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유시민 “MB에게 동병상련, 아픔 느낀다”

pulmaemi 2009. 1. 23. 12:59

“마음의 평정 유지하고 국민과 소통 힘써야” 충고

 

▲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자료사진). ⓒ 시민광장 
[데일리서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과 장관들을 보면서 동병상련의 정, 또는 그와 비슷한 아픔을 느낀다”며 장관 체험담을 바탕으로 이 대통령과 장관들에게 충고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유 장관은 22일 발간된 계간 ‘광장’ 2호(2009년 신년호)에 기고한 ‘국정운영의 성패는 마음에 달렸다’란 글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 속에서 국민의 지지를 잃고 악전고투하는 이 대통령과 장관들을 보면서 저는 동병상련의 정, 또는 그와 비슷한 아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정치적 경쟁자가 겪는 고초가 때로 지난날의 패배를 위로하는 신경안정제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동장군보다 더 무섭고 냉혹한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그런 정신적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유 전 장관은 이 대통령과 장관들에 대한 충고를 이어나갔다.

그는 “국정운영 주체에게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며 야당, 언론, 시민단체들의 비판과 관련 “욕먹는 것을 일상 업무의 일부로 여겨야 한다,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업무에 임하라”고 충고했다.

유 전 장관은 특히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에게서 정책마다 사사건건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기색이 보인다”며 “‘저 사람들은 친북좌파들이라 원래부터 대통령을 싫어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유 전 장관은 “대통령에게 그렇게 보고하는 참모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며 “(친북좌파라 대통령을 반대한다는) 사실이 그렇지 않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섭섭하게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는 국민을 섭섭하게 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또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과 관련해 “절대 그렇지 않다”며 “국민의 공복이라는 직업적 자부심,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애국적 열정, 다른 부처나 다른 동료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경쟁심, 이런 것들이 공무원의 영혼을 구성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공무원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은 영혼을 감춘다”며 “대통령과 장관은 공무원의 지위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공무원의 영혼을 불러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 전 장관은 “대통령과 장관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자세로 사심 없이 일한다고 느낄 때, 공무원들은 비로소 자기의 영혼을 드러낸다”며 “ 공무원이 스스로 영혼이 없다고 푸념하는 풍경은, 그 공무원들을 이끌고 일하는 정부가 이미 절반쯤은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충고했다.

유 전 장관은 또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공직사회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면서 “소위 ‘친북좌파 적출’이나 ‘부역자 색출’이니 하는 섬뜩하고 살벌한 말을 해가면서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모욕하고 정치적 편향을 강요하는 것은 대통령과 장관이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을 잘 ‘섬겨야’”…국민연금법 처리 당시 ‘거짓말’ 일화 소개하기도

유 전 장관은 아울러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대통령과 장관이 공무원이나 국민들과 하는 소통 역시 새로운 정책의 목적과 취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정책의 배후에 깔린 정서적 동기를 나누어가짐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가야,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코드에 맞추지 못하는 공무원은 스스로 조직을 떠나라’는 취지를 가진 이 대통령의 공개적인 발언은 대통령 자신을 해치는 칼이 될 것”이라며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 말씀의 날을 무디게 하고 가시를 빼는 일에 더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유 전 장관은 “가시가 박히고 시퍼렇게 날이 선 말은 강력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소통을 통해 종국적으로 형성해야 할 정서적 교감과 공감의 기반을 파괴하기 때문이다”며 이 대통령의 언행 관리를 당부했다.

유 전 장관은 야당과의 관계와 관련 “비록 소수야당이라고 해도 야당은 힘이 있다, 무슨 일이 되게 만들기는 어려워도 무엇을 못하게 하는 데는 비상한 능력을 발휘한다”며 “대통령과 장관은 야당을 잘 ‘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때로 자존심이 상하고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밉더라도, 국민과 국정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며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대통령도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그러면서도 “야당에게 무작정 매달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성심을 다해 협조를 요청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야당이 소극적으로라도 협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위해 ‘거짓말’을 했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장관 재직 당시 유 전 장관은 공무원들을 시켜 지역 주민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한나라당 때문에 국민연금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기초노령연금법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퍼뜨렸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은 2006년 말 결국 두 법안을 통과시켰다며 “야당의 입장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성의 있게 협상했고, 야당이 노골적으로 법안 처리를 막는 데 정치적 부담을 크게 느낄만한 상황을 미리 만들어둔 덕분이었다”고 자평했다.

유 전 장관은 아울러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혁과제이지만 자체 동력이 없는 탓으로 가결도 부결도 되지 않은 채 정쟁의 바다 위에 표류하는 ‘무동력 법률안’”에 대해 무한책임 의식을 가질 것을 강조하면서 “당장은 부당한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국민들이 언젠가는 진심을 알아주게 된다, 이런 과제를 회피하면 정부는 언젠가는 국민의 냉엄한 비판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정을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자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잘 교감하고 소통하는 일이라는 저의 소견이 오류일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모쪼록 2009년에는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국민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잘 소통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고 글을 마쳤다.

민일성 기자

[관련기사]
▶ 이해찬의 전망 “2010년 MB 조기 레임덕 맞을 것”
▶ 계간지 광장 “MB정권은 비상등을 켜고 속도전으로 역주행 중”

다음은 유시민 전 장관의 글 전문.

국정운영의 성패는 마음에 달렸다

국가운영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이론적으로도 그렇겠지만, 실제 경험해 본 사람은 더욱 더 그 어려움을 절감합니다. 국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대통령은 말할 나위도 없겠고, 대통령의 대리인으로서 하나의 중앙 행정부처를 운영하는 장관의 업무도 애로사항이 하나 둘 있는 게 아닙니다. 중앙부처의 실국장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지방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갖가지 난관을 뚫고 업무를 수행합니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 속에서 국민의 지지를 잃고 악전고투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장관들을 보면서 저는 동병상련의 정, 또는 그와 비슷한 아픔을 느낍니다. 정치적 경쟁자가 겪는 고초가 때로 지난날의 패배를 위로하는 신경안정제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동장군보다 더 무섭고 냉혹한 경제위기는 우리에게 그런 정신적 사치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저의 장관 체험담인 동시에 오늘의 국정운영 주체들에게 보내는 충고와 격려의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분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도 이 글을 읽지 않거나, 읽었지만 제 조언과 격려를 전혀 참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독자들이 대통령과 장관들, 공직자들의 언행 배후에 있는 정서와 동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함께 적었습니다. 모쪼록 읽을 만한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평정심 : 공직자의 기본

국정운영 주체에게 가장 중요하고 또 어려운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통령과 장관이 국민을 섬기려고 진심을 다해 노력한다고 해도 국민들이 그것을 늘 알아주거나 인정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당은 무엇이든 일단 반대합니다. 언론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문제점과 부작용에 주목합니다. 그것이 야당과 언론이 가져야 마땅한 기본자세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그럴 때 감정이 상하는 것은 또 어느 정도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마다 비판 성명을 냅니다. 찬성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권력에 영합한다는 오해를 살까봐 아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관련 이익단체들은 어떤 정책이 직업적 자부심에 사어를 주거나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느끼면 정부 청사 앞에 모여 장관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합니다. 심지어는 장관의 집 근처 공원에 농성텐트를 치고 아파트 진입로에서 피켓시위를 하기도 하지요.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 대통령과 장관의 인격을 공격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저도 장관 하는 동안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대통령과 장관은 이런 사태를 만나더라도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화를 내지 말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감정에 휩쓸려 국정을 크게 그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직자 특히 고위공직자는 욕먹는 것을 일상 업무의 일부로 여겨야 합니다. 특히 장관은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제외하면 최고위 정무직 공무원이고 부처의 정책과 행정행위를 직접 책임지는 사람이라, 그만큼 욕을 더 많이 듣게 되어 있습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는 비판도 많지만, 더러는 부당하고 근거 없는 비난과 인신공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업무에 임해야 합니다. 열 받고 화 내봐야 자기만 손해이기 때문이지요.

장관은 무엇보다 먼저 대통령의 대리인입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했고, 대통령은 장관에게 그 권력의 일부를 위임합니다. 그래서 장관은 임명직이지만 공화정의 원리에 따라 간접 선출된 공직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장관이 마음의 평정을 잃고 품격 없는 언행을 하면 결국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장관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불충입니다.

장관이 그런 언행을 하면 공무원들이 장관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공무원들이 존경하지 않는 장관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공무원들이 성심을 다해 장관을 따르지 않는 행정부처가 국민을 제대로 섬기는 좋은 정책을 제대로 펴나가기는 어렵겠지요. 이런 장관이 여럿 있으면 대통령이 국민의 존경과 믿음을 잃게 되고 정부와 국민의 정서적 유대감이 약해집니다. 결국 국정 전반이 꼬이고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이 저하되는 것이지요.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가 나라 안팎에서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는 가운데 국민의 신뢰를 잃고 허둥대는 최근 상황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에게서 정책마다 사사건건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기색이 보입니다. 불과 몇 초 동안 텔레비전에서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은 대통령의 심기를 감지합니다. “저 사람들은 친북좌파들이라 원래부터 대통령을 싫어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통령에게 그렇게 보고하는 참모가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지만,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고 국민 모두의 대통령입니다. 국민은 대통령을 섭섭하게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는 국민을 섭섭하게 할 권리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의 영혼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효과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공직사회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국정운영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여러 경로를 통해 국민과 직접 대화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중대한 현안이 있을 때는 직접 기자회견을 하거나 담화를 발표했지요. 이명박 대통령도 라디오 국정연설을 하는 등 국민과 직접 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소통하려고 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은 공무원입니다. 국민은 공무원을 통해서 국가를 접촉하고 대통령과 장관을 간접적으로 만납니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대통령과 장관의 국정 철학과 정책 방향을 잘 이해하는 가운데 정책을 입안하고 시민사회와 대화하는 것이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제 경험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국민의 공복이라는 직업적 자부심,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애국적 열정, 다른 부처나 다른 동료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경쟁심, 이런 것들이 공무원의 영혼을 구성합니다. 영혼은 믿는 자에게만 보이지요. 대통령과 장관들이 공무원의 영혼을 인정하지 않으면 공무원들은 영혼을 감춥니다. 정확하게 상부의 지시가 내려오는 일만 하면서, 혁신적 아이디어와 정책은 업무용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가만히 넣어두지요. 시간이 남으면 현장에 가거나 업무혁신을 연구하기보다는 영어공부나 책읽기로 소일합니다. 유능한 공무원들은 교육이나 해외 연수 나갈 기회를 부지런히 찾습니다.

헌법 제 7조에 따르면 공무원은 대통령과 장관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며 대통령과 장관에게 책임지는 존재도 아닙니다. 그들은 국민에게 봉사하며 국민에게 책임을 집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장관은 특정 정당에 속해 있거나 그에 가깝지만 헌법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보장합니다. 대통령과 장관은 이러한 공무원의 지위를 인정한 바탕 위에서 공무원의 영혼을 불러내야 합니다. 대통령과 장관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자세로 사심 없이 일한다고 느낄 때, 공무원들은 비로소 자기의 영혼을 드러냅니다. 공무원이 스스로 영혼이 없다고 푸념하는 풍경은, 그 공무원들을 이끌고 일하는 정부가 이미 절반쯤은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공직사회의 자율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위 ‘친북좌파 적출’이나 ‘부역자 색출’이니 하는 섬뜩하고 살벌한 말을 해가면서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모욕하고 정치적 편향을 강요하는 것은 대통령과 장관이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대통령이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공무원과 국민 모두가 고달파지는 것이지요. 모쪼록 정부가 공무원들 스스로 직업적 자부심을 느끼면서 국민의 행복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정책을 기획한다고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조직운영의 방향을 전환하기를 바랍니다.

소통과 배려

1년 4개월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관 활동을 하면서 가장 절실히 깨달은 것이 ‘소통’ 또는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소통은 단순히 메시지나 텍스트 교환이 아닙니다. 소통은 궁극적으로 마음을 교환하는 것이지요. 대통령과 장관이 공무원이나 국민들과 하는 소통 역시 새로운 정책의 목적과 취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정책의 배후에 깔린 정서적 동기를 나누어가짐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가야,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참여정부를 통틀어 가장 젊은 장관이었습니다. 복지부장관으로 부임하고 보니 장관보다 젊은 국장이라고는 딱 한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국장은 물론이고 고참 과장들도 장관보다 나이가 많았지요. 장유유서라는 전통적 미덕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에서 젊은 장관이 나이 많은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으면 일이 될 리 만무합니다. 더 젊은 사무관과 주무관들에 대해서도 세심한 배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장관은 너무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특별히 세심하게 배려해 주지 않으면 긴장해서 아는 것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국민과 잘 소통하지 못하면 국민과 권력 사이에 긴장이 발생해 국가 전체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장관이 공무원과 소통하지 못하면 행정조직이 동맥경화에 걸려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지요. 부처의 내부 소통이 잘 되지 않으면 어떤 간부들은 ‘장관의 심기에 대한 정보’를 독점해 직원들에게 횡포를 부리게 됩니다. 무슨 특별한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강력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관료조직에서 정보의 불균형은 저절로 그런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저는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에너지 낭비를 예방하기 위해 간부회의와 부내 정책토론회에서 장관이 한 말을 모두 녹취해 텍스트로 푼 다음 내부통신망을 통해 본부와 산하기관 전체 직원들에게 전하도록 했습니다. 국무회의나 대통령 국정보고회의, 관계장관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 가운데 복지부 관련 사항도 간부회의 발언을 통해 모든 직원들에게 전달했지요. 중요한 문제로 부내 정책토론을 할 때는 주무국장과 과장뿐만 아니라 업무관련성이 있는 다른 국장과 과장, 담당 사무관과 주무관, 산하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자문교수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대통령에서 장관과 국장을 거쳐 과장과 사무관과 주무관에게 이르기까지 보건복지 정책의 기본 방향과 사업방식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넓히기 위해서였습니다. 장관과 공무원들이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 정확한 지시를 내려 보낼 수 없습니다. 정확한 작업지시가 내려가지 않으면 공무원들은 굵은 통나무를 깎아 나무젓가락을 만드는 식으로 소중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행정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습니다.

소통이 정서적 공감을 형성하는 데 이르게 하려면 끊임없이 상대를 배려해야 합니다. 배려 중에서 최고의 배려는 공무원 스스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공무원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대한민국 보건복지정책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세게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여러분이 해법을 찾지 못하는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 어떤 전문가한테 가도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조사연구하고 토론해서 답을 찾읍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생각 있는 고래는 칭찬하다고 해서 무조건 춤추지 않습니다. 공무원들을 일하게 하는 것은 그들 내면의 사명감과 자부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존중과 배려는 공무원의 사명감과 자부심에 활력을 제공하지요. 태만과 오류에 대한 질책과 징벌은 입에 올릴 필요가 없습니다. 공무원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코드에 맞추지 못하는 공무원은 스스로 조직을 떠나라”는 취지를 가진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적인 발언은 대통령 자신을 해치는 칼이 될 것입니다. 청와대 참모들은 대통령 말씀의 날을 무디게 하고 가시를 빼는 일에 더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게 바람직합니다. 가시가 박히고 시퍼렇게 날이 선 말은 강력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소통을 통해 종국적으로 형성해야 할 정서적 교감과 공감의 기반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무한책임 의식

국정운영에 필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책임의식입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모두의 책임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대통령과 장관은 자기에게 직접 책임이 돌아오지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할 경우에는 기꺼이 자기 업무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때문에 당장은 부당한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국민들이 언젠가는 진심을 알아주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정을 운영하다 보면 그런 과제를 자주 만나게 되는데, 이런 과제를 회피하는 정부는 언젠가는 국민의 냉엄한 비판을 받게 됩니다.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남해안에 ‘멍텅구리배’라는 게 있었습니다. 엔진이 없는 목선으로 동력선이 끌어다 놓는 곳에서 새우를 잡는 배입니다. 그런데 큰 태풍이 불 때마다 미처 예인하지 못하는 ‘멍텅구리배’가 침몰해 사람이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났고, 경찰이 경위를 조사하다 보면 인신매매단에 끌려와 강제노동을 한 사례가 드러나서 큰 사회적 물의를 빚곤 했지요. 결국 정부가 선주들에게 폐선보상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조업을 일체 금지함으로써 ‘멍텅구리배’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세종로와 과천, 여의도에는 아직도 멍텅구리배가 많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혁과제이지만 자체 동력이 없는 탓으로 가결도 부결도 되지 않은 채 정쟁의 바다 위에 표류하는 ‘무동력 법률안’들이 그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이었지요.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에 비해 수급권자가 받아가는 연금이 너무 많은데다가, 수급권자의 수가 어느 시점에서 급격히 많아지고 평균수명도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언젠가 기금 적립금이 고갈되어 침몰할 것이 확실히 예견되는 제도입니다. 전문가들은 언제부터 물이 차기 시작해서 언제 완전히 침몰할 것인지를 비교적 확실하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는 2003년에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지요.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시간을 벌려면 먼저 예정된 침물 시점을 늦추는 재정안정화 대책부터 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려 3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 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책임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원리가 통한 것이지요. 온 국민이 관련된 중요한 법안이었지만, 일부 연금전문가와 언론인들을 제외하면 빨리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처리하지 말라고 데모할 사람도 없었지요.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거나 기업 세제혜택을 줄이는 법안 같으면 난리가 납니다. 연구비를 삭감 당할지 모르는 대학교수들의 의원회관을 방마다 찾아다니고 기업인들은 국회의원과 주요 정당 지도부에 강력한 로비를 하지요. 그러나 모든 국민이 다 조금씩 관련되는 법안은 그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요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액을 깎는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표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법안 심의를 한없이 미루었습니다.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멍텅구리배와 마찬가지로 자체 입법추진 동력이 없는 법안이었던 것이지요.

장관 지명을 받자마자 이해찬 당시 총리에게 이 무동력 법안에 예인선을 붙이자고 건의했습니다. 소득과 재산이 거의 없는 노인들 몇 백만 명에게 매월 일정액을 지급하는 ‘효도연금법안’을 만들어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묶어버리는 방안이었습니다. 정부가 이 두 법안을 한 묶음으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우면 ‘효도연금법’에 관심을 가진 노인단체와 고령 유권자들이 국민연금법 개정안 처리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게 제 주장이었습니다. 이 총리는 흔쾌히 동의했지요. “꼭 국민연금법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나라를 이만큼 발전시키고 자식들 교육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 붓고, 그리고는 빈손으로 노후를 맞은 어르신들을 국가가 이렇게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이 총리의 첫 반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의원입법안으로 국회 제출해 두었던 ‘효도연금법’을 토대로 해마다 약 2조원 정도 예산이 들어가는 제도를 구상했는데, 이 총리는 그 돈을 어떻게든 만들어 보겠다고 했습니다.

이해찬 총리와 제가 이렇게 의기투합한 것은 국민연금법 개정에 대한 ‘책임의식’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별로 인기가 없는 법안이었습니다. 당장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법률안을 처리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판단할 때 유리할 게 없는데, 그걸 하려고 2조원이나 되는 신규예산을 만든다는 것은 국무총리로서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국민이 알아주든 말든,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은 회피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모았던 것입니다.

야당 존중

국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가장 큰, 그리고 성가신 걸림돌은 야당의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2월 임시국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새삼 깨달았을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나라당이 야당으로서 했던 일들을 돌아보면서 후회를 할지도 모르지요. 한나라당은 1998년에는 IMF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무려 6개월 동안 국무총리 인준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을 탄핵했습니다. 사립학교법이나 국가보안법 처리를 막기 위해 여러 차례 국회 상임위 회의실과 본회의장을 점거했고 장기간의 장외투쟁을 했습니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대표와 함께 청계천 광장 야간 촛불시위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와 똑같은 행동을 이번에는 민주당이 한 것입니다.

대통령은 야당을 존중해야 합니다. 아무리 성가셔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록 소수야당이라고 해도 야당은 힘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되게 만들기는 어려워도 무엇을 못하게 하는 데는 비상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게 바로 야당입니다. 대통령과 장관은 야당을 잘 ‘섬겨야’ 합니다. 때로 자존심이 상하고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밉더라도, 국민과 국정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관 업무를 보는 동안 저는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수도 없이 절을 했습니다. 직접 쓴 국민연금법 개정 관련 보고서를 들고 국회 의원회관의 모든 방을 두 차례 이상 방문했습니다. 야당 대표와 원내 지도부, 정책위 의장을 수시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법안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들의 갖가지 민원을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들어주었습니다. 좋아하는 술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회식을 할 때 그 술을 내놓았고, 지역구 보건소를 신축해 주었으며, 복지회관과 노인복지관을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대통령도 나서야 합니다. 저는 ‘효도연금법’을 만들어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함께 처리하는 방안을 보고하고 대통령의 지원을 부탁드렸습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과 합의 처리하는 데 필요하다면 법안 이름도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기초연금’ 비슷하게 해주고, 필요하다면 권위주의 시대 유물이라며 굳세게 거부했던 ‘여야영수회담’에도 응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한나라당과의 비공개 협상이 타결 진전까지 갔다가 아쉽게 결렬되는 바람에 ‘여야영수회담’이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는 데는 노무현 대통령도 뜻을 함께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야당에게 무작정 매달리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성심을 다해 협조를 요청하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야당이 소극적으로라도 협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가끔 국회에서 ‘거짓말’을 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국민연금법을 처리하기 위해 복지부 공무원들에게 귀향활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복지부 사무관과 과장, 국장들 중에는 행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고향 마을 입구에 주민들이 축하 플래카드를 단 ‘동네스타’가 많습니다. 그분들이 고향에 가서 ‘장관의 명’을 받아 왔다고 하면서 시군구 노인회장님들에게 밥 대접을 했습니다. 국민연금공단 지사장들은 노인복지정책 간담회를 열어 지역의 노인단체 대표와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거기서 한나라당 때문에 국민연금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기초노령연금법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퍼뜨렸지요.

그 소문이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 없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한나라당 의원들은 상임위에서 자기네가 언제 그런 적이 있느냐면서 “이런 헛소문을 퍼뜨린 게 누구냐”고 장관을 윽박질렀지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소문이 도는지 몰랐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위를 알아보고, 만약 사실이라면 즉각 시정조처 하겠습니다.” 그래 놓고는 복지부로 돌아와 공무원들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잘했습니다. 효과가 있는 것 같으니 더 세게 소문을 퍼뜨리세요.” 결국 2006년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몇 달 간의 심의 끝에 표결로 두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여당이 법안을 상임위에서 표결처리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지 않았습니다. 다른 문제라면 몰라도 적어도 이 법안에 관해서는, 야당의 입장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성의 있게 협상했고, 야당이 노골적으로 법안 처리를 막는 데 정치적 부담을 크게 느낄만한 상황을 미리 만들어둔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족 : 경험을 일반화하는 데는 오류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글에도 그런 오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정을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자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타인과 잘 교감하고 소통하는 일이라는 저의 소견이 오류일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2009년에는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국민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잘 소통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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