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직업 다 뿌리치고 자발적 가난 선택·작당 개업 문화 옷 입힌 열린 공간으로
초심 잃지 않고 1년 운영 "적게 벌어도 베풀며 살고파"
하강혁(34) 씨는 지난해 복합문화공간 작당(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을 시작하면서 아내와 함께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다.
대학에서 방사선학을 전공한 하 씨는 병원에서 한동안 일했다. 이후 의료장비를 판매하는 영업, 대기업에서 육상플랜트 감독관을 했다. 직업이 있고, 일한 만큼 돈도 벌었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갈증이 있었다.
그냥 이대로 흘러간다면 미래는 어두울 것만 같았다. 그는 내가 원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 씨는 "뭘 할까, 그게 뭘까, 고민하다가 건전한 놀이공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성인들이 스트레스 해소나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친구들과 술 먹거나 노래방 가거나 클럽을 가거나 대부분 쾌락위주다. 건전한 놀이문화가 없다 보니 성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저 또한 노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영업일을 하면서 접대 때문에 겪었던 갈등이 많았다. 그래서 잘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작당 하강혁 대표와 작당로고(작은 사진). /김민지 기자 |
작당이다. 한자로 풀이하면 만들 작(作)과 집 당(堂)을 합쳤다. 누구나 무엇을 만들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작당에선 여느 카페처럼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추가 비용을 내면 퍼즐이나 블록 등 게임이 가능하다.
지역 인디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공연이 열리며 비정기적으로 강연, 영화제 상영도 한다. 공간 대여도 가능하며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열리는 문화센터도 운영한다.
큰돈을 벌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만큼, 딱 필요한 만큼만 벌었다.
소비도 최소한으로 했다. 하 씨는 아내와 함께 가난을 스스로 선택했고 받아들였다. 그는 현재 가난하게 사는 삶을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하 씨는 "결혼 전에는 돈을 정말 잘 쓴 것 같다. (돈이 생기는)족족 썼다. 좋은 옷과 차를 사고 비싼 자전거를 샀다. 쓸 만큼 써봐서 그런가 지금은 거기에 연연하지 않는다.(웃음) 소비에 있어서 가난하려고 한다"면서 "마트에서 2000~3000원짜리 옷을 사도 내 몸에 맞고 깔끔하면 된다. 스스로 상대방과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런 부분에서 아내와 이야기가 잘 맞았다. 많이 벌어서 남에게 베푸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적게 벌더라도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작당은 지역민은 물론 예술인에게도 열려있는 공간이다.
작당은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 음악 레이블 디어스트림(대표 이선광)과 공동으로 지역 인디 음악가가 공연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저녁 열리며 적게는 30명, 많게는 60명의 관객이 몰린다. 공연비는 무료였으며 최근에야 음료값(5000원)을 받기 시작했다.
작당은 청년이나 인권을 위한 단체에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
사회적 약자 등이 차별받거나 소외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작당 공연 모습. /작당 |
하 씨는 사람들 만나는 걸 좋아하다 보니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모여서 작당모의팀을 만들었다. 좀 더 문화를 즐기고 느끼고 참여하기 위해서다. 팀원은 연극인, 음악인, 영화감독 등이며 현재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다.
작당을 연 지 1년이 조금 넘은 하 씨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공간을 알리고 지역 예술인과 친해지는 데 1년이 걸린 것 같다. 저 자신에게는 긴 싸움이다. 사실 작당을 하면서 후회한 적도 있다. 처음 생각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친구들이 돈 되는 장사를 하라면서 저를 이해하지 못할 때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 아내가 왜 이걸 시작했는지 초심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고맙다. 앞으로 작당을 누구나 편안하게 와서 쉴 수 있는 공간, 좋은 에너지를 얻어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노력하고 시도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둬줬으면 한다."
하 씨는 두 달 전부터 대리운전 기사도 병행하고 있다. 작당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하고 오후 9시부터 오전 2시까지는 대리운전 기사로 일한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고난이라는 파도가 없으면 인생이 재미가 없다. 대리운전 기사를 한다고 해서 작당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운영을 더 잘하고자 시작한 일이다"면서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작당을 알리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민지 기자 kmj@idomin.com 2016년 05월 23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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