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슬기로운 빈둥이공동체마을 사용설명서
지은이 - 필명 nurimaem
제 20 화
"다들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걱정이 되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인자를 물어보았는데, 말하기를 꺼려해서 다른 경로로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준서 연구원이 네팔에서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이 끝마치자 다들 놀래며 서로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웅성거렸다.
다른 참석자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아니, 한준서 지사장은 지금까지 네팔 지역주민을 위해, 그 정도로 헌신하고 지원해주었으면 됐지 또 더할 게 남아있다고 합니까? 그 공부가 얼마나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그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발언을 끝마친 참석자의 얼굴에는 그에 대한 염려와 함께 그의 네팔 지역에 대한 헌신성에 감동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지의 네팔주민들 때문에 고난의 길로 들어서려고 하는 지사장을 그냥 퇴사시킬 겁니까?" 다른 참석자가 강성일 국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에서는 이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빈둥이공동체 여러분을 모시고 함께 의논하고자, 이렇게 전체회의를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허심탄회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성일이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한 참석자가 발언의 기회를 얻었다."다들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한준서 지사장의 경제 환경이, 의학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른 경제활동을 하면서 공부해야 할 상황인 것 같은데, 여태까지 빈둥이 공동체에 기여한 바도 크고 어디에 있든지 앞으로도 우리와 협력할 부분이 많으니, 빈둥이 공동체에서 지원할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빈둥이 공동체에서는 어려운 환경이 있는 청년을 지원하는 '청년펀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펀드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고 현재까지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얼마나 남아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한 한준서 지사장은 이 펀드의 지원대상이 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다른 참석자가 말했다.
다시 강성일 국장에게 모든 이목이 집중되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빈둥이 공동체는 사회 ·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빈둥이공동체마을에서 편히 쉬면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자립을 위해 실력을 키우면서 일자리 마련과 창업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과 재원을 마련하는 데에도 이 청년펀드가 쓰이고 있습니다."
"청년펀드 기금은 공동체마을 주민들의 기부와 공동체 안과 지역마을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수익사업, 그리고 개인 후원금으로 마련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대략 1천만 소금 정도 남아 있습니다." 강성일 국장이 말했다.
"저도 몇 번 네팔 공정여행 프로그램에 참석해 봐서 아는데, 한준서 지사장의 성격상 빈둥이공동체에 민페를 끼친다고 안받으려고 할 것 같긴 한데, 이런 경우에 한 지사장에게 지원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다른 참석자가 물었다.
이에 강성일 국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빈둥이 공동체 전체회의를 소집한 것입니다. 큰 방향이 정해지면 한준서 지사장을 설득해서라도 본인에게 절실한 부분을 해결해주는 것이, 본인 뿐만아니라 네팔 지역주민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다른 참석자가 손을 들어 말했다. "제 생각에는 네팔 지부의 업무를 어떤 식으로라도 도와주는 직원들이 있으면,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것은 그렇게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일의 연속성을 보도라도 그 위치에 한준서 지사장만큼, 빈둥이공동체에 신뢰를 얻고 있는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우니, 그 직을 계속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부하는 방법을 찾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저도 몇 번의 네팔 공정여행을 참가하다보니 한준서 지사장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가 스치듯 말한 것이 생각이 납니다. 네팔에는 쌀이 주식인데다 어릴 때부터 값싼 과자류를 많이 먹다보니, 오래전부터 고혈압과 당뇨병 등의 만성질환이 만연해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네팔 정부의 관광청에서는 해외에서 오는 여행객들에게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지 말라'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그런 질병들의 발생 연령대가 점차 낮아져, 젊은이들까지도 이러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준서 지사장님이 걱정하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빈둥이 공동체 의료봉사단이 정기적으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만성질병을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히 반복되는 상황을 안타까워했습니다. 특히 그런 생활습관병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하게 되면, 의료분야에서도 워낙 낙후된 곳이라 병원에 가기가 힘들어,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준서 지사장님은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네팔 지역 주민들을 위해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에게 빈둥이공동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석자의 이 발언이 끝마치자 다들 그 말에 동의한다는 뜻의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수가 끝날 때까지 성일이는 잠시 좌중을 둘러보았다. "한 지사장에 대한 빈둥이공동체마을 주민 여러분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 지사장의 성격 상 공동체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식구들이 어려울 때 서로 보살피고 마음을 모아, 함께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때, 그 개인은 물론 공동체 전체도 함께 성장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의 일도 빈둥이 공동체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지만, 새로운 길을 가려는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네팔에 있는 오지의 열악한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함께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성일 사무국장이 말을 마치자 참석자 모두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성일사무국장이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마무리 발언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빈둥이공동체마을 운영위원회의 강력한 요청으로 한준서 지사장이 조만간에 귀국하여 빈둥이공동체마을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상으로 빈둥이공동체마을의 주민 전체회의를 끝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성일 사무국장이 말을 끝마치자 다들 일어나 힘찬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 젊은이가 네팔 오지의 지역주민을 위해 진정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과 이를 빈둥이 공동체가 기꺼이 함께 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다들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참석자들은 서로를 격려하는 것 같았다.
성일이가 자리로 돌아왔다. "나라 표정이 왜 그러니?" 성일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다들 놀랍네!" 나라가 말했다. "뭐가?" 도현이가 물었다. "이역만리에 있는 한 젊은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더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빈둥이마을 주민 전체가 그 젊은이를 못 도와줄까 봐 노심초사하며 걱정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나라가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말을 했다.
"그러게, 한 지사장이 네팔에 가면서부터 여행을 비롯한 네팔 사업은 빈둥이공동체마을의 핵심 해외사업이 되었어. 거기서 공정여행을 하고 봉사도 하며, 오지에 있는 지역주민들과 어울리며 네팔의 고유한 문화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만들었지."
"그 지역에서 만드는 수공업 제품들은 얼음골 축제나 선데이마켓에 팔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지. 그런 일들은 한 지사장이 없었으면 하지 못할 일들이었어. 그런 사정을 아는 주민들은 당연히 한 지사장이 그 지역에 쏟은 헌신과 진정성을 알고 있기에, 더욱 안타까워하고 잘되기를 바라고 있는 거지."
말을 잠시 멈춘 성일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아참, 이제 이 얘기는 그만하고, 나라 얘기해야지. 서울 너희 회사에 컴퓨터 잘하는 친구 있으면 나에게 연락 달라고 해줄래. 일단 나라와 먼저 통화해서 비대면 회의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서, 나라도 감을 잡고 난 후 나한테 연락달라고 해줘. 그러면 내가 알아서 준비할게."
"나라는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일만 준비하면 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성일이가 일어서며 말했다. "괜히 나 때문에 너희들이 고생이구나? 그냥 내가 갔다 와도 되는데." 나라가 미안한 듯이 말했다. "무슨 얘기야. 이게 다 우리 때문에 생긴 일인데 우리가 더 미안하지. 나는 바빠서 먼저 일어날게. 나중에 봐." 성일이가 일어서며 말했다.
"나도 연습장에 가볼게" 도현이도 일어서며 말했다. "도현이도 아침부터 너무 열심이네. 얘들 너무 힘들게 하는 거 아냐?" 나라가 웃으며 말했다. "아냐, 그건 아니고. 특별히 지도할 녀석이 한 명 있어서. 그럼 나중에 봐." 도현이도 눈으로 찡긋 인사하며 사라졌다.
카페는 이제 아침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랜 호흡을 맞춰온 팀처럼 분주하게 움직이며 전체회의 때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카페에서 일하는 젊은 연구원들 중에 전체회의에 참석한 친구들이 유달리 많았는데 전체 회의의 분위기에 고무된 표정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라도 카페에서 나와서 목공실을 향해 걷고 있는데, 거기에 도착할 때쯤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권세일 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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