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사회

20C초 유럽의 빈곤국 스웨덴

pulmaemi 2011. 1. 24. 06:58

가난했던 스웨덴이 보편적복지후 잘사는 선진국으로 진입.....‘더 걷고 더 나누자’…복지천국의 탄생



[한겨레] 20C초 유럽의 빈곤국 스웨덴


보편복지 도입 뒤 일류국가로 .....발전의 원동력은 사회적 평등......


정치리더십의 '의식개혁' 필요


■ 복지국가 스웨덴
신필균 지음/ 후마니타스·1만7000원


 

'스웨덴 복지모델'에 관심들이 많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특히 정치권에서 복지논쟁이 점입가경이고, 본의 아니게 스웨덴이 그 거친 싸움마당 한복판에 끌려나와 있는 형국이다. 스웨덴식 보편 복지가 과연 해법일까? 아니면 '세금폭탄'이니 '포퓰리즘' 망국론까지 들먹이는 쪽의 주장이 옳은 걸까? 아닌 게 아니라 스웨덴은 국민 담세율이 47.8%(2007년)나 된다. 소득세의 경우 최고한계세율이 59.09%(한국은 35%)에 이르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도 25%(한국 10%)나 되고, 연소득 7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적용하는 최고한계세율은 무려 63%다.

1970년대 초 20대 중반에 스웨덴으로 유학가서 20여년을 그곳에 살면서 연구자와 현지 공무원 등의 자격으로 스웨덴 복지를 장기간 체험한 신필균(64)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장의 < 복지국가 스웨덴 > 은 그럼에도 스웨덴식 복지가 해법이라고 분명히 얘기한다. 스웨덴이 잘살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를 실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보편적 복지를 실시했기 때문에 잘살게 됐다는 게 신 이사장 생각이다. 보편복지를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쪽이야말로 망국적이라는 얘기가 되나. 세금을 올려도 다수가 낸 것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면 망국이 아니라 흥국 아닌가.

19세기 중반 이후 1913년 기초연금제도가 도입되기까지의 스웨덴은 100만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야 했던 유럽 빈국이었다. 한국의 196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가진 자들의 횡포에 저항한 거센 노동운동을 배경으로 가장 먼저 그리고 전면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보편 복지가 오늘날 스웨덴 성공의 토대가 됐다고 < 복지국가 스웨덴 > 은 얘기한다. 갖은 난관을 돌파하면서 성공으로 가는 과정과 성과, 역사적·사회적 배경, 폭력적 혁명의 길을 버리고 타협과 공감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끌어내는 '수정주의' 노선을 통해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착실하게 변화를 주도해온 사회민주주의 세력의 전략과 철학, 가치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스웨덴식 보편복지는 예컨대 이런 것이다. 18살까지의 아동·청소년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 기초교육과정에는 점수나 등급에 의한 성적평가가 아예 없다. 성적평가는 좋음, 더 좋음, 아주 좋음 세 종류뿐이고 정해진 과목의 90% 이상에서 '좋음' 이상만 받으면 누구나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다. 그런데도 고교 졸업생 중 대학에 진학하는 건 43% 정도밖에 안 된다. 가지 않아도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 공부하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사회평생교육 시설들도 모두 무료다.

육아 지원도 탁월하다. 출산 6개월 뒤 또는 부모 출산휴가(480일) 뒤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각종 유치원과 탁아소 등 다양한 아동센터들이 존재한다. 임신휴가 급여로 월평균 소득의 80%를 최대 50일까지 받을 수 있다. 출산휴가는 480일이고 부와 모 양쪽이 나눠서 쓸 수 있되 어느 한쪽도 60일 미만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역시 평균 소득의 80%를 받는다. 자녀가 아파도 부모가 연간 120일까지(60일까지만 간병 급여 지급) 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다. 16살까지 아동수당도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관념이 일반화돼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공감대 속에서 그런 사고훈련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남을 딛고 서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교육 전쟁을 벌일 까닭이 없다. 유럽에 드문 속도로 스웨덴 인구가 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65살 이후부터 누구나 보장연금을 받는다. 고용과 소득수준에 비례한 부가연금제도도 마련돼 있는데, 급여액은 소득의 60% 수준이다. 아파서 쉬면 병가급여로 소득의 80%를 받는데, 산업재해를 빼고 최장 550일까지 병가를 받을 수 있고 1년을 넘기면 소득의 75%로 줄어든다. 개인이 부담하는 병원비와 약값은 아무리 큰 수술을 받더라도 연간 45만원 수준을 넘지 않게 돼 있다.

실업급여도 이전 소득의 80%를 14개월간 받을 수 있고 18살 아래 자녀가 있으면 그 기간이 150일 더 늘어난다. 실업자 채용 회사엔 정부가 6개월간 임금의 50~65%를, 장기실업 고령자나 이민자에겐 12개월간 임금 총액의 최대 75%까지 지원한다. 18살이 되면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는데, 원룸 학생아파트, 결혼이나 동거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생가족아파트, 노인들이나 장애인을 위한 특수아파트, 호텔형아파트, 맞춤형아파트 등이 즐비하고 임대료도 건물 소유자와 세입자조합 간에 단체협상을 통해 정하게 돼 있다.

19세기 말의 가난에 허덕이던 농업국가 스웨덴을 비교적 단기간에 일류 산업국가로 바꾼 건 절차적 민주주의 쟁취뿐만 아니라 이런 보편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이룬 덕이었다. < 복지국가 스웨덴 > 은 어려운 시절 나라의 기틀을 바꾸려는 웅대한 장기 비전을 갖고 역경을 헤쳐온 사민주의세력의 혜안과 철학, 가치관, 그리고 토론과 협의를 통해 폭넓은 참여·존중·합의를 끌어낸 그들의 정치적 리더십에 더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1928년 국회 연설에서 페르 알빈 한손 사민당 의원은 스웨덴 복지국가의 이념이자 그 별칭이 된 유명한 '국민의 집'을 정식화한다. 그 연설에서 한손이 묘사한 당시 스웨덴 상황은 지금의 한국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의 스웨덴은 유감스럽게도 좋은 집이 못 된다. 정치적으로는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면서도 사회는 계급적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국가경제는 소수 특권층에 의해 좌우된다. …분에 넘치게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빵 한쪽을 구걸하며 끼니를 해결하고, 실직 상태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의 스웨덴 사회는 사회 구성원 간의 진정한 '평등'을 요구받고 있다. 이런 사회적 격차를 해소하고 좋은 '국민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사회적 돌봄정책(사회복지정책)과 경제적 균등정책이 요구된다. 또한 기업 경영에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정당한 지분이 지불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정치적 수단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 '국민의 집' 비전이 4년 뒤인 1932년 사민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었고 이후 44년간 이 체제가 이어지면서 스웨덴식 복지국가 모델은 꽃피었다. 1976년 이후 사민당과 보수당이 번갈아 집권하는 시대가 됐고 1990년대엔 신자유주의를 의식한 경쟁요소 도입 등이 시도됐다. 그럼에도 보편복지의 근간은 확고부동하다. 보수당조차 집권을 위해선 '국민의 집' 계승을 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행복한 삶의 확대, 소득 수준과 무관"
신필균 사회투자재단 이사장


유럽식 복지정책을 펴기엔 한국이란 나라의 소득수준이나 국가발전 정도가 아직 멀었다는 주장들이 있다고 하자,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밝히는 게 이 책을 쓴 목적 가운데 하나"라고 신필균 이사장은 되받았다. 스웨덴이 20세기 초 보편복지를 시작한 건 "소득 수준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 각자의 그 능력을 최대화한 나라가 스웨덴이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보편적 복지 덕이었다. 소득 수준이 높아서 보편복지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보편복지를 했기에 그게 가능했다. 스웨덴이 많지 않은 인구에도 산업생산 능력뿐만 아니라 문화와 스포츠, 과학, 문학에서까지 탁월한 성취를 이뤄낼 수 있었던 건 국민 각자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게 만든 복지제도 덕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많은 이가 그걸 거꾸로 생각하고 있다."

스웨덴은 처음부터 보편복지를 국가운영 방침으로 채용했다. "20세기 초까지 지독하게 가난했던 스웨덴은 빈곤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다 가장 심각한 곳이 어딘지 조사해봤다. 그 결과 경제적 능력도 없고 거처할 집도 없고 육체적으로도 무능력한 노인층과 어린 자식 딸린 홀어머니 등이라는 걸 확인했다. 특히 노인층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봤고 그게 1913년 최초의 보편주의 기초연금 도입으로 귀결됐다. 누구한테는 주고 누구는 안 주거나 하면 갈등이 일어난다. 스웨덴 누구에게나 다른 소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생계비를 지급했다. 이건 서유럽 나라들도 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 지원금이 월 8만원쯤 되나? 그걸로 생활을 할 수 있나?" 신 이사장은 당장의 대책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하면서 문화적 접촉을 하며 사회과정에 참여하는 능력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남의 얘기를 듣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조리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교육에서 나온다. "아는 게 힘"이라는 스웨덴 사민당의 캐치프레이즈가 거기서 나왔고 그래서 공립이든 사립이든 일찍부터 완전 무상교육 쪽으로 갔으며, 서유럽도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고 해서 받는 쪽이 주눅들게 해선 안 되며 모두에게 꼭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선별·시혜적 복지론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했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스웨덴식 사고가 사회구성원 경쟁력 차원에서도 우월하다고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은 자신들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현 체제의 모순을 은폐하고 정당화해서 결국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자들이 자신의 비리의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남들은 더 하지 않느냐고 얘기할 때 제일 화가 난다"고 했다. 거기엔 아무런 비전도 없다.

그는 또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은 참여, 존중, 연대다. 복지의 최고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다. 양쪽 모두에 연대가 들어 있지 않으냐" 며 "모든 사회(공동체) 구성원이 사회·경제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사회복지정책, 특히 보편적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 비록 보통선거권과 같은 민주적 제도가 확립됐다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결국 소수 엘리트가 모든 걸 좌우하는 과두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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