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기준 만들기 위해 의료, 법조, 보험업계 모여 첫 컨퍼런스 가져
사례#1. 김모(45) 씨는 2년전 경미한 교통사고로 자동차 범퍼에 왼쪽 무릎을 부딪쳤다.
부상정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김씨는 사고 한 달도 안 돼 왼쪽 다리의 피부색이 변하고 탱탱 붓기 시작했다.
통증도 깊어져서 옷 입을 때 소매가 피부에 슬쩍만 닿아도 바늘로 온몸 수십군데를 찌르는 듯한 고통에 눈물을 글썽였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인 김씨는 병실에 드러누워 일반 마약성분보다 몇 배나 독한 진통제를 맞으면서 통증을 견디고 있지만 여전히 나을 기미가 없다.
사례#2.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판정을 받은 박모(38) 씨는 77%의 노동력상실률을 받고 여러 보험업체로부터 모두 6억원의 보험금을 탔다.
보통 70% 정도면 목뼈가 부러져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만 하는 신세지만 박씨는 보험금을 타낸 후 멀쩡하게 걸어다니며 생활하는 모습이 여러차례 적발됐다.
호들갑을 떨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리얼한 연기로 그를 감정한 의사와 보험사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다.
이 처럼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판정은 제각각이다. CRPS 여부를 판정하는 현행기준은 임상적으로 국제기준을 따르고 있지만 기준 자체가 객관성이 없고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 질환에 대한 판정결과가 의사들마다 들쑥날쑥하다보니 같은 환자를 두고서 어떤 의사는 CRPS 진단을 내리는가 하면 다른 의사는 ‘꾀병 환자’라고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결과 탓에 장애에 따른 보험금도 수 억씩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다.
문제가 누적되자 손해보험협회는 최근 의사, 법조계, 보험업계 관련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CRPS 컨퍼런스’를 열고 판정기준에 대해 처음으로 논의했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현행기준을 들여다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며 “각계 전문가들을 모아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의료계에서 이들을 감정하는 기준은 국제통증학회(IASP)가 발표한 기준을 따르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감각기능을 살펴보는 경우 단지 의사가 환자의 부위에 손을 대어보고 환자에게 ‘아프냐’고 묻는 정도이며 운동기능을 측정하기 위해 악력기 등을 사용하는 경우 악의성이 있는 환자들은 스스로 힘을 주지 않고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다.
‘통증’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증상이 아니라 주관적인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별다른 외상이 없는 환자가 “아파 죽겠다”고 통증을 호소해도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험업계와 환자 측은 새로운 기준마련을 두고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의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 보험사의 송무팀장은 “CRPS를 주장하는 환자가 전혀 없다가 최근 1~2년 사이 15건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며 “주관적인 통증 호소에 의해 병을 판단하다보니 병을 가장하는 환자들도 있으며 이로 인해 되려 사고 가해자들이 황당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CRPS환우회’ 고문을 맡고 있는 서상수 법률사무소 서로 변호사는 “보험사들은 1만여명에 이르는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여전히 이 질환을 꾀병이라며 인정치 않으려는 모습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단 기준을 환자들의 주관적인 호소에 의존하지 말고 객관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동길 강동성심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CRPS를 진단하려면 전문 의료감정 의사가 하도록 해야하며 현행 기준보다는 가장 최근 미국에서 발표된 ‘AMA(미국의사협회) 6판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그나마 분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AMA 6판방식은 개선된 국제통증학회 기준을 1년 이상 충족하며 2명 이상의 의사에게 CRPS로 진단받고 정신심리적 검사를 철저히 시행하여 감별진단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동필 의성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법원에서 장애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의 감정소견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하루빨리 객관적인 기준이 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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