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격랑 속의 한국경제

pulmaemi 2016. 5. 25. 09:32

8년 전 MB는 경제성장률 7% 달성이라는 허풍 공약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2.9%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자신이 진정으로 그런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믿지 않는데 그런 말을 했다면 사기를 쳤던 셈이고, 믿고 있었다면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바보였던 셈이다. 그 시점에서 한국경제가 7%의 성장률을 달성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6, 70년대에 한국경제가 이룩한 놀라운 성과는 엄밀히 말해 양적 성장의 결과였다. 그러나 양적 성장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더 많은 노동, 더 많은 자본을 동원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질적 성장으로 전환하는 일인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선진기술을 배워오는 데만 익숙한 우리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기술을 선도하는 역할로 탈바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맞고 있는 어려움의 본질은 바로 이 전환기적 난관이다.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수렁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질적 성장은커녕 구조조정이란 초미의 과제조차 해결하지 못해 허둥대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이 난국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은 허구한 날 남의 탓만 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조타수 없는 '한국호'는 격랑 속에서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MB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 역시 어려운 시기에 정권을 감당할 만한 깜냥이 되지 못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래도 경제만은 보수정권이 더 잘 운영한다는 통념은 두 정권을 통해 보기 좋게 뒤집어지고 말았다. 그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우리 경제가 어려움에 처한 핵심적 이유에 대한 무지에 있었다. 고속성장시대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 인식에 그들의 본질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이란 망국적 토목공사로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허황된 꿈이 그 좋은 예다. 질적, 구조적 변혁이 절실한 판에 토목공사에 돈 뿌리는 케케묵은 수법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었는지. 두 정권이 모두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것도 구태의 좋은 예다. 손톱만큼이라도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그것의 부작용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구태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주거비 때문에 집 없는 서민이 흘리는 눈물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경기부양책은 유일한 문제가 수요 부족에 있을 경우에만 효과를 갖는다. 지금 이 시점에서의 우리 경제처럼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경제에서 과도한 경기부양은 마약이나 마찬가지다. 환자의 병은 고치지 않고 마약으로 고통만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셈이다. 두 정권의 안이한 대응 때문에 우리 경제의 병은 계속 악화일로를 달려온 것이다. 구조조정 문제만 하더라도 호미로 막을 일을 이제는 가래로도 막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세계 경제의 상황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이 본질적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비전을 결여하고 있는 리더십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이제 재벌의 구미에 맞는 정책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 이 단계에서 우리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경제세력이다.

박근혜 정권은 남의 탓만 하면서 지난 3년이란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줄 것을 줘야 얻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기본상식 중 기본상식이다.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에게 누가 흔쾌히 협조할 생각을 하겠는가. 이런 불통과 아집의 정치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우리 경제를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간 데 한 점 의문의 여지가 없다. 4.13 선거혁명 이후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 대통령을 보면 앞으로의 2년도 암담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잃어버리고 만 8년에 2년을 더해 '잃어버린 10년'을 꼭 채우고 물러날 심산인가?


* 이 글은 <방송대신문,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실린 글입니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