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 신나라의 특별한 여행 2

신나라의 특별한 여행 제 10 화

pulmaemi 2021. 10. 27. 12:45

  부제 : 슬기로운 빈둥이공동체마을 사용설명서

 

  지은이 - 필명 nurimaem

 

  제 10 화

 

  동창끼리 모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시 가던 길로 걸어 전원주택 단지를 향하고 있는데, '음 음' 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들 익숙한 듯 무심히 지나가고 있었고, 그 학생도 다른 큰 문제는 없어 보여 그냥 지나쳤다.

 

  전원주택 단지의 앞길로 걸어가다 보니 대나무 밭이 나왔고 그 속에 커다란 창고 건물이 힐끗 보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대나무 숲길을 따라 가니 예술창고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남쪽을 향해 있는 입구는 전면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앞 면과 연결된 양 측 벽면의 1/3 가량의 측면도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고, 그 주위를 대나무가 둘러싸고 있었다.

 

  전면 유리창의 중앙에는 폴딩도어가 달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측에 중고장터란 팻말과 함께 여러 가지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미술작품으로 보이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구석진 자리 3~4곳에 파티션이 처져 있었다. 그 중 한 곳은 작업대 위에 그리다 만 그림이 있었고, 다른 한 곳은 큰 모니터가 덩그러니 책상 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홍수빈 작가를 찾고 있는데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홍 작가였다. 홍 작가도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새로 자원봉사를 시작하는 연구원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예술창고는 생각보다 넓고 높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홍 작가와 같이 올라가 보았다. 1층의 반쯤 되는 넓이의 공간에는 어느 카페의 2층처럼 곳곳에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거기에도 연구원들로 보이는 선남선녀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즐기고 있었으며, 세미나를 하는 팀도 있었다.

 

  주말 저녁에는 2층에서도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비보이 동아리 공연도 열린다고 한다.

 

  2층에서 1층을 바라보니 앞면과 측면의 전면창을 둘러싼 대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촘촘한 대나뭇잎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는데 홍 작가가 말을 했다.

 

  "인상적이죠. 저도 한가할 때는 2층에서 하염없이 저 광경을 바라본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햇살과 그에 반응하는 사물들의 향연, 예술이지요!"

 

  1층으로 내려와서 홍 작가의 파티션 안쪽으로 들어갔다.

 

  "1층의 입구 쪽 중고장터는 언제 열리나요?" 나라가 물었다.

 

  "아닙니다. 빈둥이공동체마을 단톡방 중에 '중고장터' 방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연구원들이 팔 물건과 가격을 내놓으면 그 물건이 필요한 연구원이 서로 흥정을 합니다. 그래서 매매가 성사되면 중고장터로 가져오고 가져갑니다.

 

  여기는 일종의 중고물품 보관장소죠." 홍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아참, 손님한테 차도 한 잔 안 권했네요. 오 원장님한테 선물 받은 차가 있는데 한 번 드셔볼랍니까? 새싹 보리분말 차입니다. 유기농으로 재배되었고 고소한 것이 맛 있습니다." 홍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임 작가는 미술작가로서 빈둥이공동체마을 예술가지원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평일에는 '4시간 원칙'에 따라 오전에 도서관 일을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여기 예술창고에서 2명의 작가들과 함께 작품활동을 한다고 했다.

 

  단 주말에는 도서관 이용객들이 많아서 계속 상주하는데, 이 때 발달장애나 신체장애 아동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 및 미술심리상담을 진행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치유의 개념이기에 도서관 내 '산마루방'에서 자유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공동체마을 자체 행사나 지역 마을 행사 때, 예술작품을 기획·전시하는 큐레이터 역할도 겸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림에 관심이 있는 연구원이나 지역마을 주민의 요청이 있을 때는 예술창고에서 개인교습을 하는데, 요즘은 그 시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또한 '젊은 작가 지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부산·경남 지역 내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중에 창의성이 돋보이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여, 지역대학 내 갤러리와 연계하여 작품을 전시·판매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한 빈둥이공동체마을 주말장터 때, 예술창고에서 그들의 작품을 전시·판매하여, 그들이 안정적인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젝트라고 했다. 

 

  홍 작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난 후, 작별인사를 한 후목공 작업실로 향했다.

 

  목공작업실에 들어서자 다들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신나라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회의 중이던 윤소이 팀장이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잘 돼가요?" 윤 팀장의 얼굴이 피곤해 보여서 그런지 안색이 안 좋았다. "생각처럼 안되네요. 다들 의욕이 넘쳐 일을 벌이기는 하는데 계획대로 될지 걱정입니다."

 

  "마음 편하게 생각하세요. 제가 있는 동안에는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요. 조그만 힘이라도 보탤 테니."

 

  "선생님, 어제 말씀하신 우드 카빙 세트는 어떻게 구하면 됩니까? 아는 곳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내 조카가 반제품과 세트를 팔고 있는데, 거기 연락처를 줄 테니 알아보세요. 내가 미리 얘기해 놓으면 착한 가격으로 보내줄 거예요."

 

  "옙,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어제 선생님이 수제 팬에 대해 말씀하셨잖아요?" "팀원들이 그것도 하고싶어 야단입니다. 시간이 촉박하고 장비도 필요해서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해도 팀원들이 무척 만들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선생님께 여쭤봅니다. 가능하겠습니까?"

 

  "팀원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힘들더라도 해야지요. 문제는 장비와 시간입니다. 혹시나 해서 서울에 장비를 챙겨놓고 왔는데 좀더 챙겨서 얼음골로 보내라고 해야겠내요. 수제팬 재료는 제가 거래하는 업체 연락처를 줄테니 연락해봐요."

 

  "신 선생님, 편히 쉬시게 해 드려야 하는데, 자꾸 부탁만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윤 팀장이 미안한 마음에 어쩔줄을 몰라 했다. "괜찮아요. 젊은 친구들이 패기가 있어 좋은데요. 그리고 제가 없을 수도 있으니, 팀원들에게 장비와 재료가 도착하면 바로 제작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세요." 나라가 웃으며 말했다.

 

  윤 팀장이 팀원들에게 가서 이 소식이 전하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나라에게 손가락 하트를 마구 날리며 인사를 했다. 

 

  목공 작업실을 둘러보고 있는데 자칭 바리스타인 친구가 드립 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왔다.

 

  "신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The coffee'입니다. 하하.' "안 그래도 회의실에서 나는 커피 향 때문에 커피가 먹고 싶었는데, 고마워요. 근데 코나 커피가 남아 있었나요?" 나라가 커피 한모금을 마신 후 말했다.

 

  "어제 신선생님이 가시고 난 후 윤 팀장님이 바로 가져가, 어디에 숨겼는지 몰랐는데 오늘 내어놓더라고요. 하하." 회의실에서 윤 팀장이 일러바친다고 바리스타 친구에게 눈총을 쏘으고 있었다.

 

  작업장을 둘러보니 팀원 간에 실력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았다. 계획했던 전시품목과 수량을 맞추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았고, 더우기 우드 카빙과 수재펜 제작 체험 행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추가된다면 더욱 여유가 없어보였다.

 

  윤소이 팀장의 어두운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작년에 비해 늘어난 팀원, 빈둥이공동체마을이 전폭적으로 지원한 좋은 장비들과 공간, 그리고 이사를 하고 난 후의 첫번째 목공 전시회라, 다들 관심과 기대가 큰 편인 것 같았다.

 

  이를 모를 이 없는 윤 팀장이 느끼고 있을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신나라는 윤 팀장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라도 한쪽 구석의 빈 공간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작업에 열중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맞은편 끝 작업대에서 여럿이 모여 뭔가를 의논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한 친구가 빵 도마를 만들고 있었다. 메이플나무 목재로 만들었는데 특이한 무늬로 만들어볼 것이라고 옹이가 있는 부분을 포함해서 제작 중인 것 같았다.

 

  다들 나중에 마무리할 때 어려울 것이라고 만류했지만, 계속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이제 표면의 마무리 단계에서 벽에 부딪힌 것 같았다. 대패질을 하니 옹이 뜯겨나가고, 사포질을 하게 되면 긁힌 자국이 남아 어려운 상황에 빠진 듯하였다.

 

  다들 모여 머리를 짜내어 보는데 뾰족한 벙법이 없는 듯, 말만 무성하고 시간이 쫓겨 분위기가 안좋아지는 것 같았다. 윤 팀장은 회의실에서 다른 이들과 회의에 집중하고 있어서, 작업장의 상황을 돌볼 여유가 없어 보였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신나라가 물었다. "이 친구가 독특한 빵도마를 만든다고 옹이가 있는 나무를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마무리할 때 힘들거라 다들 만류했는데 ....." 상황을 설명하는 친구의 말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고 해당 작업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풀이 죽어 있었다.

 

  "제가 좀 봐도 될까요?" "예, 선생님,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남과 다른 개성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럴 때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기술도 배우고 실력도 쌓이는 거예요." 신나라가 괜찮다는 듯 안심을 시키며 말을 했다.

 

   신나라는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오래된 듯한 스크레이퍼(편집자주 : 대패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나뭇결을 깍아내는 목공 기구)였다. 문제의 빵도마를 작업대에 놓은 후 그 카드로 옹이의 표면을 거침없이 대패질 하듯이 팔을 재빨리 움직였다.

 

  그러자 그 옹이부분의 표면이 뜯어지지도 않고 긁힌 자국도 없이 부드럽게 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몇 분이 지난 후 나라는 빵도마를 눈높이로 들어 올려 한 눈으로 표면을 검사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주위의 젊은 친구들은 탄성과 함께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또 이 친구들이 선생님께 폐를 끼쳤네요" 어느새 윤 팀장이 옆에 와 있었다.

 

  "아니예요. 윤팀장이 바쁜 것 같아서 제가 물어보았어요." "오일로 마감을 잘하면 무늬가 좋아서 색이 잘 살아날 것 같아요."

 

  "옙, 고맙습니다. 선생님" 조금 전까지도 기가 죽어 어쩔 줄 몰라하던 친구가 문제를 해결하고 칭찬까지 받으니, 얼굴이 상기된 채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나라는 목공 작업실에서 젊은 친구들과 자기자신들의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