당시는 산업화 수준과 세계 무역개방도 등이 현재보다 현저히 낮았고 고용구조 또한 지금과 달랐다. 당시는 통신, 운송이 낙후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금융부문이 지극히 시초적인 『1국 체적 내의 금융시스템』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발단된 ICT 산업과 더불어 bit로 연결된 세계 network 금융장이 실물 1원을 금융 800원 수준으로 확장 파생시켜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중계하고 투자, 투기, 대출하는 시대로 발전했다. 따라서 전세계 금융이 물리고 물리며 서로 긴밀히 연계되어 스페인 같은 유로존 4위 수준의 중급국가 하나만 금융이 디폴트(채무지급불능) 상태에 빠져도 실시간으로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 금융 쇼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2008년 미국 리먼 브라더스 사태 당시 미국 투자은행 몇개의 붕괴 위기가 곧바로 미국 내 전체 주요 금융기관 및 전세계 금융기관의 위기로 전환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여기에 현재 전세계 산업, IT부터 전통 굴뚝산업가지 대부분의 산업은 세계화와 무역개방에 따른 cost down 전략(비용절감)전략에 따라 전세계 각국에 분산 재배치되었다. 따라서 2012년 현재의 금융과 실물의 세계화 수준은 1929년 당시 보다는 수십만 배 심화되어 있는 상황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듯이 지금의 대공황은 당연히 전세계 각국에 비치는 충격이나 그 기간이 길 수 밖에 없다. 지진으로 보면 1929년이 진도 6이라면 지금은 진도 9 수준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대공황은 그 기간이 15년이 걸릴지 그 이상이 걸릴지 알 수 없으며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큰 충격을 줄 수 밖에 없다.
5. 이미 세계 각국은 plan B(위기 대응전략)을 가동하고 유럽자산(유로화나 유로화로 표시된 채권, 유럽은행과의 거래) 처분에 나서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 삼성 또한 글로벌 위기대응에 나섰으며 선박, 무선 통신기기, LCD, 가전, 전자, 자동차 등 국내 주력산업부문에서 수출이나 해외 판매가 급락하고 있다.
그나마 선전해오는 중국, 브라질, 인도 등 브릭스의 성장엔진 마저 급격히 둔화되며 이들 나라 증시도 급락하고 있다. 오늘 미국의 제3차 양적 완화 기대나 독일의 유로본드 채권 도입 및 유럽은행 연합체 구성동의 등이 나오며 증시가 반등하고 있으나 이 또한 괴멸적 상황을 막기 위한 돈 들어가지 않는 『립 서비스』 임을 알아야 한다. 경제는 『야성적 충동』에 의한 심리효과가 결국 bank run 이나 『주식 무작정 매도』로 이어지기에 지금 세계 주요국 정치 주역들도 돈 안 드는 『심리 치료테라피』에 열중하고 있다.
문제는 입으로 말한다고 해서 실물경제가, 금융이 잠시 진정은 된다 할지라도 근원적 문제 해결이 불가하다는데 있다. 지금 세계 경제는 독일 총리, 미국 FRB 등의 입만 쳐다보고 『하루는 맑았다 하루는 개었다』 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이 남아 있는 한 말로는 단기 투기꾼만 좋은 일 시키지 해결은 안되는 법이며 위기를 떠 넘기며 지연시켜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심각한 점은 위기가 엄연히 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MB 정권이 선제적 대처를 하지 못하고 『본질적 위기는 아니다. 결국 그리스, 스페인도 타결될 것이다』라고 『자기예언적 기대실현』만 언급해 왔다는 것이다. 태풍의 눈 속에 들어가 있을 때 잠깐 청명한 순간이 있듯이 자기 오신에 급급한 외국지도자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 할 것이 아니라 김석동 위원장의 언급대로 퍼펙트 스톰의 실전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그의 말처럼 연습 잘했다고 실전에 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6. 한국의 문제는 정치적 리더십이 그리스에 못지않게 취약하다는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나 여야 지도자나 정치권은 날만 새면 얄팍한 꼼수와 술수, 포퓰리즘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대중의 수준 또한 냄비 끓고 식듯, 변덕이 죽 끓듯 해, 정치인에 결코 못지않게 선동에 취약하고 예측불허다. 균형을 이 사이에서 잡아 줘야 할 지식인은 모두 얄팍하게 이쪽 저쪽에 줄을 서거나 돈 벌고 출세하기에 급급하다. 정치권과 대중과 지식인의 수준이 이러하기에 대공황 위기를 언급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은 임진왜란 직전 일본 침입을 주장하던 것만큼 황당하게 강 건너 불처럼 치부된다.
당장 종북주사나 정치권 비리를 폭로하는 것에는 수만, 수십만 명이 열렬히 환호하고 패거리를 나눠 열광한다. 정치인 스캔들이나 악취 나는 일에는 3류 주간지 구독자처럼 모두가 팬클럽까지 만들어 몰두한다. 그래서 비난 조롱하는 것까지 『산업화』되어 있지만 대공황 경제 쓰나미 위기가 온다고 외치는 일은 고독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대중과 정치인의 반응은 『온다고 치고 그러면 어쩌라고?』 수준인 것이다. 그래서 연말 대선을 앞두고 곳간 헐어 퍼 주겠다는 자기 돈 안 드는 일은 앞다퉈 말하지만 『대공황』 위기가 오고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안 한다. 사실 대공황은 정치인에게는 별 걱정이 없다. 그들은 대체로 수십억 부자이고 사회적 지위도 높아 공황이 와도 굶어 죽거나 어려움을 겪을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오히려 공황이 오면 이는 대중선동의 기회로 삼아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좋은 기회로 생각할 것이다.
7. 문제는 중산층, 서민, 사회적 약자 계층이 대공황에 인간적 존엄성과 생존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 『분노의 포도』, 『신데렐라 맨』,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 같은 대공황 시기 삶의 어려움을 다룬 미국영화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영화에서 서민과 중산층이 몰락하여 무료 배급소에 줄을 서고 연료가 부족해 추위에 떨고, 일자리를 구하러 떠돌고,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은 그나마 루스벨트라는 걸출한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대통령이 있어 위기를 넘겨갔고 결국 히틀러가 2차 대전을 일으킨 덕에 5000만 명은 죽었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살게 되었다(일각에서 2차대전이 아니라 루스벨트 뉴딜정책으로 이미 1936년경 대공황이 극복되었다고 말하지만 엄격히 말해 2차대전이 수요를 창출해 대공황을 극복시켰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는 루스벨트 같은 영웅은 고사하고 제 상식을 가진 정치 지도자도 찾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대공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문제는 대중들이 나서 대선의 이슈를 『대공황 극복을 위한 국가정책의 근본적 전환』 즉, 『대공황 컨센서스』를 강요하고 압박하는 것이다. 주요 대선 주자들이 『상식, 비상식, 대선 출마결단 임박』 같은 허튼 소리나 『종북주사 척결』 같은 철 지난 소리 못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가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정치나 대선 주자의 수준 또한 국민들이 정하는 것 아닌가? 대공황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경제사, 세계 정치사, 경제 변동론, 사회학 등 많은 심도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심지어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도 대강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쓰잘 떼 없는 잡무도 바쁜 고귀한 분들이 이런 공부할 시간은 없다. 그 시간에 나가서 몇 마디만 선동하면 국민들 다수가 열광하는데 누가 비관적이고 음울한 전망을 앞서 말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겠는가? (최근 한 TV 드라마는 정치인의 선동의 진수가 어디까지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도, 대공황 대비가 제대로 될지 비관적 전망을,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거둘 수가 없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이르기에, 결국 대공황의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중산층, 서민, 사회적 약자가 나서 정치인을 압박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프레메테우스나 시지프스가 불가능에 도전했듯이 『대공황』에 대한 대처를 위해 우리 또한 끊임없이 정치를 압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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