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현실이 있는 이유
(서프라이즈 / 격암 / 2009-02-19)
노풍이 불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그리고 마침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오늘의 현실을 있게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시민의 정치참여 시도와 실패에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현실을 있게 한 것입니다.
시민이란 누구인가
대한민국 시민이면 누구나 시민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운동권과 크게 관련이 없으며 사회 부유층이나 기득권과 크게 관련이 없고 인터넷을 잘 사용하는 시민들입니다. 편의상 이들을 참여정치세력이라고 부른다면 이들의 몸통연령적으로 30-50대의 셀러리맨이나 자영업자들입니다. 비교적 높은 학력을 가지고 넓은 지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으며 해외를 경험하고 현실사회의 경제활동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경제적 지식적 실력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이 거세되어 있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한국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하고 한국 사회를 떠받드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 가장 세금 열심히 내는 사람들이 참여정치세력이라고 정의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중소기업과 소자영업자들이 가장 보호받지 못하며 셀러리맨이 가장 유리지갑이지요. 겉으로는 화이트칼라 직종이라 그럴듯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노조도 없고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고 해고도 마음대로 이뤄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이 다시 자영업자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물론 이들이 가장 정치적 능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변화란 결국 그 사회에 대한 기여도와 정치적 발언권의 부조화가 있을 때 강력하게 요구되고 성취되기 마련입니다. 말하자면 노풍이 대표하는 정치적 변화는 결국 이 참여정치세력이 부상하고자 노력한 결과인 것입니다.
참여정치세대보다 윗세대는 한국발전의 선두에 있는 세대로 반공의식에 젖어있거나 한국발전의 과실을 수확한 세대입니다. 부동산거품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며 충분한 정치적 발언권을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을 통해 행사해 온 사람들입니다.
386 정치인들 혹은 운동권 출신의 정치세력은 참여정치세력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소위 386세대와 그 주변 세대는 역할 분담을 한 것이지요. 정치권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개혁, 민주, 진보운동을 하고 정치를 독점하는 대신 그 밖의 사람들은 열심히 생업에 종사했습니다. 그 운동권세대 정치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참여정치세력의 좌절
참여정치세력이라 말했습니다만 이들은 애초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치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좌절은 한국의 정치개혁을 주도하는 진보세력의 현실인식이 이 참여정치세력을 포함할 능력이 없는 데서 시작합니다.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대립이라는 구도에 익숙한 진보세력은 노동자=블루칼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은 화이트칼라를 노동자로 취급하기 시작하면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외환딜러는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도 월급쟁이입니다. 은행의 이사쯤 되는 사람은 월급쟁이가 아니고 노동자가 아닙니까?
정치현실과 자신들의 현실이 부조화를 이루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참여정치세력은 자신들도 대표자를 정치권에 보내고자 하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나라당은 자본을 가진 부자들을 위한 당이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정치세력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익숙해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기에 어렵습니다.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 같은 곳에서는 옛날에 감옥에 민주화 운동으로 한번 안 다녀와 본 사람은 큰소리도 못 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학생운동조직들의 끈끈한 인맥 안으로 사업만 하던 사람들, 회사만 열심히 다니던 사람들은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는데 바로 한나라당으로 참여정치세력을 대표해야 할만한 사람들이 진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 사람의 자질에 상관없이 그 인생 이력을 보면 그래야 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참여정치세력을 혼동시키는 역할만 하게 됩니다. 한나라당이 참여정치세력을 위해 일할 리 없는데 말이죠.
이런 착시현상의 정점에 있는 것이 지금의 대통령 이명박입니다. 셀러리맨의 신화라는 브랜드로 성공했죠. 오세훈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적 이미지가 강한 오세훈의 성공은 실은 참여정치세력이 요구한 변화가 방향을 잘못 잡은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한나라당의 주류는 재벌의 비호를 하는 사람들, 과거 독재정권의 후예들입니다.
참여정치세력의 부상과 실패
노풍이 불고 난 이후 이제까지 참여정치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증대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듭 실패해 왔습니다. 그들은 실상 상당히 지식과 돈을 가지고 있지만 적절하게 그들을 대표할 사람도 그들을 부상시킬 루트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국현도 아직 현실정치를 하고 있지만 크게 성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의 부상은 노풍으로 시작됩니다. 민주당이 국민들에게 신망을 잃어버리자 민주당은 국민경선을 실시했는데 뜻밖에 인터넷을 이용해 모여든 사람들이 노무현이란 사람을 지목한 것입니다.
노무현은 386학생 정치운동권이 아니었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정치참여는 이미 변호사로 성공한 뒤에 한 사람이죠. 이것이 바로 참여정치세력의 요구에 꼭 맞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소중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겁니다. 소통의 방식이 바뀌자 정치적 능력이 거세된 사람들이 숨통이 트인 겁니다.
권위주의로 사람들을 누르는 한나라당은 일반시민들을 이렇게 배제합니다. ‘너 브랜드가 뭐야, 너 나이도 어린 게’, 이런 식입니다. 반면에 반한나라당 계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경력을 따지고 이념서적에 대한 지식을 논합니다. 경제학자는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현실세계에서 회사 다니거나 회사 운영해본 사람을 무식하다고 비웃습니다.
좌파는 현실경험도 국제경험도 없이 이념서적에서 읽은 것을 가지고 세상이 이렇게 다 뻔하다면서 일반시민을 밀어냅니다. 민주화 운동 때 감옥도 안 가본 사람은 도덕심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것도 같습니다.
인터넷은 권위주의가 숨쉬기 힘들고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기 때문에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해야 합니다. 여기서 기성정치권의 장벽이 무너지는 겁니다.
노풍으로 노무현이 당선된 이후에도 노무현은 한나라당은 물론 당시 여권에서도 견제를 받습니다. 운동권 출신이지만 개혁당을 만들고 노무현을 도운 유시민도 결국 열린우리당에 참여하고 나서 무력화되다시피 합니다. 전자정당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열심히 인터넷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만 이행됩니다. 결국, 직장이 있고 과거 운동권과 끈이 있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정치권에서 있을 곳을 잃어버립니다. 참여정치는 좌초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정을 이룬 것은 탄핵 후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압도적 대세를 이룰 때였습니다. 탄핵 후폭풍은 촛불집회가 이룬 것이고 촛불집회는 정치세력이 만든 게 아니라 참여정치세력 내지 그동안 정치적 참여에서 거세된 사람들이 이뤄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실을 따서 국회에 진입하는 사람은 달랐습니다.
결국, 당을 장악하고 공천을 어떻게 하는가는 참여정치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들이 국회를 장악하고 당을 장악하자 맨 먼저 한 것은 회의실의 문을 닫아걸고 참여 정치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집에 가서 쉬라는 것이었습니다. 진성당원제는 유명무실해졌고 정보는 닫아 걸린 회의실 안에서만 맴돌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참여정치 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과 기성정치권 내지 사회 기득권과의 충돌은 계속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충돌입니다. 아프간 선교 사건, 디워 사건, 황우석 사건 등으로 거듭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충돌하였으며 의견의 진실성은 둘째치고 오프라인은 온라인을 비하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합니다. 인터넷에는 미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 요점이지요. 물론 종이신문이나 방송이 어떤 미친 소리를 하는가에는 상당히 관대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나라당 계열의 자칭 보수세력의 일만은 아닙니다. 진중권을 포함한 진보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교육과 언론 등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역시 인터넷의 부상을 강력히 비판합니다. MBC도 언제나 정부와 싸우는 정론 방송으로 칭찬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디워 사건, 황우석 사건 때는 그 편파성으로 사람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그 요점은 제가 보기엔 확성기의 독점, 발언권의 독점에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사람은 우리를 통해서만 발언하라는 정보채널의 독점을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
좌우의 대결구도를 짜서 좌든 우든 일단 상식에 맞게 살아보자는 일반시민들을 배제하고 그들의 정치참여를 막으며 그렇다고 그들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할 수 있는 식견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으니 무당파가 점점 증가합니다.
뉴스위크지 같은 미국신문을 읽다가 우리나라의 좌우를 살피면 도대체 누가 현실에서 능력이 있다는 것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무식한 옛날 소리하고 있는 한나라당이나 낡아빠진 이념구도, 서구의 정치적 사조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며 현실 경제나 국제적 감각이 뒤떨어지는 좌파가 오늘날 한국을 어떻게 잘 이끌겠다는 것인지 믿음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혼란을 타서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집권하고 있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보면 미래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가는 분명하며 그 일이 생기기 전에는 개혁의 물꼬는 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분명합니다.
바로 참여정치세력의 제 몫 찾기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나라당의 부활은 계속될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무능으로 반한나라당 쪽이 세력을 얻지만 실은 운동권 쪽도 현실인식이 뒤떨어지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세계는 21세기에 있는데 한국만 1950년대나 60년대에 남아있는 셈입니다.
낡은 이념의 과잉입니다. 사회민주주의 같은 이야기 하지만 그런 단어는 거의 뜻이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잘되려면 ‘지랄타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거나 같지요. 그럼 ‘지랄타’가 뭐냐고 물으면 ‘지랄타’는 ‘고지라 사회’의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어쩌고저쩌고 나가는 가운데 좋은 건 다 끌어넣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토론을 열어서 진정한 ‘지랄타 사회’가 뭔지를 토론도 합니다. 그래서 금리 인상해야 합니까? 부동산세금은 어떻습니까? 기러기 아빠들 대책은 뭡니까?를 물으면 갑자기 현실로 돌아옵니다. 도움되는 의견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이 그렇게 탁자에 앉아 기본적 개념 위에 차곡차곡 쌓아 설계한 대로 돌아간답니까?
우리가 과거의 경험으로 배운 것은 인터넷은 아주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프라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 이전에 조직에 대한 철학이 필요합니다. 어떤 구조여야, 누구여야, 참여정치세력을 올바로 대변하고 그들의 힘을 집결시킬 수 있는가가 필요합니다. 휘발유가 아무리 많이 있어도 엔진이 없으면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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