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슬기로운 빈둥이공동체마을 사용설명서
지은이 - 필명 nurimaem
제 11 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낡은 어두워져 있었고, 본관과 힐링카페의 조명들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서자 한쪽 구석 쪽에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나라가 많이 바쁘네." 정금이가 말했다. "마을축제 때 작품 낼 거라고 젊은 친구들이 다들 열심이네." 나라가 말했다.
"젊은 친구들 사이에 목공팀이 인기가 많아서 대기 줄이 많아." 성일이가 얘기했다. "또 그 팀들이 실력이 늘어나면서 공동체 마을의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을 바꾸고 있어. 다들 흐믓한 마음으로 투자한 보람을 느끼고 있지." 성일이가 기분이 좋은 듯이 말했다.
"나라가 보기에 그 친구들 실력이 어떤 것 같아." 도현이가 물었다. "아니 왜 묻는 거야.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니?"
"젊은 친구들이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오잖아. 근데 한 번씩 보면 못 같은 것이 하나도 안 박혀 있는 거야. 그런 의자에 내가 앉아도 되는 건지, 만약에 내가 잘못 앉아 부서지면 열심히 만들 친구들에게 미안해질 것 같아서." 도현이가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걱정도 팔자다." 정금이가 얘기했다. "그런 의자들이 더 튼튼해. 마음 놓고 앉아. 실력들을 보니 A/S도 충분히 가능한 것 같더라. 다만, 다친 네 엉덩이 빼고." 나라의 말에 다들 읏었다. 도현이 왈 "뭐야~~ 앉아라 말이야 앉지 마라 말이야. 말이 영 헤갈리네. 하하"
식사는 둘째치고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경애가 들어왔다. "어, 아직도 있네. 오늘도 나를 기다리며 식사를 안 하고 있었던거야?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아니야, 이런저런 얘기 하다보니 식사 시간이 또 지나가내. 다들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 나라가 얘기하며 일어섰다. 식사를 끝마치고 벤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
"정금이와 경애는 일찍 퇴근 안하고 늦게까지 있었어?" 도현이가 물었다. "치매환자 돌봄에 대한 강좌가 있어서 듣고 있는 중이야." "누가 주위에 아프신 분이 계시냐?" 나라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시어머니가 안 좋으시고, 정금이는 어머님이 치매 초기 진단을 받으셨잖아, 그래서 혹시 도움이 될 일이 있나 싶어 강의를 신청했지." 경애가 대답했다.
"아, 전에부터 궁금한 것이 있어서 생각난 김에 물어보자." 성일이를 보면서 정금이가 말했다. "뭔데?" "얼마 전부터 자주 보이는 할머니가 계시던데 그분이 치매환자신가?" "어떻게 알았어! 그렇게 많이 표시 나지는 않으실 텐데." 강 사무국장이 대답했다. "내가 요즘 자주 엄마 보러 가다 보니 평소에 그냥 지나친 행동들이 치매와 연관이 있더라고. 그리고 치매 돌봄 강좌를 듣고 보니 그런 증상들이 눈에 띄네."
"그분은 어떻게 여기에 오신 거야?" 경애가 물었다. "연구원의 할머니 되시는 분이야. 치매 초기에서 더 진행된 상태인데, 결손가정이다 보니 그 할머니가 연구원을 키우셨어. 이제 돌봐줄 사람도 없고, 당연히 할머니는 손녀 부담된다고 요양병원에 들어가길 거부하시고 있었지. 다들 의논 끝에 아침에 손녀와 같이 와서 지내시다가, 저녁에 집으로 가시는 것으로 했지." 성일이가 말했다.
"나도 연로하신 분이 자주 눈에 띄어 유심히 봤는데, 그런 분인지 잘 모르겠던데?" 경애가 말했다.
"치매 진단받기 전부터 집에만 계시면서 먹는 것도 잘 챙겨 드시지 않고 손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 여기서는 치매에 효과가 있다는 음식을 포함해서 제대로 된 식사도 드시고, 이것저것 활동을 하면서 다들 좋아지셨다고 해."
"그분도 여느 어르신들처럼 시골에서 사신 경험이 있다 보니, 텃밭 가꾸고 닭과 오리 먹이 주는 일들에, 오히려 같이 작업하는 연구원들이 더 잘 배우고 있다고 하더라. 고혈압과 당뇨병 약도 오랫동안 드시고 있었는데 오 원장의 얘기로는 그 약들을 줄이고 있다네." 성일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하면 안 될까?" 정금이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가만, 이번 경우는 특별한 경우였어. 빈둥이공동체마을의 만성질환 치유 프로그램에 '치매'는 없었거든. 다들 알다시피 사정이 딱한 분들이 참 많더라고.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어."
성일이의 말에 의하면 이 마을에서는 고혈압, 당뇨병, 그리고 암 등의 생활습관에서 오는 만성질환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매일 방문하면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몇 주간 집중적인 치료를 받은 후 상태가 안정이 되면, 느슨하게 관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이 분들은 주로 연구원들의 가족들이 많은데, 연구원들이 부모 없이 조부모 가정에서 자란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손주의 보살핌 아래 자연과 더불어, 자기에 맞는 신체활동을 하면서 케어를 받고 있다고 했다. 성일이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덜란드에는 1,000 곳이 넘는 다양한 케어팜(care farm편집자주 : 다양한 질환에 특화되어 자연 속에서 치유프로그램을 통해 질병을 개선하는 농장)이 있대."
"농장에 따라 어린이, 노인 등 특정한 사람들만 이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섞여서 지내기도 하기 때문에, 본인에게 맞는 곳을 골라서 갈 수 있다고 해. 장점은 가정집 같은 편안한 환경에 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양한 실내외의 활동이 있다는 점이야."
"케어팜의 이용객들은 이웃집에 놀러 온 것처럼 하루를 보내고, 마치 농장에 일자리를 얻은 직원이 된 것 같은 자부심을 느낀다고 해. 당연히 치매 돌봄 프로그램도 있는데 거기서는 치매 어르신들도 병원의 침대에 묶여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농장 안을 자유롭게 오가며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군." 성일이가 말했다.
"오~~, 성일이는 빈둥이공동체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네." 나라가 말했다.
"사무국장이란 직책을 맡게 되면 다 그렇게 돼. 그리고 그 할머니의 일이 계기가 되어 치매 치유 프로그램에 대한 TFT가 만들어져서, 열심히 자료도 모으고 공부도 하고 있어."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정리가 되었어. 그리고 그 내용을 연구원들과 공유하고자 강좌를 개설했어. 지금 정금이와 경애가 듣고 있는 것이 바로 그 강좌이지. " 성일이가 웃으며 말했다.
"한 줄기 밝은 빛이 보이네." 도현이가 말했다. "우리의 자식 세대들은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벅찰 텐데. 그래도 여기 와서 보니, 늙어서 고생하는 다른 병들이야, 내 혼자서도 어찌어찌 버텨보겠는데 치매는 답이 없더라고." 도현이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성일이의 말을 들어보니 한 마을 전체가 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치매 어르신을 돌본다면 내 차례도 오겠지. 나도 당장 내일부터 그 강좌를 들어야겠다." 도현이가 결심한 듯 말했다.
"다들 알다시피 인문의학연구소의 연구원이 되면 오리엔테이션부터 누구나 필수로 들어야 되는 강좌 주제가 있잖아. 거기에다 치매 돌봄 관련 강좌를 필수로 지정해서, 단계별로 교육을 받게 하면 마을 전체가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일들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봐." 성일이가 가라 앉은 분위기를 띄우려고 유쾌하게 말했다.
다들 이런 고민을 안 해본 친구들이 없어서 그런지 공감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아참, 나 일어나 봐야 돼. 얘기에 정신을 팔다 보니 또 늦었네." 나라가 말했다.
"좀 더 이야기하다 자러 가야지, 어디 갈 데가 있다고?" 도현이가 물었다. "미안, 목공 작업실에 가봐야 되는데 깜빡했네. 내 먼저 일어날 테니 천천히 일어나라. 나는 좀 늦을지도 몰라."
나라는 급하게 나와 목공실로 향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작업실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윤 팀장이 혼자 작업하고 있었다. "아니, 혼자 작업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늦은 시간에 왠 일이세요? 조금 전에 다들 갔습니다. 저는 아직 작업할 것이 남어서 마무리하고 갈려고요."
"저녁은 먹었어요?" 나라가 물었다. "예, 제가 식당에 미리 도시락을 부탁해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윤 팀장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리고 선생님, 제가 선셍님께 배우고 싶어서 만들려고 했던, 거실 테이블은 시간 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윤팀장이 미안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전에 윤팀장이 신나라 목공방에 인턴십 과정으로 왔을 때도, 한옥 이음새로 만든 테이블을 만들고 싶어했었다. 그러나 시간을 못내어 이번 기회에 배워보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던 차였는데,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포기하는 것 같았다.
"그럼 그것은 일단 내가 만들어볼게요. 그때그때 중요한 팁을 말해줄테니, 시간날 때마다 한 번씩 눈여겨봐요. 윤 팀장 실력 정도면 눈으로만 봐도 다음에 잘 만들 수 있을거예요."
"편히 쉬시러 오셨는데 부담만 드리는 것 같아 너무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전에 서울에 올라왔을 때도 느꼈지만, 목공팀은 일도 바쁘고 비슷한 또래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다들 윤 팀장을 믿고 따르는 것이 다 이유가 있다고 느꼈어요. 팀원들과 소통도 잘하고 잘 챙겨주고, 책임감도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나라가 말했다.
"아니예요. 저는 중간에서 의견 전달을 하는 것뿐입니다. 공동체마을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셔서 다들 신이 나는 것 같습니다." 윤 팀장이 말했다.
"다들 목공팀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더라구요. 마을 곳곳에 목공팀이 만든 가구며 소품들이 빈둥이공동체마을의 품격을 높인다고 흐믓해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너무 부담갖지 말아요. 보아하니 목공팀이 이사한 후 첫 전시회라고 기대가 크겠지만, 너무 무리하지 말고 할만큼하고 즐겨야지요. 그래야 작품도 잘 나오는 법이에요." "예, 선생님이 우리 곁에 계셔서 너무 든든합니다."
윤팀장이 만들고 싶어 했던 거실 테이블은 못 자국이 없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휘지 않는 테이블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럴 경우에 테이블 상판과 하부 다리를 한옥 이음새 방식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기술도 까다롭고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품목이었다. 거실 테이블을 만들 나무 재료들을 선택하고, 설계도를 대강 구상한 후 윤 팀장과 함께 작업실을 나왔다.
성일이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밤 11시가 지났다. 거실에는 아직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일랜드 식탁에서 성일이와 도현이가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얘기하고 있었다.
"아니, 아직도 안 자고 있어! 져녁때부터 얘기하고도 아직 할 얘기가 남은 거야?" "그것도 그렇지만, 널 기다리고 있었지." "그렇게 할 일이 많은 거야? 이렇게 밤늦도록." 성일이가 걱성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 내일부터는 더 바쁠지도 몰라." "여기는 빈둥이공동체마을이라고. 일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고." 도현이가 웃으면서 얘기했다.
"윤 팀장이 책임감이 강해서 여러 가지로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애. 말은 안해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가봐." 성일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팀원들이 다들 열심히 하긴 하는데, 여러 가지 일들을 같이 하다보니 계획대로 작품이 안 나오나 봐. 그래서 얼마 안 남은 시간이지만 있을 동안에는 내가 팔을 걷어붙여야 될 것 같아." 나라가 얘기했다.
"근데,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한 거야?" "젊은 친구들이 빈둥이공동체마을에서 적당히 일도 하면서 편히 쉬기도 하고, 창의성을 일깨울 수 있는 체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열띤 토론 중이야."
"빈둥이공동체마을의 미래는 그런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그것이 빈둥이공동체마을의 지원 속에서, 성공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애. 그렇게 되면 본인 자신은 물론 마을공동체와 지역이 함께 성장하게 되겠지. 서로 상생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 도현이가 말했다.
"젊은 친구들, 얘기하니까, 갑자기 생각난건데, 오늘 오후에 너희들과 헤어져 예술창고로 가는 중에 갑자기 숲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라고. 가만 지켜 보니, 중학생 또래로 보이는 친구가 혼자서 괴성을 지르고 있는 거야.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놀래서 보는데, 이어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같더라고."
"그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별로 신경 안쓰고 지나가고 해서 나도 그냥 지나쳤어." 나라가 걱정되는 투로 말을 했다. "많이 놀랬겠는데." 그 말은 들은 도현이가 웃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럼! 마을에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가 혹시 방치되고 있나 걱정했지." 나라가 말했다. "키가 크고 마른 친구가 아니었어?" 도현이가 물었다. "맞아. 어떻게 알아?" 나라가 놀랜듯이 물었다. "윤후야. 아마 노래 연습하고 있었을거야." 도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웃음이 나오니? 걔는 무슨 노래 연습을 이상하게 하니!" 나라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다 나라는 2층으로 올라갔다.
# 장면 1
도현이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돌 멤버 한 명과 얘기하고 있는데, 윤후가 다가왔다.
"샘,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윤후가 말했다. "뭔데?" 도현이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아니고예. 고음이 생각보다 잘 안나옵니다.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도현이의 실력을 테스트 하듯이 윤후가 물었다.
"그야 당연한 거지. 사춘기 때 변성가가 오면, 성장을 위한 고통이라 생각하고 감수해야지." 도현이가 웃으며 말했다. "안됩니다. 공연 때 준비하는 곡을 부르기 위해서는 꼭 고음을 내어야 됩니다." 윤후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도현이를 바라보았다.
"쉽지도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릴거야. 포기하고 다른 곡을 골라라." "안됩니다. 그 곡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윤후가 단호하게 말했다. "음,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 도현이가 뜸을 드리며 말을 멈추었다. "예? 뭡니꺼?" 호기심에 눈빛으로 도현이를 바라보았다.
"일단 네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 가성으로도 따라부를 수 없는 노래를 골라라." 그리고 입을 다물고 '음'이란 소리로 내며 따라 불러라. 당연히 그것을 비슷하게 부르려면 가성으로도 힘들겠지.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해라. 네가 좋아하는 노래이니 그리 지겹지는 않을 거야." 도현이의 말에 윤후는 잘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소향이 복면가왕에서 불렀던 '아시나요'의 고음부분을 최대한 따라 부르란 얘기야. 사춘기 가성의 목소리로 흉내만 낼 수 있어도 재미있을 거다. 하하" 도현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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