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이 끊어지면 남는 건 행동밖에 없어
"할 말이 없습니다."
26일자 MBC <뉴스데스크>를 마감하면서 신경민 앵커가 클로징멘트로 내뱉은 말입니다. "일요일 YTN 기자 자택 체포와 화요일 위원장 구속에 이어서 어제 수요일 한밤중 본사 PD가 체포되고, 오늘은 자택 압수 수색으로 숨가쁘게 진행"되는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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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5일자 경향만평(좌)과 3월 26일자 경향만평(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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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논리입니다. 이해입니다. 소통입니다. 신뢰입니다. 희망입니다. 너무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논리 자체가 웃음거리가 될 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상식과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두고 와서 언어적 소통 자체가 불가능할 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말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고 느낄 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앞날이 캄캄하고 모든 것이 절망적일 때, 우리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신경민 앵커가 "할 말이 없습니다"고 말했을 때, 그이의 심정도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어디 신 앵커 뿐이겠습니까. 주변을 둘러 보면 "할 말을 잃었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MB정부의 악수도 한 두번이어야지, 자고 나면 더 극악한 일이 계속 벌어지니 이젠 비판하고 욕하고 조롱하기도 지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말을 잃고 속으로만 분을 삭이는 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늘어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유시민 전 장관도 비슷한 말을 한 걸로 기억합니다. 모 신문과의 에서 작년에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 지금은 침묵하고 있는 이유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촛불을 들고 나왔을 때는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지만, 그러나 이 정부 하는 짓을 지켜보다 보니까 그것이 헛된 기대였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 운운. 그러면서 "온라인에서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MB정부도 이런 눈치 쯤은 채고 있을 겁니다. 따스한 봄이 도래하기 전에 비판세력의 싹을 자르려 저리 발악하는 걸 보면.
생각해 보십시오. 촛불사건을 보수성향의 판사에게 임의로 몰아주기 배당하고 나아가 담당판사들에게 이메일 지침까지 내려보내서 촛불을 한 큐에 잘라 버리려 했던 '신영철 대법관 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앞에서는 "한국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떠벌이면서 뒤돌아서서는 낙하산 사장을 반대했다는 죄목으로 YTN 노조위원장을 구속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을 방영했다 하여 PD수첩 기자를 체포하고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황당사건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해방정국도 아닌데 뜬금없이 '애국기동단'이라 이름하는 선글라스 낀 흘러간 주먹들을 서울 복판에 불러모아 "좌익세력은 말이 아니라 물리력으로 진압해야 한다"느니 "폭력에 휘말려도 법적 처벌을 감수하겠다"느니 하며 공갈포를 일삼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한 마디로 두려움을 조성해 비판과 불만을 잠재우겠다는 속셈 아니겠습니까. 그러자고 모든 공권력과 법원, 심지어 허가받지 않은 유사공권력까지 동원해서 국민에게 무력시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다고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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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한별 편집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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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국민을 섬기겠다며 '상머슴'을 자처한 대통령 하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것이 말끝마다 '법과 원칙'을 부르짖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이것이 언필칭 민주주의 세상이라 일컬어지는 2009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래서 다시 우리는 신경민 앵커처럼 "할 말이 없습니다." 몰상식이 상식을 교살하고, 거짓이 진실을 겁탈하는 현실 앞에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말이 끊어지면, 남는 건 행동밖에 없습니다. 격한 충돌밖에 없습니다. 혼돈과 파멸의 카오스밖에 없습니다.
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장엄한 선언으로 시작하는데,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진정 창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길 원하는 걸까요?
ⓒ dailyseop.com 문한별/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