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삼성을 묻는다 5] 사안별 대책 안 돼, 정경유착 금지 기본법 만들고 강력한 제재 필요
2016년 12월6일 재벌 총수 9인이 국회청문회에 증인으로 섰다. 대통령의 헌정질서 문란과 국정농단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청문회로 전두환 정권의 일해재단청문회 이후 28년만이다. 국회의 탄핵결의가 이루어져 헌법재판소 최종판단을 남겨둔 상태에서 중요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대통령의 헌정질서 문란행위로 볼 만한 상황이 있었느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러한 헌정질서 문란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법률위반사실들이 있었느냐이다. 물론 구체적인 법률위반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탄핵결정은 가능하다. 필자가 보기엔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보더라도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고도 남는다.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권력자들의 강요·직무유기·직권남용·뇌물수수· 제3자 뇌물공여를 뒷받침하는 사실들이 수없이 제시되었다.
필자는 수많은 범죄 사실들보다 재벌총수들의 정경유착과 범죄행위를 이글에서 지적하고자 한다. 지난 청문회는 재벌총수들의 범죄사실들(배임·횡령·뇌물수수·제3자 뇌물공여)의 성립여부의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리였다. 재벌총수 9인 등에 대한 증인심문에서 대통령과 기타 고위공직자들의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을 포함한 심각한 헌정질서문란 사실들이 생중계로 국민들 앞에 증명되었다.
이날 청문회 조사위원들의 질문은 삼성전자 이재용부회장에게 집중되었다. 이재용은 단순한 증인으로서가 아니라 뇌물죄 내지는 제3자 뇌물공여죄의 혐의를 받고 있는 입장이었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앞두고 있는 이재용의 답변은 핵심적인 질문에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및 정유라에게 수백억의 삼성전자의 자금을 지원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한 것이라고 사후에 보고받았다”는 것이었다. 제3자 뇌물공여죄 및 횡령 배임죄를 피해가기 위한 발언으로 일관하였다. 이재용의 이러한 답변태도는 사전에 법률자문을 받은 듯 했다.
어떤 이들은 삼성 이재용을 권력의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기부를 한 피해자인 것처럼 말한다. 즉, 권력이 먼저 기획하고 재벌이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과는 또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삼성은 은근히 이러한 국정농단을 부추겼는지 모른다. 삼성과 재벌은 권력을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이해와 요구에 맞게끔 길들일 것인가를 놓고 항상 고민해왔고 그 와중에 최순실이라고 하는 아주 적당한 사냥감이 등장한 것이다.
어찌되었든지 사건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착잡하였다. 그동안 정경유착 근절과 재벌개혁을 위해 힘쓴 노력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허탈한 심정을 달래면서 다시금 그동안 삼성의 불법승계과정의 흐름을 정리하여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느꼈다. 문제의 본질로부터 해결책을 찾고 법적 제도적 대안을 만들어 나가는 것만이 무너진 한국의 민주주의와 법치를 회복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합병 전까지 일련의 과정
1. 1996년부터 2013년까지의 과정
이재용은 43억을 종자돈으로 에버랜드, 삼성SDS, 제일기획, 삼성엔지지어링, 에스원의 주식을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형식으로 헐값에 배분받아 제일기획, 삼성엔지지어링, 에스원 3개회사의 상장과 더불어 약 600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두었다. 이재용은 이 돈으로 1997년 3월삼성전자 사모전환사채 90만주를 주당 5만원으로 할인받아 약 450억원에 삼성전자가 발행한 사모전환사채를 통해 주식을 인수하였다(당시 지분율 0.78%). 1998년 말 에버랜드는 주당 약 9천원에 20%의 삼성생명 지분을 획득하였다. 이를 통해 이재용은 사실상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의 최고 주주가 되었고 주요계열사를 장악하게 되었다(2016년 9월30일 현재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지분 19.35%(3868만8000주)를 갖고 있다.
2. 2014년부터 2016년 12월 현재까지의 과정
(1) 제일모직은 삼성SDI로 흡수합병하여 법인 해산하고, 2014년 8월: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변경함.
(2) 그리고 2014년 12월에버랜드는 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하여 상장됨
(3) 2015년 5월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이사회 의결. 2015년 7월11일: 국민연금 이사회 합병승인. 2015년 7월17일 :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 합병
(4) 2016년 11월30일 현재 이재용은 삼성물산 지분 17.08%(3267만4500주. 2016.12.7일 현재 주가 13만원=4조2400억원), 삼성SDS 지분 9.20%(711만6555주), 삼성전자 0.6%(84만403주)(삼성물산이 4.25%, 삼성생명이 7.55%로 간접지배) 보유.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이하 물산)의 합병과정과 그 법적 문제점
제일모직과 물산의 합병과정을 보면 크게 3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 합병비율의 적정성, 둘째, 국민연금의 합병찬성의사결정과정, 셋째, 이재용의 지배구조의 강화이다. 그리고 그 법적 문제점으로는 정경유착이 가져오는 법치주의의 파괴에 있다. 이하 순서대로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1. 합병비율의 부당성
(구)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 대 물산 0.35로 정해졌다. 이와 같은 비율은 적정한가? 결론적으로 물산에 매우 부당한 비율이다. 우선 일성신약 등의 주주소송에서 서울고법이 내린 판결문에서는 주주들에게 제시된 우선매수 청구권의 행사가격이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한 마디로 합병비율을 계산할 때 사용하는 내재가치 및 영업이익이나 계열회사 지분가치평가, 미래 성장성 등의 중요한 지표들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유력한 견해에 따르면 제일모직과 (구)삼성물산의 내재가치만도 반영했어도 합병당시 모직은 주당 약 9만6700원 물산은 주당 약 11만2000원으로 평가된다. 합병비율이 물산에 현저하게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의 이사들이 이에 대한 조사를 게을리 하거나 바로잡지 않았다면 이는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위반임과 동시에 충실의무 위반으로 배임죄를 구성한다.
2. 국민연금 합병찬성 의사결정과정과 국민연금의 손해
엘리엇이나 일성신약 등은 합병에 반대하였지만 합병여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하였다. 만약 국민연금이 합병에 7월17일 주주총회는 어떠한 결론이 났을까? 유력한 견해에 따르면 당시 주주총회는 83.57%의 주주가 참석하였고, 이 중 69.53%가 이 사건 합병 안에 찬성하여 합병 안이 가결되었다. 11.2%를 소유하고 있던 국민연금공단이 반대하였다면 이 사건 합병 안은 의결정족수 미달(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미달)로 부결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결정된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의 주주총회에 국민연금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서면으로 찬성 의견을 전달했다. 연금공단의 합병찬성결의는 7월10일 개최된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되었는데, 검찰수사와 청문회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볼 때 그 결정이 실체적으로나 절차적으로 매우 비정상적이고 위법하다고 판단된다. 삼성이 합병 의결을 위해 청와대 등을 통해 국민연금을 압박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2015년 7월7일 국민연금의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이는 삼성 합병 찬성을 결정한 투자위원회가 열리기 3일 전이고 최광 전 이사장에겐 보고조차 안 된 만남이었다. 그리고 2015년 7월25일 박근혜·이재용 독대가 이루어졌다. 그 후 삼성전자는 2015년 10월경 장시호에게 5억5000만원을 지원하고 2016년 3월에 10억7800만원을 추가로 지원했다. 그 외에도 삼성은 최순실씨 모녀가 소유한 독일 법인 코레스포츠(이후 비덱스포츠로 개명)에 280만유로(약 35억원)를 직접 지원하고, 최씨 딸 정유라의 말 구입비 명목으로 319만유로(약 43억원)를 또 송금한 사실이 드러났다. 삼성은 두 재단에 대한 출연금(204억원) 등에 더해 3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합병의 대가로 치룬 셈이다. 이들의 기부는 결코 정상적인 기부라고 할 수 없다(삼성은 사내유보금으로 박근혜 정권과 최순실의 비위를 맞춘 반면, 삼성반도체 등 직업병 피해자들에게는 500만원을 준 것에 그쳤다). 이러한 위법한 합병으로 인하여 국민연금은 최소 2000억에서 6000억 사이의 손해를 보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결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합병의 케넥션은 이재용(청탁인. 삼성전자 부회장)-박근혜(재단에 기부요청. 대통령)- 안종범(거간꾼, 정책조정수석)-문형표(당시 보건복지부장관)-홍완선(청탁집행인,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으로 이어진다. 종합하면 적극적이었든 소극적이었든 이재용의 청탁과 청와대의 외압으로 국민연금은 합병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3. 이재용 지배구조의 강화
합병의 결과 삼성그룹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은 매우 강화되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재용은 2016년 11월30일 현재 삼성물산 지분 17.08%(3267만4500주. 2016.12.7일 현재 주가 130,000원= 4조2400억), 삼성SDS 지분 9.20%(711만6555주), 삼성전자 지분 0.6%(84만403주)를 가지고 있다.그리고 생명(7.55%)과 물산(4.25%)의 지분을 우회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특히 삼섬그룹의 핵심회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가의 지분과 우호지분을 합치면 지배가능한 지분은 모두 18.44%에 이른다. 과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지분으로 삼성전자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심지어는 삼성전자의 돈을 자신의 금고인 마냥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것이다.
합병과정에서 드러난 대통령과 이재용의 범죄사실
현재까지 드러난 범죄사실들로 보면 대통령의 직권남용과 이재용의 범죄사실은 명확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재용에게 스포츠재단 등을 지원해 달라고 부탁한 사실”, “삼성전자가 불법적인 자금을 최순실 재단과 정유라에게 수수한 사실” 등이 있고 그 반대급부의 성격으로 “이재용과 삼성에게 재산적 이득을 가져다 주는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객관적 증거들과 정황으로 볼 때 대통령의 뇌물죄 직무관련성은 인정된다. 재단이나 최씨 측근들에게 재벌 총수들의 지시 내지 비서실(미래전략실) 또는 수임받은 자의 지시로 수백억의 금품이 수수된 점, 대통령 스스로 재단에 대한 ‘지원’을 총수들에게 부탁했다고 발언한 점,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재벌들에게 어느 정도의 재산적 이득이 존재한다는 점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눈여겨 볼만한 것은 2015년 10월23일 전후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백억의 출연을 한 후 대통령이 재벌들의 절실한 요구였던 노동법 개정 문제에 대하여 27일 직접 지시를 내린 내용은 결과적으로 청탁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삼성의 경우를 보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2015년 7월24일 박 대통령을 단독 면담하였다. 그 후 삼성은 2015년 6월부터 10월에 걸쳐 비덱스포츠 지원(정유라 말등 35억, 장시호 5억, 독일승마경기장 구입 28억, 승마협회 지원 186억 등),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10월약 204억), 약 458억 원을 뇌물로 기부하였다. 삼성은 그 대가로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 따른 이재용의 지분가치 증가액 2000억~6000억(추정) 정도의 결과를 얻었고 나아가 추가로 2016년 9월바이오/헬스 등 주력분야 세액공제 확대에 따라 수천 억원의 이익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삼성, 현대자동차 등 5대 주요 대기업들은 총 808억원을 뇌물로 주고, 약 3조 7858억원의 이익을 얻어, 결과적으로 약 3.7조원의 순이익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과제 1. 금융계열사를 동원한 지배력 확대 방지
현재 금융기관이 행사할 수 있는 비금융기관의 의결권한도는15%이다(공정거래법 제11조). 최소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금융기관이 합산하여 특정 비금융계열회사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의 수는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5로 낮출 필요가 있다.
과제 2. 일감몰아주기 규제강화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계열회사의 지분요건을 상장회사 30%, 비상장회사 20% 규제하고 있는데 기업들이 이를 교묘히 회피하고 있고 또한 총수일가가 직접적으로 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고, 광범위한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어 규제대상의 범위 자체가 넓지 않 이의 실효성이 매우 의심스럽다. 따라서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하여 중소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이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김동철 의원 대표발의한 대로 지분요건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른 주요 주주의 요건인 발행주식 총수의 10% 이상으로 강화하고 예외사유를 대폭 축소하여 일감몰아주기 규제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공정거래법일부개정법률안, 채이배 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제1450호)
과제 3.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보유 요건 강화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자회사 주식 의무 보유 하한선이 40% 이상(상장회사 20%이상)으로 오히려 지배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고 경제력 집중을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에 그 하한선을 45% 이상(상장회사 35%)로 상향할 필요가 있다.
과제 4. 기타 제도 개혁
위와 같은 문제 외에도 공익재단을 이용한 세습과 지배력 확대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되는 자사주 문제 등을 해결할 법률적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절차상으로는 재벌총수의 불법적 경영과 반법치적 지배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이사제도 내지(경영참가제도) 주주권 강화를 위한 다중대표 소송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과제 5. 정경유착 금지 기본법(또는 정경분리 기본법) 제정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사건에서 또다시 불거졌듯이 정경유착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혁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사안별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정경유착금지 기본법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법에서 기본적으로 정치권력이 기업에 간섭할 수 없고 정치와 경제내지 기업행위는 명백히 분리됨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정치권력이 기업에게 특별한 사유없이 불이익을 주려하거나 또는 준 경우 내지 부당하게 간섭하여 압력을 행사하려하거나 한 경우 또는 기타 법률에 반하여 간섭하려하거나 한 경우(또는 반대로 기업이 정치권력에게 동일한 행위를 한경우도 포함)를 대상으로 이를 금하거나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법률에 위반하면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과 부당 이득금이나 재산적 이익을 얻은 금액 내지 가치의 100배 이상의 형사벌금을 물게 하여 정경유착을 완전히 근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승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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