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사회

미네르바, 고마워요!

pulmaemi 2009. 1. 19. 08:04

(블로그 '조카와 함께 춤을' / 조은미 / 2009-01-16)


내가 처음 미네르바를 만난 덴 카페였다. 누가 그의 글을 퍼 날랐다. 그리고 아고라에서 그를 봤다. 언제인진 모르겠다. 직업병도 있지만, 호기심도 병인지라 인터넷계를 이리저리 헤매다 그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쓴 글을 봤다. 부엉이 농장을 하는지, 자신이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이가 쓴 글이었다. 그가 말했다. 현금을 확보하라. 위기가 온다. 펀드 쪽박 찬다. 집값 반 토막 난다.

 

그 말, 처음엔 믿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집값이 떨어지는 일은, 날아가던 새가 날개에 쥐 나서 떨어지다 흥부를 만날 확률과 비슷하다. 별로 없다. 물론 IMF 때 떨어졌다. 그때 놀랐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실은 잘 몰랐다. 집값에 관심도 없었고, 경제관념도 희박했다. 월급 주면 받고, 돈 있으면 클럽 가서 놀고 옷 사고 신발 사고, 놀 일 생기면 좋아라 달려가는 부나방처럼 살았다. 고민이라면 "택시 좀 그만 타자. 택시 기사 먹여 살리는 데 너무 힘쓴다." 이런 푸념이나 하거나, "옷 사고 싶어" 헥헥대다 한 달 쇼핑비와 택도 안 뗀 옷들 보며 가족들 볼라 부끄러워하다 옷장 속 더 깊숙이 숨겨놓고 그랬다. 뭐 일 관련 고민이야 만날 하던 거니, 고민도 아니었다. "난 왜 이리 일을 못하지?"와 "난 너무 일을 잘해" 이런 조증과 울증 사이를 널뛰듯 왔다갔다하다 아무 생각 없다 그랬다.

 

올해는 그래도 경제관념을 챙기며 살았다기보다 챙기며 살고 싶었다. 연봉협상은 말이 협상이지 연례 행사격 "구타 자리"나 다름없고, 그러니 더 많이 벌릴 리 없는 수입에 더 많이 나타날 리 없는 알바거리에, 할 거라곤 "있는 거라도 까먹지 말자!" 주의랄까. 그렇다고 역시 경제에 관심은 있고 싶지만, 관심보다 무지가 깊은 내가 뭘 어쩌고 할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적금 들러 은행 갔다가 은행 직원 꾀임에 홀라당 넘어가, 귀 얇은 내가 '펀드'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좋으니 들라니까 들었던 펀드 통장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덜컥 들어놓고 까먹고 있었다. 만날 까먹고 있다 어쩌다 "펀드 어쩌고" 하는 기사를 보면 퍼뜩 기억나 화들짝 놀라 '펀드' 통장을 뒤지고, 남은 금액을 뒤졌지만 그게 다였다. "이건 이렇게 돌리고 이건 이렇게 살리고" 할 만큼 아는 바도 없고, 그걸 알자니 알아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모락모락 김이 날 판이었다.

 

아무튼, 그러다 미네르바가 쓴 글을 봤다. 솔직히 조금 머리가 아팠다. 경제에 숫자 나오고 이상한 전문 단어 나오면 '경기'를 억지로 참고 보는데, 미네르바 역시 뭔 숫자를 들이대고 그랬다. 그래도 일간지나 이런 데 나오는 것보단 알 만했다. 더구나 이쪽 업계 생리를 아는지라, 경제 기사라고 해서 다 순전히 객관적이고 순전히 아무 사념 없이 도움을 주는 기사가 아니란 걸 아는 터라 더 솔깃했는지도 모른다. 경제 기사를 읽으면서도 간혹 '수'가 다 보여서 콧방귀를 뀌던 터라, 경제 기사는 믿지 않았다. 있잖나. 말로는 부동산 전망을 보여주지만, 잘 보면 광고주 홍보용 기사 같은 거, 독자의 이익보다 광고주의 이익을 위해 독자를 '봉'으로 알고 팔아먹을 속셈이 훤한 기사.

 

미네르바 글에선 그런 게 안 보였다. 보인다면 어쩌면 '치기'가 보였다. 나는 이런 걸 아는데, 니들은 왜 이런 걸 모르니? 그런 치기랄까. 시니컬하게 마구 씹어대는데, 그게 귀여웠다. 고구마 파는 늙은이가 참 까칠하기도 하지. 성질나면 고구마 팔다 말고 고구마 휘젓던 막대기를 들어 성질 내게 한 사람 모두에게 마구 휘두를 것 같았다. "너한텐 안 팔아" "멍청아. 그딴 썩은 고구마 사서 속 터지지 말고, 노란 토끼한테 잡혀먹히기 전에 얼른 집에나 쳐 가" 이러면서.

 

아무튼, 숫자는 모르겠는데, 그가 죽어라 경고하고자 하는 건 알겠다. 뉘 말처럼 그가 작전세력인진 작정 세력인진 모르겠지만 경고는 신빙성이 있었다. 거기다 또 누가 그랬다. 진정한 재테크계의 고수인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펀드나 주식에서 손 떼는 추세라고 했다. 집값이나 펀드가 떨어질 거란 예측을 움켜쥐고 현금을 쟁여놓느라 바쁜 추세라고 했다. 강남 아줌마와 안 친한 내 귀에도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 보면, 꽤 퍼진 소리인 듯했다.

 

그러자 불안이 엄습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펀드'가 퍼뜩 생각났다. 나도 몰라 그냥 냅두었더니, 저 혼자 배를 불리고 저 혼자 쌍둥이를 낳아 저 혼자 초기 몸매의 두 배는 돼 있던 녀석이었다. 덕분에 그거 털어 뭘 할까 살짝살짝 궁리하는 기쁨을 쏠쏠하게 주던 녀석이었다. 왜 그렇잖아. 불로소득은 나의 힘. 개구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왕자님이라니, 그런 게 불로소득이다. 죽어라 일해서 번 돈도 좋지만, 손 하나 까딱 안 했는데, 번 돈 벌어봐라. 기분이 그야말로 '킹왕짱'이다.

 

그런데 처음엔 불로소득이었지만, 이젠 굳어져 내 돈이 된 그 돈이 날아간다고? 펀딩으로 불어난 돈뿐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넣은 돈인데, 그 원금도 날아갈지 모른다니? 숨이 턱 막혔다. 잠이 확 깼다. 횡재는 둘째고 있는 거나 날리지 말아야 판에 그나마 쪼잔하게 있는 것도 날릴 판이라니? 간도 작은데다 그나마 겨우 번 돈도 허망하게 날리는 게 싫어 주식도 안 하고, 로또도 안 사고, 보험도 안 들고, 그저 내가 번 돈이나 보전하자 주의인 내게 이게 뭔 소리냐 싶었다. 내가 그거 벌려고 어떤 소리도 다 참고 받은 월급인데, 맘 같아선 수십 번 때려치웠을 일들이 생겨도 그런 내 나약함과 열받음을 과자로 대신 씹어 삼키고, 화장실에서 소변으로 대신 분출하며 모은 돈인데 뭐가 어째?

 

그 길로 은행에 묵혀둔 펀드 해지했다. 8월 말경이었다. 펀드를 해지하겠다고 하자, 은행 직원은 말렸다. 그가 말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괜찮아질 거다. 지금 떨어져도 올라갈 거다. 기다려라. 해지하지 말아라. 그 말, 잠깐 흔들렸지만 큰 맘 먹고 뭉갰다. 귀 얇은 내가 하마터면 또 넘어갈 뻔했다. "그렇겠죠? 다시 오르겠죠?" 이럴 뻔했다. 하지만, 눈 딱 감았다. 미네르바 때문에 내가 잠시 미쳤다.

 

결국, 깬 펀드는 과거 잘 나가던 금액은 어디로 가고, 그때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원금과 기본 은행 이자는 살아있는 돈이 돌아왔다. 돈 보며 뿌듯했지만, 한편으로 불안했다. 이거 괜히 깬 거 아냐? 깼더니 펀드 올라가는 거 아냐? 잠깐 불안했지만, 눈을 꾹 감았다. 모를 땐 그저, 후회하지 말고 확 뒤돌아서는 게 최고다. 후회는 망조의 지름길, 후회하는 자에게 속 쓰림이 있나니. 이미 저지른바, 잊기로 했다. 또 아는 선배는 내년에나 팔려던 집을 후다닥 팔았다. 집값이 오르기보다, 떨어진단 전망을 믿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정말 일이 크게 터졌다. 펀드는 은행 직원 말처럼 오르긴 개뿔? 쥐뿔? 미친 듯이 고꾸라졌다.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있다더니, 이건 추락용 특수 날개라도 단 듯이 추락했다. 주변에서 누군가 그랬다. 원금이라도 건졌으면 좋겠다. 이득은 둘째고, 원래 내가 부은 돈도 못 찾게 생겼던 상황, 황당무계 속 터지고 복장 터지는 상황이 도래했다. 반 토막이 났네, 반 토막은 낫다. 제로싸움이네, 제로 싸움은 낫네. 적립식이라 앞으로도 계속 부어야 하는 펀드인데, 계속 까먹는 거 같은 밑 빠진 독에 계속 물을 부어야 하는 게 맞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다 못해, 인간들의 영혼을 잠수 타게 했다. 누구는 그랬다. 그냥 없는 셈치고 마음을 비워야 해. 이젠 해탈을 꿈꾸는 이까지 등장했다. 그 속이 얼마나 시꺼맸을까? 누구는 안 하던 펀드에 은행 직원 말만 믿고 뒤늦게 올라탔다가, 쪽박 차게 생겼다고 했다. 안 하던 주식을, 이제 내려올 만큼 내려왔고, 이건 오를 거란 말에 '전문가' 말에 혹해서 샀다가 종자돈이 반 토막이 나서 얼굴도 반 토막이 됐다고 했다. 정말로 그랬다. 그 속이 얼마나 문드러졌을까? 웃고는 있지만, 웃음이 아득했다.

 

그런데 어쩌다 경제에 무식한 나는 되레 그 속에서 빠져나와, 그래도 원금은 보전했고 은행 이자 만큼은 남겼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니. 아이러니했다. 나를 아는 친구는 "신기하다"고 했다. 주식의 '주'자도 모르고, 펀드의 '펀'자도 모르는 내가 이 추락의 바닥에서 살아남아 웃고 있다니.

 

지금 이 바닥이 그랬다. 이득은 둘째고, 손해 보지 않으면 성공이라고 했다. 허공에서 저 홀로 날아가 반 토막이 된 돈을 생각하면, 다들 자기 이마를 책상에 100번쯤 들이받으며 자신을 자학하고 싶다고도 했다. 여기저기 돈이 씨가 말라 허연 손바닥을 내미는 판에, 있던 돈까지 까먹었으니, 그나마 믿고 기대던 구석에게 배신당한 꼴이랄까.

 

그게 다 빌어먹을 경제 전문가인지 예언가인지 하는 분들 덕분이었다. 펀드에 들라느니, '몰빵'하면 복이 온다느니. 그래놓고 예언은 저주가 됐다. 장밋빛 예언이요 천사의 나팔 소리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지옥으로 가는 초대장이었다. 그 지옥이 말했다. 내 돈 돌려줘. 내 돈 돌려줘. 난 앞으로 뭘 먹고 살라고.

 

미네르바는 경고했다. 주식, 코스닥, 펀드, 집값…. 반 토막 난다. 환율? 1500까지 튄다. 9월, 위기다. 리먼 브러더스, 안 된다. 그는 말했고, 사람들은 들었다. 선택은 들은 사람 몫이었다. 재밌는 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이들은 그나마 살아남았다. 그의 말보다 진짜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 가방 끈 긴 분들 말을 들은 이들은 그대로 박살 났다. 쪽박 됐다. 숫자 0이 뒤에서 몇 개씩 없어진 통장을 손에 쥐고, 망연자실하게 됐다. 경제 전문가 타이틀을 들고서, 언론에 나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9월 위기설은 없다고, 주가 이제 올라갈 거라고 떠들던 이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은 대가였다. 말은 그분들이 하고, 쓰라린 책임은 믿은 사람이 졌다. 희한한 룰은 잔혹한 댓가를 요구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쪽박이 그의 것이 됐다.

 

그런데 그 미네르바가 허위 유포죄로 체포됐다. 그가 '진짜 미네르바'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고맙다. 미네르바. 그대 덕분에 난 살았다. 없는 돈에 깡통 찰 뻔한 걸, 그대 덕분에 살았다. 그나마 건졌다. 당신 말에 필 받아, 후다닥 집 판 내 선배도 건졌다. 그러니까 검찰이 당신을 허위 유포죄로 잡아넣건 어쩌건, 나는 당신이 고맙다. 진실을 알려줘서 고맙다. 그러니 잊지 마시라. 당신에게 고마워하는 이들이 있음을, 당신이 구해준 이들이 있음을.


※ 출처 - http://blog.ohmynews.com/cool/156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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