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뜻대로 / 2009-01-20)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 그리고 화마의 두려움을 못 버티고 5층 건물에서 몸을 던지는 사람들, 이러한 아비규환의 광경을 목격하며 ‘저기 사람 있는데, 살려 달라!’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는 행인들......! 이것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오늘 새벽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YTN 미공개 영상 캡처 ⓒ 부채질 |
불은 마치 무언가에 크게 분노라도 한 듯,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삽시간에 보이는 대로 모두 다 삼켜버리고 말았다. 작정하듯 덤벼온 화마에 가녀린 목숨 여섯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불은 그렇게 슬퍼할 겨를조차도 주지 않고 모든 것을 단 한 순간에 끝내버렸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실로 어처구니없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존엄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슬픔보다는 솔직히 두려움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두렵다. 나는 이 시대에 참으로 희한한 광경을 목도하고 말았다. 경찰특공대라 함은 한 몫 잡아볼 요량으로 가녀린 아이를 인질로 삼고 미친 듯 칼을 휘둘러대는 흉악범들을 과학적으로 그리고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제압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 아니었던가? 오늘 삶을 마감한 그들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지능형 은행털이범도 아니요, 그렇다고 미친 듯이 건물 하나를 털어서 인질들을 흥정의 도구로 삼아 돈을 요구하는 테러리스트들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 사람들에게 ‘살기가 힘드니 우리 얘기 좀 들어 달라!’며 시위를 하는 가난에 찌든 시민들에 불과했다. 그런 그들에게 이 정부는 그리고 대한민국 경찰은 왜... 어째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경찰특공대를 보낸 것인가! 하얀 헬멧과 살벌한 청잠바를 걸친 백골단으로는 부족했단 말인가?
경찰특공대의 이번 대처는 전혀 과학적이지도 못했고, 또한 정확하지도 못했다.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휘발성 액체가 가득 실려진 건물로 무작정 진입하려 한 행위는 과학과는 전혀 다른 ‘하면 된다!’와 같은 무모함이었고, 흥분과 두려움에 휩싸인 철거민들이 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에 화염병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 이렇듯 오늘 경찰특공대는 과학적이지도 못했고 정확하지도 않았다. 다만, 오직 신속했을 따름이다. 신속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소중한 인명 여섯을 보냈으니 그 얼마나 신속한 일처리인가!
얼마 전, 유시민이 농가에 뛰어들어 엄청난 피해를 주는 멧돼지를 소탕하기 위하여 공수부대를 동원하겠다는 발언을 했다가 극우보수단체들로부터 집단으로 다구리를 당한 적이 있었다. 얼핏 보면 그 발언이 다소 경솔한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코 나쁜 말이 아니다. 멧돼지는 분명히 농가의 안위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비유가 적절치 못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유시민이 한 말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안전과 행복을 중요시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으로 대한민국 경찰과 정부 그리고 유시민의 발언에 대해 일제히 비난 성명을 퍼부었던 극우단체들에 묻는다. 과연 이번 경찰특공대의 시위진압 작전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그 작전 안에 인간의 안전에 대한 우려나 인간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한 의지가 담겨져 있었던 것인가? 아울러, 과연 이러한 진압작전이 먼 훗날 경찰특공대에게 명예로운 것으로 기억될 것인가? 이런 살벌한 경찰특공대보다는 차라리 산속에서 멧돼지를 뒤쫓는 공수부대의 모습이 훨씬 명예로울 것으로 생각된다. 내가 비약이 지나친 것인가?
두렵다. 시위 좀 하면 경찰특공대가 출동하는 세상! 그저 두려울 뿐이다.
ⓒ 뜻대로
[관련 기사]
‘떼법 본보기’ 특공대 투입이 철거민 죽였다
- 협상 시도도 안한채 곧바로 진압나서 ‘비상식적’
- 김석기 서울청장, 화영볌 등장 소식에 ‘본보기’ 삼아
- 전문가 “모든 문제 ‘공안’시각 접근땐 충돌 되풀이”
(한겨레 / 석진환, 김남일 / 2009-01-21)
6명이 화마에 희생된 서울 용산 철거민 참사는 집회·시위 등 집단행동에 철권을 휘둘러 온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참사는 생존권과 시민적 권리를 요구하는 행위를 ‘떼법’으로 규정하고 단속과 강공 일변도의 드라이브를 걸어온 신공안정국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이다.
» 서울 용산4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0일 새벽 용산구 한강로 3가 한 빌딩에서 경찰이 강제진압에 나서자 망루에 불을 지르고 저항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
■ 무리한 진압 이유와 작전 지시자는?
이번 작전은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경찰은 철거민들의 농성 소식이 알려진 19일 저녁 서울경찰청에서는 김석기 청장과 김수정 차장, 기동본부장, 정보부장, 용산경찰서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특공대 투입을 결정했다. 경찰은 “백동산 용산경찰서장이 특공대 투입을 건의했고, 김 청장이 이를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경찰청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은 진압작전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고 경찰청 관계자는 전했다.
문제는 이번 진압작전이 철거민들의 농성이 시작된 지 불과 25시간 만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경찰의 경비 분야 전문가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저을 정도다.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충분히 협상을 벌이고, 그래도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최대한의 안전조처를 마련한 뒤 진압 절차를 밟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경찰은 2005년 6월에 오산 세교택지개발지구 철거민들의 농성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바 있지만, 당시엔 무려 54일이나 기다린 뒤 예행연습까지 거쳐 작전을 펼쳤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는 촛불집회 강경 진압 등으로 정권의 신뢰가 더 커진 김 청장이 경찰청장 내정 뒤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으로 풀이한다. ‘서울 시내에 화염병이 등장했다’는 보도가 나오자마자, 강력한 초기 대응을 통해 ‘본보기’를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다음달 경찰 간부 인사를 앞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김 청장의 강경한 대응 의지에 맞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위 대처 경험이 많은 한 경찰 간부는 “추운 겨울의 고공농성은 시간을 최대한 끌면서 지치고 고립되도록 만들어가는 게 작전의 기본”이라며 “참모들 중 누구도 경비 쪽 경험이 없는 경찰청장 내정자한테 직언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지난해 촛불정국에서 서울경찰청장이 된 이래 강경한 집회·시위 대응을 강조하며 정부와 집권세력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해 왔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촛불집회 때 경찰이 과잉 대응한 사실이 없으며, 일본과 달리 무질서하고 불법적인 국내 집회·시위 문화를 바로잡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틀 만에 진압작전을 펴게 된 것에 대한 경찰의 해명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은 이날 참사 뒤 낸 보도자료를 통해 “도심 테러라고 해야 할 정도로 화염병과 쇠구슬이 난무하는 등 민간 피해가 심각해 빠른 조처가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구체적 피해를 묻는 질문에는 “민간인이 다치진 않았지만, 빈 집에 불이 나고 쇠구슬에 차량 두 대가 훼손됐으며, 차가 막혔다”는 답이 전부였다. 목숨을 담보로 한 작전을 펴야 했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하기엔 민망한 변명이다.
■ 참사 부른 ‘불법 집단행위 엄단’ 드라이브
이번 참사를 더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불법 집단행위 엄단’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와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월 신년사에서 “ ‘떼법’이니 ‘정서법’이니 하는 말을 우리 사전에서 지워버리자”며 공권력을 통한 민의 제압을 예고했다.
경찰뿐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도 ‘떼법 청산’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강경 드라이브에 한몫을 맡아 왔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찰의 시위대 검거 등 정당한 직무집행에 대한 과감한 면책을 보장해 적극적으로 공권력 행사를 독려하겠다”고 공언했다. 검찰은 이른바 ‘떼법 지수’를 만들어 해마다 발표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운 상태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신년사에서 “경제정책과 관련된 노사분규나 불법 집단행동이 대폭 증가할 텐데, 선제 대응하고 ‘불법필벌’의 원칙을 반드시 관철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행정력이나 정치로 풀어야 할 사안들까지 ‘공안’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공권력과 시민의 충돌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계수 건국대 교수(법학)는 “서울시청이나 용산구청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경찰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정부 기조가 문제”라며 “법과 공권력으로만 접근한다면 다른 부처는 필요 없이 법무부와 경찰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석진환, 김남일 기자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4490.html)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9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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