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질환·감염병

제천 ‘AIDS’ 후폭풍

pulmaemi 2009. 3. 24. 08:34

<앵커 멘트>

 

충청도의 한 중소도시가 요즘 때 아닌 에이즈 파문에 휩싸여 있습니다.

절도 용의자로 붙잡힌 한 20대 택시기사가 에이즈에 감염된 상태에서 피임기구도 없이 수 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사건은 검찰 송치와 함께 일단락됐지만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막연한 공포감에서 비롯된 후유증은 큽니다.

 

공포에 가려진 에이즈의 진실은 무엇인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충청북도 제천의 대표적인 유흥가 거립니다.

밤 10시가 다 된 시각인데도 거리는 이상하리만큼 썰렁합니다.

불 밝힌 간판 밑으로 간간히 지나는 사람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손님을 태우기 위해 마냥 기다리고 있는 택시들.

노래방과 술집 등 유흥업소가 밀집해 평소 취객들로 북적이던 거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제천의 이런 낯선 풍경은 뜻하지 않은 에이즈 사건 때문입니다.

절도 혐의로 검거된 택시기사가 에이즈에 감염된 채 여성들과 무분별한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흥업소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

 

노래방 종업원 : “요즘에는 거의 에이즈 때문에 그런지 (손님이) 많이 줄어든 거 같아요.”

 

하룻밤 유흥을 위해 멀리 원주나 영월, 단양에서까지 손님들이 찾아 온다는

한 나이트클럽.

 

입구부터 한산합니다.

사건이 보도된 이후 말 그대로 개점 휴업 상탭니다.

 

<인터뷰>

 

나이트클럽 지배인 : “하루에 한 테이블도 못 받는 업소들도 많고 지금 바닥에 바닥을 치고 있으니까 이대로 간다 그러면 제천시내 업소들은 다 죽죠

에이즈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서운 병으로 알고 있으니까.“

 

에이즈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제천의 이미지가 하루 아침에 에이즈가 만연한

퇴폐 도시로 전락한 셈입니다.

 

<인터뷰>

 

제천 시민 : “제천에서 발생된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타지역에 에이즈 환자가 없는 건 아니잖습니까”

 

<인터뷰>

 

제천 시민 : “서울 친구들한테서 장난전화 막 와요. 물론 한 사람으로 인해 나타난 거지만 이 사건으로 제천 사람들이 전부 매도 당하고 있는 거죠.”

 

여성들의 속옷을 훔친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의 절도 용의자로만 알았던 20대 중반의 한 택시기사의 에이즈 감염 사실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택시기사의 휴대전화에서 대여섯 명의 여성과 성관계 장면이 담긴 10여 분 분량의 동영상이 발견됐습니다.

 

게다가 휴대전화에는 성관계 여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해 보이는 여성 전화번호 70여 개가 더 있었습니다.

 

<녹취>

 

정관헌 (제천경찰서 수사과장): "유흥업소 종사자하고 가정주부하고 또 다른 사람도 가정주부죠. 결혼을 했으니깐."

경찰 조사결과 이 남성은 에이즈에 감염되고도 여성들과 성관계를 할 때 피임기구조차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인터뷰>

 

에이즈 감염 택시기사 : (피해 여성들에게 하실 말씀 있나요?)

"죄송합니다."

인구 13만여 명의 작은 도시는 공포에 휩싸였고 보건소에는 문의전화와 시민들의 에이즈 검사 신청이 줄을 이었습니다.

 

사건이 보도된 당일에만 50명이 검사를 받았고 주말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았습니다.

 

<인터뷰>

 

에이즈 검사 신청자 : (택시기사를 직접적으로 아시는 거 아니죠?)

"아니요 전혀 모르죠 제천 시내 에이즈 확산이 크잖아요. 제천 시내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그래도 뭐 이제 해보는 거예요."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입니다.

 

<인터뷰>

 

에이즈 검사 신청자 : "3년 전 친구 결혼식 피로연 갔다가 아가씨들하고 잠자리를 했는데 뉴스 보니까 2003년도부터 많은 업소 아가씨들하고 관계가 있다고 해서."

 

다행스러운 점은 이 택시기사가 2003년부터 치료를 꾸준히 받아왔기 때문에

전염력은 거의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이 택시기사와의 관계 때문에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은 현재까진 아직 없습니다.

 

<인터뷰>

 

이국환 (제천시 위생보건 과장) : "이번 일 하나 때문에 이미지가 실추되고 그동안 쌓아 온 명성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 돼버리고 그런 거에서 우리 시민들이 많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2002년 6월, 20대의 한 윤락여성이 국내 첫 에이즈 예방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던 사건 당시와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경찰이 이 윤락여성과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추정한 남성 숫자만 5천 명.

윤락가에는 에이즈 괴담이 떠돌았고 모든 에이즈 감염인이 범죄자라도 되는 듯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감시해야 할 대상인 것처럼 비춰졌습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에이즈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세우려는 노력은

자극적인 언론 보도와 막연한 공포에 가려졌습니다.

 

<인터뷰>

 

유은주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사업부장) : "감염인들이 고의로 안 좋은 생각으로 에이즈를 유포할 수 있다라는 잠재된 어떤 그런 두려움을 계속 건드려 내고 있어서 저는 그걸 보고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사실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과 성관계를 맺었을 때 전염이 될 확률은 0.03~0.1%.

많아야 천 명에 한 명 꼴입니다.

 

또 에이즈에 감염됐다고 해도 완치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은 30여 종류의 치료제가 개발돼 에이즈 감염인의 평균 수명은 진단을 받은 뒤로도 35년이 넘습니다.

 

그렇다면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은 이런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국내의 한 대기업에 다니다 7년 전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게 된 한 남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처음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에이즈 감염인 : "우선은 그냥 하늘이 노랗고 곧 내일 죽나 언제 죽나 이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가족들하고 관계는 단절된 상황이고요. 3년 넘게 저 혼자 방황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지금까지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에이즈 감염인 : "나도 남들처럼 내 어느 정도 수명까지는 관리만 잘 하면 살 수 있다는 걸 겨우 알아가고 노력하고 살고 있는데 이것까지 딱 터지면서 마치 에이즈는 질병이 아니고 무슨 죄다 하는 공식이 자꾸 성립이 돼버리니깐...

 

모든 감염인들이 그런 사람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시각으로

자꾸 바라보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굉장히 아타깝죠 가슴 아프고."

 

우리나라에서 에이즈 감염인은 1985년에 처음 확인된 이후 20여 년이 흐른 지금 6천 명을 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생존해 있는 에이즈 감염인 수는 5천여 명.

이들의 성생활과 개인 생활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게 현실입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에이즈 정책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는 감시와 통제보다는 적절한 지원을 통한 확산 방지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국환 (제천시 보건위생과장) : "저희가 양성 감염인에 대해서 강제로 그 사람을 격리시키거나 강제로 치료를 받게 하거나 할 수 있는 제도적인 권한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분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권고하고 홍보하고."

이런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에이즈에 감염된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터뷰>

 

김준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에이즈 연구소장) : "가정에서 소외가 되고 있고 직장도 잃고 사회에서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지하에서 은둔해서 생활하면서 본인들이 사회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잘못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요. 이제는 그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국가별 차별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회적 격리 필요성에 대해 우리나라는 40%를 넘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들과 대조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선 에이즈에 감염되면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도 추방돼야 한다는 편견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유은주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사업부장) : "같이 밥 먹고 가족으로 생활하고 직장 동료로 생활하고 학교에서 급우로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이것만 안다면 격리를 원하는 건 나한테 전염될 공포 때문에 격리를 원하는 건데 그게 아니라는 것만 사람들이 안다면 혈액을 통해서만 성 접촉을 통해서만 전파되는거 정확히만 안다면 그런 격리에 대한 문제는 해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에이즈 발견 초기에는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는 뜻으로 한때 천형으로 불리기도 했던 에이즈.

 

하지만 이제 거의 만성질환 수준으로 에이즈가 관리될 정도에 이른 만큼 막연한 공포심을 보이기보다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에이즈로부터 지키려는 현명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KBS [지역] 유승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