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이·웃기는 아이…
다 섞여야 창의력 길러져
미국, 영재들 한곳에 안 둬
“자사고(자율형 사립고)처럼 성적이 좋고,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환경은 창의력에 완전 ‘독약’입니다. 아이들의 창의력이 길러지려면 ‘이상한 애’부터 ‘웃기는 애’까지 온갖 애가 다 섞여 있는 환경이 필요해요.”
올해 한국 교육계의 가장 큰 이슈는 단언컨대 ‘자사고’였다. 한쪽에서는 “고교서열화를 부추기는 자사고·특목고를 전부 폐지해야 한다”고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월성 교육(학생수준에 따라 교육환경을 달리해 효율성을 높이는 교육)을 위해서는 자사고가 필요하다”며 존치를 외쳤다.
영재·창의력 교육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로 손꼽히는 미국 윌리엄메리대학교의 김경희 교수는 단호하게 “자사고는 수월성 교육과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해가 된다”며 “자사고뿐 아니라 영재고, 과학고 같은 특목고도 다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을 방문한 김 교수를 7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교수가 노벨상 수상자들의 교육환경 등을 연구한 끝에 얻어낸 결론은 “높은 아이큐(IQ)와 창의력은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아이큐가 낮고 공부를 못해도 한 가지를 독창적으로 잘할 수 있는 것이 창의력”이라며 “자사고·특목고는 아이들의 창의력이 혁신으로 발현될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서 교류해야 독특한 것, ‘혁신’이 나오는 거거든요. 그런데 자사고는 대체로 성적이 좋고 집안 환경이 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환경인데, 이런 환경을 수월성 교육이 가능한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미국에도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명문고등학교가 있지만, 한국의 자사고와는 다르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특화된 것을 가르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지, 상급 대학 진학을 위해서 적성과 상관없이 명문고라는 곳에 맹목적으로 아이를 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과학영재학교’로 잘 알려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 대해 묻자 “한국인들은 그 학교를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영재학교로 여기지만, 토머스 제퍼슨은 원래 과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고 답했다. 또 “미국인들은 ‘영재’를 한 학교나 한 집단에 모아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윌리엄메리대학교는 영재를 가르치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곳으로 이름난 대학인데, 이곳을 졸업한 교사들은 추후 소수의 명문고가 아닌 일반고에 있는 영재의 심화학습을 돕는다고 한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시험 위주의 입시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양과 서양 학생들의 시험성적, 창의력 등을 비교분석한 연구를 진행했다. 곧 학술저널에 실릴 이 결과에 따르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같은 시험점수는 동양학생이 더 높지만, 창의력지수나 독창성 등은 서양학생이 더 높다. 김 교수는 “시험은 진짜 실력과는 상관이 없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하려면, 소수의 자사고가 아닌 모든 학교가 교사와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학교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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