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노무현 서거 7주기다. 난폭하지만 공평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라는 이름의 폭군은 사람에게서 기쁨도, 슬픔도, 노여움도 빼앗아간다. 하지만 노무현은 시간이라는 절대군주의 지배 밖에 위치하는 것 같다. 등장부터 극적이었던 노무현은 대통령이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서거 후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노무현이라는 키워드로 분류할 수 있다. 노무현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 노무현을 사랑했지만 사랑이 미움으로 바뀐 사람, 노무현을 미워했다 사랑하게 된 사람, 시종일관 노무현을 미워하는 사람 등등. 노무현은 김대중과도 다르다. 거의 모든 면에서 노무현보다 우뚝한 김대중은 사후 노무현처럼 논란의 중심에 서진 못하며, 김대중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도 노무현처럼 극단적이진 않다.
서거 7년이 지난 지금 노무현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복권됐다. 심지어 노무현을 증오하고 저주하고 조롱하던 새누리당조차 노무현에 대해 박하지 않은 평가를 할 정도다. (새누리 "盧 전 대통령, 통합정치 구현 위해 노력") 대권을 꿈꾸는 안철수의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상찬에 가깝다. "노 전 대통령을 새시대 선구자로 역사에 자리매김시켜야 한다", "기득권 정치에 도전을 시작한 분, 지역주의에 항거를 시작한 분, 너나 없이 정치공학을 말할 때 바보의 정치를 시작한 분, 소수 엘리트 정치가 아니라 시민이 참여하는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실천을 시작한 분"이라는 것이 노무현에 대한 안철수의 평가다. (안철수 "노무현을 새시대 선구자로 역사에 자리매김시켜야")
그러나 7년 전 이맘 때 노무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이승만보다, 박정희보다, 전두환보다 나쁜 자(?)였다. 노무현에 대한 미움과 불신과 실망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았고, 남녀노소를 불문했다.
검찰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건과 별 관련도 없는 의혹들을 발표했고, 언론은 연일 노무현 관련 추문들로 지면을 도배했다. 노무현은 아방궁으로 둔갑한 봉하 사저에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물리적으로 완벽히 유폐된 상태였다. 노무현에게 쏟아진 윤리적, 정치적, 사법적 비난은 일찍이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검‧언 복합체가 설정한 프레임에 포획된 채 노무현에게 돌을 던지던 대다수 시민들과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 같았던 진보진영과 진보언론들을. 당시의 노무현에겐 두 가지 선택만이 가능했다. 대한민국을 장악한 사익추구세력에게 끊임없이 모욕과 조롱을 당하는 욕된 삶을 견딜 것인가? 자결할 것인가? 노무현은 후자를 택했다.
노무현의 자결 이후의 변화는 너무나 극적이다. 그에게 쏟아졌던 분노와 미움과 실망이 고스란히 애도와 슬픔으로 변했다. 애도의 크기가 너무 크고, 슬픔의 깊이가 너무 깊어 당황스러울 정도다. 노무현의 죽음 이전과 죽음 이후의 시민들의 태도 변화를 보면서 나는 시민들의 속성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시민들은 어리석기도 하고 현명하기도 하다. 시민들은 비루하기도 하고 위대하기도 하다. 시민들은 속되기도 하고 성스럽기도 하다.
노무현은 죽어서 살아났다. 노무현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이었고, 노무현의 부활은 정치적인 부활이다. 나는 일신에 사사로움이 없었던 한 인간의 일회적 실존마저 희생양으로 삼키고 전진하는 역사가 두렵고, 노무현이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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