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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여전한 차별·언어폭력·체벌…학생 70% “인권조례가 뭐예요?”

pulmaemi 2019. 8. 13. 16:38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7년 - ①말뿐인 학교현장

전국진보동아리총연합회
서울 내 1742명 온라인 설문
“조례 지켜지지 않아” 70%
두발 등 규제로 개성 지우고
특정 종교 강요하며 벌주기

“선생님들이 SNS 모니터링”
권리 침해에도 항의 어려워

서울시내 중·고교 학생 10명 중 7명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있는지도 몰랐다. 이들은 학교 현장에서 조례가 지켜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학교에서 성차별, 폭언, 체벌, 강요, 혐오 등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울시가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실에 자리 잡지 못했다.

전국중고등학생진보동아리총연합회는 지난 7월14일~8월3일 서울시내 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2019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실태조사’를 벌였다. 서울시내 중·고교 711곳 중 432곳에서 학생 1742명이 온라인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조사 결과 학생인권조례를 모른다는 응답은 69.9%(1218명)로 알고 있다는 응답 30.1%(524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하지만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 대부분인 96.4%(1680명)가 조례에 찬성한다고 했지만, 현실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어 불만스럽다는 응답이 70.3%(1224명)에 달했다.

학교는 학생에게 차별을 가르친다. 경기여자상업고 ㄱ양은 교사에게 “여자애가 왜 그러고 다니냐” “나중에 아기 가질 애들이 왜 그러냐”는 말을 들었다. 성소수자인 ㄱ양은 자신의 성적지향을 부정당하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5조인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성별, 종교, 나이, 지역, 성적, 정치성향, 신체조건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하는데, 이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응답(중복 포함)한 학생은 41.6%(725명)였다. 차별의 이유로는 성적이 29.6%(515명)로 가장 많았고 성별 19.6%(341명), 신체조건 11.7%(204명), 징계기록 9.6%(168명) 등이 뒤를 이었다.

교사의 폭력도 사라지지 않았다. 상일여중 ㄴ양은 교사가 수업 중에 분필을 던져 맞히고 창피를 줬다고 했다. 급식시간에 차례를 지키지 않았다며 한 교사가 발로 엉덩이를 걷어차기도 했다. 강일중 ㄷ양은 한 교사가 자주 단체기합을 주고 여학생에게 성희롱을 한다고 했다. 학교에 항의해도 “여학생들이 딸 같아서 그랬다”며 며칠간의 정직 처분으로 끝났다고 했다. 욕설을 하거나 외모평가를 하는 교사도 있다고 했다. 조례 제6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두고 52.0%(906명)가 교사에게 체벌, 기합, 언어폭력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언어폭력 27.4%(478명), 손들기 등 간접체벌 25.7%(447명), 단체기합 24.7%(430명), 체벌 16.6%(289명) 순이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이나 방과후 보충학습이 이뤄졌다. 혜원여고 ㄹ양은 기숙사 학생은 무조건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성적이 우수한 ‘심화반’ 학생들도 강제로 방과후 보충학습을 신청해야 하고 신청하지 않으면 교사가 교무실로 따로 불러 면담한다고 했다. 조례 제9조 ‘정규교육과정 이외의 교육활동의 자유’에 대해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응답은 5.3%(92명)였다. 11.8%(206명)가 강제적인 방과후 보충학습을 받았고, 7.5%(130명)가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학습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했다.

학생은 교복 안에 개성을 숨겨야 했다. 명덕여중 ㅁ양은 동복으로 검정 스타킹·흰 양말·셔츠·조끼·넥타이·재킷·명찰 중 하나라도 갖추지 않으면 벌점을 받는다고 했다. 이 학교는 계절별로 신어야 하는 스타킹 색도 정해져 있다. ㅁ양은 “셔츠가 목을 죄는 것이 답답해 단추를 푼 것이 발각되면 교사가 엄청 화를 내고 넥타이도 끝까지 올려 매라고 한다”며 “교사가 클렌징 티슈를 갖고 다니면서 화장한 학생이 있으면 붙잡아 얼굴을 세게 문질러 지운다”고 했다. 조례 제12조 ‘개성을 실현할 권리’에 대해 83.3%(1451명)가 학교에서 두발을 규제한다고 답했다. 92.8%(1617명)가 복장을 규제하고, 75.4%(1314명)가 화장을 규제한다고도 했다. 제13조 ‘사생활의 자유’에 대해 60.3%(1050명)가 소지품 검사·압수를 경험했고, 8.5%(148명)가 교사가 일기장 등을 동의 없이 읽은 적이 있다고 했다. 77.0%(1342명)는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수거한다고 했다.

특정 종교를 강요하고 벌을 주기도 한다. 한국삼육중 ㅂ양은 매주 금·토요일 예배에 출석해 설교를 들은 뒤 ‘설교장’을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거나 설교장을 쓰지 않으면 체벌을 받거나 ‘앉았다 일어나기’ 등 간접체벌을 당한다고 했다. ㅂ양은 “한 목사는 ‘자신이 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폭력을 행사하고 동성애에 혐오감을 심는 수업을 한다”고 말했다. 조례 제16조 ‘양심·종교의 자유’에 대해 40.1%(698명)가 양심에 반하는 반성문 등을 강요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특정 종교를 강요받았다는 응답도 14.7%(256명)로 나타났다. 예배·법회·기도 등을 강요받았다는 응답이 10.2%(178명)로 가장 많았고 특정 종교 과목 수강이 5.9%(103명), 특정 종교의 장시간 언급이 5.8%(101명), 특정 종교 비방·선전이 4.3%(75명)로 뒤를 이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하기 어렵다. 서울디자인고 ㅅ양은 “교사들이 학생을 강당에 모아놓고 ‘학교에 대한 안 좋은 글을 쓰면 명예훼손으로 신고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고 했다. 광신고 ㅇ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익명 제보 페이지에 올라오는 모든 글은 선생님들이 항상 모니터링 중”이라며 “만약 조금이라도 학교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누가 썼는지 찾아내려 한다”고 말했다. 조례 제17조 ‘의사표현의 자유’을 두고 18.1%(316명)가 학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제재나 차별을 받았다고 했다. 주로 페이스북·트위터 등에 올리는 글을 교사가 검열·색출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서울시는 2012년 1월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했다. 조례 제38조에 따라 ‘학생인권옹호관’ 1명을 두고 있다. 학생인권옹호관이 학생인권 침해가 있다고 판단하면 해당 학교에 시정이나 조치를 ‘권고’한다. 학생인권옹호관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만 할 수 있다. 학교가 권고를 따르지 않아도 학생인권옹호관이 직접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교육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다시 권고할 수 있을 뿐이다.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인권 실태조사, 인권침해 사안 조사, 인권침해와 복지에 대한 상담, 학생인권 정책 연구 등을 맡는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차별, 체벌, 사생활, 복지, 양심 문제 등으로 제기된 학생 권리 구제 신청 건수는 2015년 218건, 2016년 236건, 2017년 223건, 2018년 86건이었다. 학교에 권고 조치가 내려진 건수는 2015년 24건, 2016년 46건, 2017년 16건, 2018년 13건이었다. 조사가 부적절하다고 각하된 건수는 2015년 1건, 2016년 14건, 2017년 26건, 2018년 16건이었다. 대부분은 기각, 취하, 학교조치 등의 이유로 권고나 각하 이전에 종결 처리됐다.

◆실태조사한 학생들“조사결과 교육청 전달 인권교육 촉구하겠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실태조사를 한 학생들은 조사 결과에서 확인한 가장 큰 문제로 ‘학생들이 조례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점을 꼽는다. 학생들은 오는 12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교육청에 전달할 예정이다.

전국중고등학생진보동아리총연합회 인권위원장인 태릉고 2학년 유지선양(17)이 실태조사를 주도했다. 유양은 “학생 대부분이 학생인권조례를 모르기 때문에 학교가 조례를 어기는 교칙을 제정할 수 있는 것”이라며 “서울 중·고교의 절반이 넘는 학교가 학생인권조례를 지키지 않는다는 결과는 놀랍지 않다. 교육청이 나서 조례를 학생들에게 알리고 인권교육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은 교육청 차원에서 일괄 실시하는 실태조사에 학생들이 성실하게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직접 조사에 나섰다고 했다. 교육청의 조사는 문항이 많고 복잡한 데다 학생들이 불신해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봤다. 또래 눈높이에 맞는 질문을 만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참여 학생을 모집했다. 이들은 조례와 달리 위반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학생인권법’을 제정하고 ‘청소년 투표권’을 보장해달라는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중·고생 촛불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2017년 4월 이 모임을 만들었다. 사회토론 동아리 ‘너랑낭랑’, 역사공부 동아리 ‘사계’, 시사영상 동아리 ‘미생’이 있고 서울, 성남, 춘천, 구리·남양주·양평, 수원·용인, 고양·파주, 천안·아산, 인천·부천·시흥 등 8개 지역 지부에서 250여명이 참여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8090600045&code=940401#csidxb597c5b953c0b5b82f6327cf5e5e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