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 사회

무방비 요양시설에 인면수심 자식까지, 두번 우는 노인들

pulmaemi 2010. 11. 1. 11:13
요양원은 고객 잃기 싫고, 자식들은 부모 모시기 싫어
 
[메디컬투데이 허지혜 기자] “노인의 건강이 나아질까봐 요양원은 입원 노인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부모 부양을 기피하는 자식들까지 치료를 바라지 않고 있다”

이는 어느 요양보호사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요양원의 현실이다. 이렇듯 요양원의 무관심과 자식들의 불효에 두 번 우는 노인들을 구제할 대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제보자를 자처한 요양보호사 P씨는 경기도 평택시의 R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다가 ‘세상이 말세’라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고 토로했다.

P씨는 “입원 노인의 건강이 호전돼 시설을 나갈까봐 원장은 치료를 차일피일 미룬다”며 “심지어는 촉탁 의사에게 ‘그냥 대충하라’는 주문까지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장기요양등급 규정상 노인의 건강 상태가 3등급 이하로 판정되면 요양원 측에서는 그만큼 고객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P씨의 말에 따르면 퇴행성관절염과 요통, 당뇨합병증 등으로 고생하는 차 할머니(81)의 경우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돼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입원 노인을 괴롭히는 것은 그의 건강을 원치 않는 인면수심의 자식들도 있었다. 차 할머니에게는 5남3녀의 자녀가 있었지만 할머니의 건강이 회복돼 집에서 모시길 원하는 자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앞서 P씨를 비롯한 R요양원의 요양보호사들은 차 할머니의 자녀에게 연락해 모친을 병원에 입원시키길 여러 번 권해봤지만 번번이 “내 부모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무책임한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게다가 R요양원 운영자의 대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운영자는 “입원 노인들이 본래 지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일이 치료를 해주기는 쉽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이유로 요양시설 노인들의 건강 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 요양시설의 입소 노인들이 4명 중 1명꼴로 뇌졸중과 당뇨병에 시달린다는 조사결과가 나온 바 있다.

관동대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김상환·황희진 교수가 2008년부터 올해 3월까지 인천 소재 요양시설 입소한 노인 1119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에게 고혈압이 58.6%, 치매가 50.6%, 뇌졸중이 28.7%, 당뇨병이 24.2% 발견됐다. 이 수치는 일반인의 유병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관동대명지병원 김상환 교수는 “시설 노인들은 치매나 뇌졸중을 갖고 입소하는 경우가 많아 일반 노인에 비해 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요양시설의 형식적인 진료 행위로 노인들의 건강을 돌보기 힘들다”며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논의 중인 ‘노인주치의’ 제도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요양시설에 관한 규정을 개선하고 인권 교육을 실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주장했다.

복지부 요양보험운영과 관계자는 “상대평가였던 요양시설 평가제가 내년부터는 절대평가로 전환된다”며 “현재 노인주치의 제도도 검토 중에 있고 인권위원회와 합동으로 시설장과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요양보호사 P씨는 여전히 정부의 대책이 한참 부족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P씨는 “지금도 요양원에선 감기에 걸렸던 노인들 대부분이 증상이 악화돼 폐렴까지 앓고 있다”며 “보다 현실적이고 강도 높은 관리 감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성토했다.  

메디컬투데이 허지혜 기자(
jihe9378@md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