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질환·감염병

돼지독감이 1억명을 죽일 가능성은?

pulmaemi 2009. 4. 28. 13:43

- 돼지독감과 스페인독감 그리고 최신 소식

(서프라이즈 / Crete / 2009-04-28)


이번 돼지독감인 H1N1이 새로운 변종이어서 관련 정보가 지독하게 제한적인 건 사실이지만, 인류가 이런 류의 독감 바이러스에 전혀 경험이 없던 건 아닙니다. 아주 대표적으로 어마어마한 전염력과 살상력(?)을 보인 1918년에 있었던 소위 스페인 독감이란 녀석이 있습니다. 좀 엽기적인 이 녀석 덕분에 당시 최소 2천만 명에서 최대 1억 명 정도의 사람이 사망했죠. 물론 이런 높은 사망률이 눈길을 끌기는 하지만, 한 가지 더 눈길을 끄는 점은....

 

이번 돼지독감으로 인한 멕시코의 사망자들이 노약자나 어린아이들처럼 환절기에 주로 감기나 독감에 걸리는 취약계층이 아닌 주로 청소년에서 청년에 이르는 젊은이들이란 얘기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출처: 멕시코 보건부 장관 발언 -FoxNews)

지금 소개해 드릴 1918년의 스페인 독감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였죠. 주로 젊은이들의 사망률이 엄청 높았습니다. 한번 도표를 보시죠.

 스페인 독감 사망자 연령분포 (출처: Wikipedia)

 

이 도표에서 점선은 일반적인 독감 환자들의 사망 패턴입니다. 굵은 실선이 스페인 독감의 사망 패턴이죠. 물론 양쪽 다 노약자나 유아들의 사망률이 높기는 하지만 굵은 실선, 그러니까 스페인 독감의 경우 중간의 불뚝 솟은 산처럼 20대를 중심으로 높은 사망률을 보입니다. 특이하죠?

 

대부분 질병에 저항력이 가장 높을 나이의 청년들이 더 높은 사망률을 보였단 말이죠. 이해가 살짝 안 되실 수도 있지만, 이런 현상이 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이토킨 발작(Cytokine Storm: hypercytokinemia)이란 것이 있는데……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과다하게 외부의 침입자에 대응할 때 발생하는 병입니다. 그러니까 외부에서 침입자가 들어오면 사이토킨이란 녀석이 일종의 척후병이 되어서 후방(?)의 T-cell이나 마크로파지 같은 방어병력들을 불러오고…… 일단 이렇게 동원된 방어병력들이 또다시 척후병을 더 불러오는 피드백 시스템이 우리 몸에 있죠.

 

그런데 이 피드백 시스템이 제대로 제어가 되지 않을 경우, 끝도 없이 척후병과 방어병력의 동원이 이루어지고 결국 이런 과도한 동원은 해당 조직과 장기에 손상을 불러 일으키죠. 가령 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체액과 마크로파지가 쌓여 결국 기도를 막고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아무튼…… 1918년에 있던 스페인 독감이 면역 시스템이 가장 왕성한 젊은이들에게 맹위를 떨친 데는 이 독감 바이러스가 이런 식으로 면역체계에 혼란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인 거죠. 역설적이지만 가장 왕성한 면역력이 있는 집단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는…….


그렇다면, 현재 멕시코에서 관찰되는 돼지독감 사망자 중 높은 비율의 젊은이가 포함된 현상이 설명이 가능합니다.

 

또 한 가지……

스페인 독감은 1918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원래 독감이란 게 날씨가 좀 쌀쌀해져야 전염도 잘되고 환자들도 많이 생기는 법이죠. 스페인 독감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일단 도표부터…….

 

 1918~1919년 사이 유럽과 미국에서의 스페인 독감 사망자 도표 (출처: Wikipedia)

 

이 도표는 1918년 6월부터 1919년 3월까지의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 통계입니다. 보시다시피 1918년 6월부터 9월까지 스페인 독감의 사망자수는 낮은 상태를 보입니다. 그러다 슬슬 날씨가 쌀쌀해질 무렵… 그러니까 10월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사망자가 늘어납니다.

 

지금이 몇 월이죠? 내일모레면 5월이죠… 그런데 멕시코에서 확인된 돼지독감 사망자수가 이제 100명을 넘었습니다. 물론 조만간 200명을 넘는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고요.

 

많은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자신이 믿는 신께 불평을 늘어놓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돼지독감의 발생이 3월부터 시작되어 이렇게 국제적인 시선을 끌어낸 시점이 4월이라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다행인지 깨닫고 있을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네요. 적어도 올 9월까지 돼지독감의 전염과 발병은 상대적으로 낮은 상황이 계속될 테고 그 기간 동안 의학계는 돼지독감을 연구할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귀중한 시간을 벌고 있는 셈이죠….

 

만약 이번 돼지독감이 9월경에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일이 터졌다면 지금보다 엄청난 파괴력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번 돼지독감은 천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아직 4월인데 멕시코에서 몇 주 만에 100여 명이 넘는 젊은이가 사망했다는 얘기는 이번 돼지독감이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할 경우 올가을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하죠.

 

스페인 독감의 예가 있으니 최악의 경우 몇천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시는 분들이 계실 테지만…… 그때와 지금은 아주 큰 차이가 있죠. 일단 약효가 100%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CDC가 돼지독감의 예방과 치료에 추천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희망을 좀 하자면 올 8~9월까지 이번 돼지독감 백신을 대량 생산해 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보고요….

 

또 1918년이라면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이던 때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청년들의 사망률이 높은 스페인 독감이 전염될 너무나 좋은 조건들이 있었죠. 쓸만한 젊은이들은 모두 군대에 모여 있었으니까요. 또한 전 세계적으로 몇 년간 지속된 세계대전으로 각국이 전염병 예방에 힘을 쏟을 여력도 별로 없던 시기이고요. 반면에 현재는 세계적인 전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 대부분의 정부들이 정상적으로 방역에 힘쓸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죠.

 

아무튼, 너무 패닉에 빠져서 애들 학교도 안 보낸다고 하지 마시고…… 물론 학교 다녀와서는 손을 꼭 비누로 씻고 가능하면 가글링도 좀 하시고, 영화관이나 놀이동산 같은 곳은 당분간 출입을 자제하시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샌안토니오는 멕시코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따라서 최근에 멕시코에 다녀온 애들이 같은 반에 있는 경우도 허다하죠. 주변에서 오늘부터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봤습니다. 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죠.

 

마지막으로 미국의 최신 소식을 업데이트 해 드리자면……

미국에서 돼지독감으로 최종 확정 판정이 난 환자의 수가 한국시간 4/28 새벽으로 4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출처: CDC 돼지독감 공식 사이트) 뉴욕시에서 28명이 확정판정된 것이 컸죠.

 

지난 주말까지 어느 정도 느긋하던 미국 분위기가 주말을 끼고 급반전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아직 확정적으로 밝혀진 건 많지 않고요. BBC가 현장 소식을 전한답시고 올린 기사(링크)로 가뜩이나 정보가 부족한 현 상황에서 음모론에 불을 지른 느낌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사망자와 환자 수가 늘어나고 정부 차원에서 돼지독감으로 확정 판정이 되는 숫자도 늘어나니 딱히 음모론으로 눌러 놓기만 할 수도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아침 다이안 레임쇼에 출연한 미국 의사 2분의 설명이 많이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현재 발생한 돼지독감이 어느 정도로 치사율이나 감염률이 높은지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는 왜 그렇게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반면에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사망 환자가 보고되지 않고 있는지도 아직 과학자들은 이유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만 미국 CDC(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에서는 공식적으로 Tamiflu와 Relenza같은 항바이러스제가 이번 돼지독감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와 조사가 더 진행됨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도 있다는 꼬리표는 달아 놓은 상태입니다. (출처: CDC 항바이러스 약제)

 

또한, 현재 미국은 1200만 명 분량의 Tamiflu 재고가 확보되어 있습니다. (출처)

일단 이 정도까지가 주말동안 일어난 업데이트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제법 빠른 속도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기 때문에 중간 중간 변동 상황이 생기면 바로 업데이트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추가 1) 뉴질랜드의 경우 얼마 전에 멕시코를 다녀온 학생들 중에 감기증상을 보이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에 3명은 돼지독감이 아닌 걸로 판정이 났습니다. 아직 10명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요. (링크)

추가 2) 방금 전에 WHO에서 pandemic alert 레벨(범세계적 유행병의 위험 정도)을 4로 격상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조처를 취했다고 봅니다. (링크)

질문이나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의견의 경우… 반드시 링크를 달아주셔서 저도 크로스체크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시면 더욱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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