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한 사회

조중동의 이상한 침묵...이명박 정부는 비판할 것 없다?

pulmaemi 2009. 2. 18. 20:59

[칼럼)] DJ-盧정권 때는 “권력감시한다” 눈 부라리더니...

 

참 이상한 일. 요즘 청와대가 조용하다. 이례적으로 조용하다. 군포 연쇄살인범을 이용해 용산참사를 입막음하라는 청와대발 이메일 홍보지침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도 소문의 진원지인 청와대는 가타부타 말이 없다. 조용하기가 마치 동한거에 들어간 절간같다.

듣자니, 얼굴 내밀기 좋아하는 이동관 대변인마저 언제부턴가 정례브리핑을 피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홍보지침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13일깨부터라는데, 급한대로 얼굴만 대충 숨기고 보자는 그 대응방법이 얄팍하고 얍삽하다. 그런다고 몸통이 가려지는 것도 아닌데. 때가 되면 다 드러나게 마련인데.

이상한 건 또 있다. 바로 조중동의 침묵이다. 조중동 지면에서 청와대 홍보지침 관련 기사를 찾아보기가 '윌리 찾기'보다 더 힘들다.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세 신문 합쳐 무려 4건 씩이나 있다.

그나마 사건의 본질을 파헤친 것은 없고, 이메일 홍보지침을 경찰청에 보낸 청와대 행정관을 청와대에서 경고조치한 것을 내세우거나(2월 14일자 조선 4면, 동아 8면), 그가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는 것(2월 16일자 중앙 8면, 동아 10면) 등이 전부다.

▲ 청와대 행정관 경고조치 사실을 보도한 2월 14일자 조선일보 4면 하단(붉은 색 처리)  

▲ 청와대 행정관의 사퇴 사실을 보도한 2월 16일자 중앙일보 8면 하단(붉은 색 처리)  

▲ 청와대 행정관의 사의를 보도한 2월 18일자 동아일보 10면 하단(붉은 색 처리) 

입바른 말 잘하기로 대한민국에서 1,2,3 위를 다투는 자칭 '비판신문'들이 어쩌다 이렇게 꿀먹은 벙어리가 됐을까? 조중동이 총애하는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어도 이따위로 처신했을까?

말이 나온 김에 조중동이 지난 시절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발언했는지 조중동 순으로 구문(舊聞)을 잠깐 들춰보기로 하자.

"여기서 조선일보가 가장 힘주어 다짐하고자 하는 것은 언론의 감시기능과 비판기능의 강화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비리와 허위와 눈속임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을 보다 날카롭게 하려는 것이다..."

1993년 3월 5일에 작성된 창간 73주 기념사설 <조선일보앞에 성역은 없다>의 한 대목이다. "각종 비리와 허위와 눈속임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을 보다 날카롭게 하겠다"는 다짐이 사뭇 가슴을 때리지 않는가. 그 다음 말이 더 감동적이다.

"이들은 권위주의 시대의 악습 그대로 언론의 발목을 붙들어 자신들의 사심을 드러내거나 감추는 행위를 당연한 듯 자행해 왔다.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정치권력은 물론 그 어떤 대상들에 대해서도 강력한 자율성을 보유해 시비곡직을 가리는 언론 본연의 비판기능을 더욱 선명히 할 것이다.

허위와 위선은 폭로돼야 하고 기만과 위장은 풀어헤쳐져야 하며, 음모와 공작은 좌절돼야 한다. 그리고 이 원칙은 여와 야,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지도층과 대중, 오만한 엘리트와 무질서한 중우에 다같이 적용돼야 한다..."


시비곡직을 가리는 언론본연의 비판기능을 더욱 선명히 수행하겠다는 조선일보의 날선 다짐은 다른 사설에서도 수없이 반복됐다. "정도에 바탕한 ‘언론의 몫 ’은 한마디로 공정하고도 공익적인 기준에서서 정치와 정치인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시시비비 하는 소임이다"는 2002년 4월 9일자 사설 <‘정치인의 몫’ ‘신문의 몫’>도 그 가운데 하나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이요 존재 이유라는 조선일보의 사자후는 노무현 정부 대에 들어 더욱 커지고 처절해졌다. 몇 개만 소개한다.

"언론의 사명은 무엇인가? 감시받지 않는 권력,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권력은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부패하고 독선으로 흘렀던 것이 역사의 현실이다. 언론의 사명은 이런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하라는 독자의 기대에 용기 있게 부응하는 것이다..."(사설, <언론의 사명과 숙명을 생각한다>, 2003.03.05)

"여기서 기본은 언론의 본질, 언론의 사명, 언론의 존재 이유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통령이 오늘의 언론 상황을 편견 없이 살펴본다면, 그 언론이 독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언론일수록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가 강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자 없이도 존재하는 신문과 독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신문은 다를 수밖에 없다..."(사설, <대통령과 언론, 어제 오늘 내일>, 2005.08.24)

"신문의 생명은 누가 뭐래도 비판입니다. 권력이 잘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잘못한 것을 비판하더라도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겠습니다마는 신문은 잘한 것에 대한 ‘칭찬’보다는 비판의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 본업이라고 배웠습니다..."(김대중 칼럼, <정치의 계절, 시련의 계절>, 2006.07.03)


"권력에 대한 비판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사설,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반성 하겠습니다 >, 2005.07.25)는 중앙일보의 각오도 조선일보 못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2006년 7월 6일자 사설 <권력 편드는 신문 세금으로 지원하는 나라>에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견제야말로 신문의 생명이다...비판 없는 신문은 존재 이유가 없다"고 단언하는가 하면, 2007년 5월엔 노무현 정부가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으로 언론의 취재.감시 기능을 원천 봉쇄하려 한다면서 이렇게 떠벌이기도 했다.

"우리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이 정권이 아무리 장벽을 쌓아도 우리는 위축되지 않고 취재의 영역을 더 넓혀 나갈 것이다..."(사설, <언론자유 뿌리 뽑겠다는 건가>, 2007.05.23)

<모든 언론은 청와대의 적인가?>라는 물음표를 단 2007년 5월 30일자 '김종혁 시시각각' 칼럼도 빼면 섭하다.

"적일 필요는 없지만 언론은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권력과 갈등 관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언론의 존립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진실을 우리는 제대로 지키지 못해 왔다. 그동안 역대 정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언론을 통제하려고 시도해 왔다. 언론 역시 그에 영합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가 있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백미는 단연 동아일보다. 노무현 정부의 가공할 언론탄압(?)에 맞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부정과 불의를 고발하고야 말겠다는 동아일보의 강고한 외침을 감상해 보시라. 아마 읽다 보면 입근육이 절로 씰룩거리고 '웃음 아닌 웃음'(非웃음)이 실실 새나오실 게다.

"국정운영에 관한 모든 정보는 정부 소유가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이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는 것은 곧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사설, <이래서 국민 `알권리` 충족되겠나>, 2003-03-28)

"대통령과 정부 등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언론의 사명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모든 민주국가에서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이 같은 언론의 역할이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감시견’으로서의 구실을 못하고 ‘애완견’처럼 권력을 흡족하게 만드는 보도만 하는 나라는 민주사회가 아니라 독재국가일 것이다..."(사설, <언론은 무력화되지 않는다>, 2003-09-27)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이 총체적으로 흔들리는데 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수는 없다. 국민이 ‘알 권리’를 빼앗기는 상황에서는 대의민주주의건, 참여민주주의건 꽃이 피기는커녕 시들어만 갈 것이다... 권력에 순치된 언론은 존재 이유가 없다..."(사설, <동아일보가 신문법을 憲訴한 이유>, 2005-03-25)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본분이다...정론을 펴는 언론이라면 당파를 초월해 시시비비를 가리려 한다. 물론 집권세력이 야당보다 더 냉정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경향은 있다. 정부 여당은 가장 무거운 국정 책임을 지고 있으며, 국가 진로 및 나라살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사설, <‘주류언론 교체 투쟁’해 온 대통령이…>, 2006-08-22)

"언론의 비판 감시기능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조종을 울린다..."(사설, <‘위헌 신문법’ 治下에서 맞는 신문의 날>, 2007-04-07)


어떤가? 언론자세를 다짐한 조중동의 아름다운 말빨을 감상하신 소회가. 잠깐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황송하고 감격스럽지 않은가. 이 정도 결기와 이 정도 각오라면 군포 연쇄살인범을 이용해 용산 철거민 참사를 덮으려는 이명박 정부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낱낱이 파헤치고 비판해야 마땅할 터.

▲ 문한별 편집위원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론을 호도하고 그도 모자라 국민 상대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청와대의 엽기적 행태가 군고구마처럼 드러나는데도 그를 꾸짖고 나무라는 소리 한 마디 없다. 청와대 행정관을 경고조치하고 그가 옷을 벗었다는 건조팩트만 볼성 사납게 나부낄 뿐.

독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언론일수록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가 강해진다는 조선일보의 자부심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정권이 아무리 장벽을 쌓아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취재의 영역을 더 넓혀 나가겠다는 중앙일보의 다짐과 반성은 어디로 간 것일까?

국정운영에 관한 모든 정보는 정부 소유가 아니라 국민의 것이며, 언론이 ‘감시견’으로서의 구실을 못하는 나라는 민주사회가 아니라 독재국가라는 동아일보의 각성과 깨우침은 어디로 간 것일까? 참 이상한 일.

문한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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